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 샤른호르스트 / 엘레멘트] Another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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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 형과 함께 다니니까, 지금까지의 일상보다 훨씬 즐겁고 흥미로웠다. 물론 여전히 샤른 형은 이런 소심한 날 보며 아직은 많이 못마땅한 듯 보였지만, 내가 바뀌겠다고 약속을 했기에 잘 바뀌고 있는지 관찰하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았다. 샤른 형도 이런 게 한 번에 바뀌면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너무 급하게 생각하진 말자.
그러다 문득, 샤른 형과 함께 다니며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갑자기 기억이 뚝 끊긴 상태로 오랜 시간이 흐르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듣기론, 내 안의 또다른 인격이 깨어나면 지금 이 상태의 나 자신은 그 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이런 상황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뭔가 찝찝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고, 샤른 형은 그 표정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특히, 방금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갑자기 이런 우중충한 표정을 지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가... 일부러 이렇게 온순한 척 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보아하니 그 흑화인지 뭔지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군요."
"사실, 난 그 누구보다도 잔인해질 수 있는 녀석이잖아..."
비록 내가 그 때의 상태에 대한 기억을 전부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아직까지 일부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목숨이 달린 위험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놀이를 즐기는 듯 장난끼 넘치게, 그리고 편안하게 전투를 한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속은 그 누구보다도 잔인한데,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겉으론 착하게 행동한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음... 당신은 다른 이면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어..."
"만약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면 편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받아들인다...라..."
받아들인다는 말에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분명 과거에는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만 깨어나는 성격이었지만, 요즘은 멍하니 생각만 하고 있어도 이 성격이 깨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는 건, 이미 난 조금씩 이 성격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거부하는데도 계속 깨어나는 건 본능이지만, 이건... 그렇지 않으니까...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내 마음대로 이면의 성격을 꺼내고 숨길 수 있게 되었어..."
"자신의 성격을 컨트롤하실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럼 오히려 잘 된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어쩌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채 그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까, 샤른 형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왠지 나중엔 이 어둠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잡아먹는다- 라..."
"사실 생각해보면, 잡아먹혔을 때의 나 자신을 좋아할 녀석들이 더 많겠지만..."
"그 소심함만 아니라면 말이죠. 노력한다고 하셨으니 괜찮겠습니다만..."
"...그럴까...?"
"...뭐, 간단히 말씀드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여 답을 찾아가는 게 올바른 쪽일 겁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였다고...?"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채로 말을 뱉는다. 나 자신은 아직도 가운데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샤른 형은 그런 경계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니... 어쩌면 그렇기에 나보다 더 마음이 편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를 부정하는 건, 제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이건 당신과 다르게 '이면의 인격' 이 아닌 '충동' 이지만 말이죠."
"...아..."
"저는 그저 제 경험담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중요한 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나의, 선택..."
"물론 그 선택이 빠르게 내려지진 못할 겁니다. 많이 혼란스럽겠죠."
"그럴 수 밖에 없겠지..."
결국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지금의 나 자신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고민을 계속 미래에까지 가져갈 수만은 없을 것이고... 조금씩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혼란이 진정되는 것 같아..."
"끼긱, 다행이군요."
"그리고 흑화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도와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당신의 소심함을 대변해서 대신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느낌일까요?"
"응.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흑화가 아닌, 나를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또다른 이면의 성격.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지금까지 이 성격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한 것에 굉장히 헛웃음이 나왔다. 나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그런 모습을 거부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웃겨서 말이다...
"...이면의 성격과도 공생이 필요할려나."
"아마 가능하실 겁니다. 그 쪽의 당신 또한 당신을 형성하는 일부 중 하나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면의 성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자 머리에서 떠나질 않던 두통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까지 머리가 아팠던 이유도, 이면의 성격이 자신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나에게 전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말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이면의 성격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려고 노력한다. '널 받아들일 테니까, 제발 말썽은 부리지 말아달라' 라고...
"...이면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니까, 머리가 아픈 게 사라진 것 같아..."
"기분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 같다고 하니 다행이군요."
"형 덕분에, 여러모로 고마운걸."
"고마워할 필요까진 없습니다만."
"...뭐, 여담이지만... 왠지 이면의 성격이 나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어. '미래' 이니까,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거지."
"...독특한 분이시군요."
샤른 형은 내 생각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긴, 샤른 형에겐 굳이 미래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거고, 과거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에겐... 그럴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좀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한발짝씩 나아갈 것이다. 미래를 위한 발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