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자캐

[자캐 - 데피드] D-FISH DUMPLING over H-DECADE ~1~

E / P 2016. 1. 24. 23:19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이 곳에 등장한 것도,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것도, 이 계약에 대해 가졌던 증오도. 지금은 그저 한 때의 추억에 불과한 것들이 많지만 어쩌면 이 추억들에 의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움과 행복함과 증오가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같은.

분명 나는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그 얼굴들이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저 평범한 다른 존재들처럼 나도 그 무리에 어울리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일반인 A에 해당하는 녀석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일반인' 이라는 것에서 해방될 기회는 그 때부터 조금씩 나에게 다가온 게 아닐까.

어느 날, 하루는 바닷가에 여행을 가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까진 바다에 대해 그저 신기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저 바다 깊은 곳에는 어떤 생물이 있을까, 나도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았을 그런 일반적인 생각들.

 

그 때의 나 자신은 몰랐을 것이다. 이 때 가졌던 생각들을 정말로 실천해보게 될 줄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다시 바닷가에 오게 된 일이 있었는데 사실 그 일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원망스럽고 대단한 일이 아니었을까. 잠시 부모님은 나를 숙소에 둔 채로 서로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의 나는 가지 말라고 말린다던가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부모님은 분명 나를 키우면서 힘든 시간도 많았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을 테니까 당연히 쉬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만약에 그 때 내가 가지 말라고 말렸더라면 지금과는 꽤 다른 일이 이어지고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부모님이 다른 곳에 간 사이,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바다로 나간다. 이번에는 거의 바닷물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문어의 다리같은 것이 보였고, 그 것을 슬쩍 잡아당겼다. 그러자 바다 속에서 거대한 문어가 나오더니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었다. 그 거대한 것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놀라서 넘어졌지만, 그 거대한 존재는 나를 보곤 신기한 듯 이리저리 촉수로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조금 내 상태가 진정되었다고 느꼈는지 그 거대한 존재는 자신을 「크라켄」 이라고 소개하며 자신과 친구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때의 나 자신은 당연히 엄청난 호기심에 의해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크라켄은 거대한 촉수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잠시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 감싸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계약하기 전의 모습' 일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다 깊은 곳에서 눈을 떴고, 크라켄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숙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바다였기에 바로 숙소로 도착할 수 있었지만, 숙소로 올라오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전에 호기심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바다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의문점을 해결할 순 있었다. 의외로 「뭔가 익숙하게 생긴 심해어」 도 있었는데, 나중에 이 녀석의 정체를 알게 되고 꽤 친하게 지낸 적도 있긴 있었다. 과연 바다 깊은 곳으로 다시 들어간다면 그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숙소로 돌아왔을 직후에는 그렇게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 조금씩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한 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