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자캐

[자캐 - 엘레멘트 / 샤른호르스트] exploit

E / P 2017. 5. 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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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힘을 지녔다는 건, 참으로 이기적인 일입니다.」 - 샤른호르스트

「...아무것도 못하고 약하기만 한 것도... 이기적인 일이야...」 - 엘레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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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그 것이 대련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실전같아서... 정말로 형이 날 무참히 버리고, 짓밟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 내 팔에 상처를 입힌 것도, 그 이후에 내 몸을 조종해서 내 칼날로 내 손목을 긋게 한 것도... 전부 그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체념하듯이 말을 했었다.


"...죽이고 싶으면, 그냥 죽이면 되잖아. 아예 흔적도 안 남게..."

"당신을 죽이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말하지 않았던가요? 실전이 제일이라고 말입니다. 능력의 응용방법을 예시로 보여드렸습니다만."

"...난, 형이 쓸모없으면 무참히 버릴 거라고 해서, 버리려는 줄 알았어..."

"아직 당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필요한지 아닌지 지금 판단내리기엔 너무 이르다는 것이죠."


조금 긴장은 풀렸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지금까지 생긴 상처들에서 발생하는 고통도 더욱 커졌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척 최대한 노력해본다. 이미 표정으로는 전부 보이긴 하지만...


"...예전에도, 이런 상처들이 많았는데... 오랜만이네, 상처 보는 거..."

"공포증이 있다고 이야기 들은 것 같습니다만, 괜찮으십니까?"


샤른이 전송장치를 통해 구급상자를 건네주었지만, 받아들기만 할 뿐 상처를 치료하진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상처를 바라보기만 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손목에 상처를 만들 바엔... 목에다 만들어주지...


"그냥 아까 손목을 그으려고 했을 때, 차라리 목을 그어달라고 하는 게 나았을려나..."

"...나약한 이들은 딱 질색입니다. 돌아가죠."

"아, 잠깐만... 맡겨둔 물건이 있는데, 그것만 찾고 가면 안 될까?"

"맡겨둔 물건...이란 건?"

"형이랑 관련된 건 아닌데... 헤헤..."


근처에 있던 어딘가로 들어가서 자신이 맡겨두었던 물건을 찾는다. 뭐랄까, 다른 존재들이 워낙 많이 맡겨둔 탓에 내 것이 어디에 있는지 조금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겨우 물건을 찾고 그 물건을 조금 다듬고 난 뒤 밖으로 나왔을 땐, 조금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좀 많이 기다렸으려나...? 조금 다듬을 게 있어서 그걸 다듬었더니 시간이 걸렸네..."

"...뭡니까, 그 의상은?"


형은 옷보다는 가면에 시선이 쏠려있는 것 같았다. 하긴, 가면이 범고래 모양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럴만도 하겠지.


"마론별에서 주로 활동할 때 입었던 옷인데, 조금 많이 바꿔보고 싶어서-..."

"가면을 주로 사용하십니까?"

"...음, 거의 안 쓰기는 한데..."

"그럼 가면이 필요한가요?"

"에... 그게..."


솔직히 가면이 필요있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예전엔 썼었지만 지금은 쓸 일이 없는 것일 뿐이다.


"지금 만든 가면은 그냥 형이 생각나서, 형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아서... 그래서 형의 기운을 항상 받으며 활동하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만들었어."

"..."

"예전에는 여우 모양의 가면이었지만, 그건..."

"...그건?"

"..."


여우 가면이라는 말을 듣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게다가 피를 본 이후의 트라우마까지 겹쳐서 갑자기 괴로워졌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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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돌이킬 수 없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기억하게 되는 일.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들 오멘을 만드느라 바빴던 그 때, 오멘이 완성되기 직전 연구원들에게서 몰래 엿들은 말이 있었다.


「결과에 따라 클론 녀석이 사라질지, 엘레멘트가 사라질지 결정된다」 라는 말을.


그 말을 듣고 이대로 죽기엔 너무 두려웠기에, 남들이 모르는, 남들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에 몰래 옷과 가면을 챙겨 오멘이 만들어지고 있는 연구실에 들어왔다. 

그 옷이라는 건... 지금의 이 옷을 다듬기 전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면은 그 여우 가면.


옷을 입고 가면을 써서 내 모습이 전혀 노출되지 않는 상태로 오멘의 연구실에 들어오자, 오멘은 심심했던지 나를 보며 굉장히 반겨주는 모습이었다. 

물론 오멘은 그 때의 내가 본인의 원본이라는 사실을 몰랐겠지. 모습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무슨 말? 재미있는 말이야?"

"결과에 따라서... 네가 사라질 수도 있어."

"갑자기 그게 무슨 말?"

"원본과 너 중에서 누가 더 나은지 판단하고, 판단 결과 더 낮은 결과가 나온 녀석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거지."

"헤- 그랬던 건가! 좋아좋아- 좋은 정보 고마워! 근데, 넌 누구냐?"

"...그건,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은데..."

"뭐, 꼭 기억하고 있을테니, 나중에 꼭 한 번 더 방문해 달라고-?"


그 당시에는 그저 녀석이 다른 방법을 판단해서 어떻게 저걸 바꿔놓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결과물은 주변의 인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오멘의 의지로 죽인 게 아니라, 내가 오멘을 통해 녀석들을 죽이게 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오멘에 의해 죽은 존재들의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굉장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그리고 공포감을 느꼈다. 오멘이 죽인 게 아닌,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 절대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까... 

계속 그 곳에 있었다간 정말 내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부서질 것만 같아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론별 안에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때도, 꼭 가면과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그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존재이니까, 괜히 모습을 보이고 다녔다간 왜 돕지 않고 혼자서 빠져나왔냐고, 그런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아서... 

사실은 내가 저지른 일인데, 그걸 말했다간 더 큰 비난을 들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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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이야기는, 돌아간 뒤에 하죠."

"..."


하지만 그 때에도, 돌아간 뒤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