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 - L] promise
-------------
언제부턴가 라바나를 만나러 갈 때마다 무언가 라바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로 모험가를 맞이하고 있었다. 항상 적으로만 만났기에 그렇게 표정에 대해서 신경쓰며 살아가진 않았지만, 유독 요즘따라 시무룩한 표정이었기에 왠지 오늘은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채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내본다.
"...요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흠... 모험가여, 언약이란 건 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인간들에게선 그렇게 중요한가?"
"음... 언약이란 말이죠..."
"언약이란..."
"...그런데 갑자기 언약에 대해선 왜....?"
언약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를 묻자 라바나는 조금 고개를 숙이더니 궁시렁거리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때까지 라바나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굉장히 신기하긴 했지만, 혹시나 방심한 틈을 타 공격해올 지 모르니 일단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다.
"요새 무예를 겨루던 녀석들이 언약식 늦었다 뭐다 하면서 무예도 취소하더군..."
"...아..."
"그게 뭐길래 요새 몇 명이나 허탈함을..."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들 언약식을 하느라 라바나를 만나러 올 시간도 없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라바나는 언약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궁금해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언약이라는 건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이라서 그런 거랍니다."
"...중요한... 약속?"
"그러니까-... 우리같은 모험가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결혼 대신 언약을 하는 거예요."
"흠..."
"「살아있는 동안은 영원히 함께하자」... 가장 소중하면서도, 중요한 약속이니까요."
이제서야 왜 무예를 취소하고 그러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았는지 나름대로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는 라바나의 모습이었다. 우리들은 무예를 하면서, 또는 그 외의 다른 이유로 인해서 영원히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존재들이었으니까, 이렇게나마 살아있는 동안에는 같이 함께하자는 언약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처음에는 라바나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라바나는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 의외로...
"살아있는 동안 함께하자-...라, 의외로군. 인간들의 의식에 그런 뜻이 있었을 줄이야."
"라바나님은 조금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네요?"
"...영원히..."
"...라바나?"
갑자기 무예를 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그대로 달려와서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껴안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라바나가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라, 라바나...!?"
"그렇군 모험가여! 그리도 중요한 의식을 이제서야 알았다니! 자, 어서 하러 가자꾸나!"
"...그게 무슨...!?"
"그대에겐 나와의 언약이 당장 필요하다!"
"...!?"
무, 물론 좋긴 하지만... 그러면 무예를 하실 수가 없다구요! 정신을 차리라는 듯 살짝 라바나의 머리를 툭툭 친다. 그제서야 라바나는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미안하다는 표정과 자세를 취했다.
"물론 저도 라바나님과 언약을 하고 싶긴 하지만..."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아, 아뇨... 굳이 그런 건 아니고..."
"인간이 아니든 인간이든 그게 언약과는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굳이 인간과 언약을 해야 된다는 그런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라바나와 함께하는 언약이라면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했다. 음, 어떻게 하지...
"사실... 라바나님과 언약을 하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후후, 잘 생각하고 있구나."
"그럼, 우리끼리만 아는 사이로...?"
"마음대로 하거라...!"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만의 조용히... 같은 느낌으로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