케로로/일반

[가루루/조루루] 바람에 잠든 꿈

E / P 2016. 1. 24. 18:50

글쎄… 과거에 얽매여있는 채로 지낸다는 게 그닥 좋은 건 아니지만, 자꾸 과거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건 왜일까. 누구나 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있을테고, 그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존재도 없진 않겠지만, 솔직히 이제 내가 그렇게 노력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만약 이런 몸을 가지지 않았다면 나는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요즘 밤에 혼자 나와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일이 많아졌다. 딱히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달을 바라보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별들도 왠지 나의 흥미로움을 더욱 돋구고 있기도 했고.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정말로 날아가서 제로로 녀석의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지에 있는 존재들은 전부 잠들 시간이니까 누군가가 여기에 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으로 오면서 불빛이 가득 켜져있는 곳을 발견했었다. 오늘은 대장 녀석이 할 일이 많은가보군. 아마 곧 대장 녀석이 내가 이 곳으로 지나갔다는 걸 눈치채고 여기로 올라올 것이다. 뭐, 이젠 거부감같은 것도 들지 않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뒤에서 뭔가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늘 겪은 일이라는 듯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자 오늘은 무슨 일인지 따뜻한 음료수를 가져와서 나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음? 뭐… 음료는 잘 마시겠다만 역시나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군.


"요즘 좀 바쁘나. 새벽까지 하는 날이 많군."

"서류가 밀렸다. 그나마 며칠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지만."

"괜히 열심히 고생하는군."

"대장이라면 늘 익숙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좀 쉬러 왔나."

"병장 상태도 확인해 볼 겸 올라와봤지."

"내 상태야 뭐… 항상 똑같지."


잠시 몸 좀 녹이고, 다시 이야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대장 녀석도 혼자 일을 처리해야 되니까 좀 많이 피로가 쌓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녀석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기회를 노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난 상관없고.

몇 분 전부터 조금씩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차가운 바람은 아니었다. 아마 혼자가 아닌 두 명이기에 조금 온기가 주변을 감돌고 있어서 이 온기에 의해 바람이 따뜻해진 건 아닐까…. 살짝 따뜻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뭔가 깨달은 것이 있는 듯 새로운 이야기 주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병장에게는 꿈이 있었나?"

"있긴 했겠지. 지금은 그런 것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렇군."

"지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네 녀석은?"

"당연히 나에게도 꿈은 있었지. 하지만…."

"…하지만?"

"이 바람에 날려 저 멀리 잠들었다."

"……뭐냐, 그게."


쓸데없이 이상한 표현을 꺼내선 나를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만들었다. 「바람에 날려 잠들었다」 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지금 둘밖에 없으니까 심심해서 퀴즈를 낸 건가, 싶을 정도로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또다른 한 곳에선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을 치루다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마저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지."

"흠,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자신이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자기 자신도 언제 이런 꼴이 될 지 모른다」 라는 생각에 결국은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대신 이루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닌 소망을 가지는 건가."

"바람은 나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줄 수 없지."

"그런데 바람은 왜?"

"바람에 멀리 날려간 꿈은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을 것이고, 이제 그 잠든 꿈을 찾아서 먼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거창하군."

"병장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녀석들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째 대장 녀석에게서 설교같은 걸 듣고 있는 기분이라서 지루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녀석들에게선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조금 관심은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대장 녀석도 자신만의 꿈이 있었지만 잠시 그 꿈을 어딘가에 버려둔 채로 이제 다시 그 꿈을 찾으러 간다는 뜻이니까. 어디 한 번 다시 찾을 그 날을 기대해보도록 하지.


"난 계속 생각하고 있자니 머리만 아프군. 이제 돌아갈 시간 아닌가."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먼저 들어가보겠다."

"할 일은 미리 끝내놓으라고."


어쨌든, 그 꿈이라는 것…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나도 되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