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 베이가]

E / P 2017. 7. 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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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침착하자..."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한심한 인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 위대한 베이가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만든 녀석이 누구인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아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렇게 파헤치고 있을 시간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요들같은 모습은 남아 있으니까..."


지평선을 펼쳐 놓은 채 그 안에 쭈그려 앉는다. 이런 자세가 편해서라기보단, 지금의 이 인간의 모습에 대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서 이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편한 것 같기도 한데, 어딘가 불편한 느낌도 있고... 모르겠다.


그렇게 있는데, 수풀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이런 곳에 올 만한 녀석은... 그 녀석밖에 없는데... 도대체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그리고 곧 녀석은 수풀 사이에서 얼굴을 스윽 내밀어 나를 바라보곤 피식 웃는다. 아무래도 날 굉장히 귀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했다가 큰코 다치게 만들어 주지.


"내가 도와줄까-?"

"변태 여우는 필요 없거든!?"

"그래도- 나라도 있는 게 굉장히 도움이 될 텐데-?"

"어째서!?"

"적어도 너보다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나잖아? 후후-"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생활하는 것에 대해선 나보다 더 변태 여우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무작정 저 변태 여우를 믿기도 좀 그런데... 어떡해야 될까.


"...잠시 생각 좀 해 보고."

"답은 정해져 있고 대답만 하면 되는ㄷ..."

"아, 시끄러워. 조용히 있어 봐."

"흐흥, 튕기는 거니-?"

"아, 진짜..."


조용히 있으라니까 정말 말 안 듣네. 어쨌든 꽤나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했고, 이제서야 그 고민에 대해 해결방안을 찾게 되었다. 문제는... 그 해결방안이라는 게 아무래도 정말 찝찝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데 다른 방안이 없기도 하고...


"...변태 여우. 아직 거기 있냐?"

"으응-♪"

"아주 잠시동안만, 나 좀 도와주지 그러냐."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정말 다른 녀석도 아니고 네 도움을 받긴 싫었는데, 어쩔 수가 없단 말이지..."

"이 아름다운 누나가 제대로 알려줄게-♪"

"...입 찢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그 변태 여우에게서 대충 인간에 대해 어떤 것들을 알아두면 좋은지,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와 같은 여러가지 내용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듣고보니 그렇게 별 다른 차이는 없었다. 괜히 도와달라고 했나- 싶을 정도로.


"뭐야, 별 거 없잖아."

"이 누나가 너무 잘 가르쳐줘서 그런가-?"

"아 - 너 무 잘 가 르 쳐 줘 서 정 말 감 사 하 네 요 - "

"좋으면서 괜히 싫은 척 하기는-♪"

"어차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시간도 꽤 걸릴테니, 인간 녀석들이나 보러 가볼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인데-?"

"적어도 이런 모습이면 조그맣다고 놀리지는 않겠지."


이야기만 들어봤자 실제로 써먹어보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 이 모습으로나마 인간 녀석들을 제대로 한 방 먹여볼 생각이다.

어떠냐, 이 위대한 몸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느냐.


"그럼, 가자고."

"어떤 모습을 보일 지 기대되는걸-?"

"그 모습 보기 전에 없애버릴 수도 있으니까 행동이나 조심하셔."

"겁주는 거야-? 무서워라-♪"

"...으으..."


마지막까지 신경 건드리는 모습이 정말... 변태 여우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