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자캐

[자캐 - 데피드] D-FISH DUMPLING over H-DECADE ~3~

E / P 2016. 2. 1. 23:31


2016/01/29 - [케로로/자캐] - [자캐 - 데피드] D-FISH DUMPLING over H-DECADE ~2~




변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굉장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은 다 평범한데, 나 혼자서 이런 괴상망측한 모습으로 다녀야 된다니…. 적어도 눈은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며칠 전에 부모님과 함께 이 곳에 오면서 얻게 된 천을 살짝 다듬어 안대를 만들었다. 의외로 안대 덕분에 넓어보였던 부분도 나름 커버가 되었으니 의외의 이득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런 걸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닌 그저 내 눈을 가리기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 모습도 다른 녀석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좋은 모습이긴 했지만… 아예 가리지 않고 다니는 것보단 확실히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 「저 녀석의 눈이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안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니 나름대로 기회를 만든 셈일지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 계속 여기에 있어야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도 이젠 지쳤다.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지만, 분명 이 계약이 날 어떻게든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계약에 대해선 이미 증오로 가득찼지만, 그렇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친구가 되어버린 셈이다.

여기까지 왔던 기억을 되새기며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에 올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게 가득 찬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서 이 길을 걷고 있다. 마치 「도대체 이 아무도 없는 곳에 이런 건물들은 누가 만들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막하고 소름이 끼친다. 그래, 여기 있었던 녀석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겠지. 아니면 내가 아예 다른 세계로 와버린 것이던가. 둘 중 하나일거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풋, 참 웃기는군. 아까 내가 있었던 곳만 해도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는데, 어째서 여기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지? 헛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모습인지라 나름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혼자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복잡한 모습도 나쁘진 않으니까. 아직 내가 예전에 살던 곳까진 거리가 많이 남았지만, 여기에서 충분히 쉬고 다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서 좀 쉬다가 다시 움직이자.

어디… 쉴 곳을 찾아야겠지.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을 듯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건너는 어떤 존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그냥 관찰하고 싶은 그런 나 자신의 본능이 깨어났을 뿐, 전혀 이상한 의도같은 건 없었다. 어쩌면, 미래를 예측한 나 자신이 아닐까… 싶긴 했지만.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신호를 무시한 채 내가 쳐다보고 있던 존재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차를 몰고 다니는 녀석의 표정을 슬쩍 보긴 했는데 아마 이 녀석에게 어떤 악감정이 있는 듯한 녀석인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걸 생각할 시간이 아니다. 얼른 저 존재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구하지…?

모르겠다. 그냥 전속력으로 길을 건너는 존재에게 달려들어 차에 치이지 않도록 밀어냈고, 대신 내가 차에 치였다. 살짝 정신이 몽롱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죽진 않았나보다. 내가 밀쳐낸 존재는 나를 쳐다보더니 날 보며 「온통 피투성이인데 상처를 치료해야 되지 않겠나」 라는 말을 하는 게 들렸다. 하지만 딱히 몸에 이상같은 게 생겼다고 느껴지진 않았기에 그저 괜찮다는 말만 하고 다시 원래 가던 길을 걸어갔다.


…아? 이것이 설마 계약에서 말했던 불로불사의 힘인가. 예전같았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일인데, 이젠 이런 걸 과감하게 저지를 수 있게 된 건가. 영원한 고통만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계약의 쓸모를 느끼게 되었다.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이 계약을 제대로 사용하는 게 좋겠지. 


그래, 차라리 계약을 제대로 활용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