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커뮤

[자캐 - 엘리시온 / 길티] Trust

E / P 2018. 1. 2. 22:45



《당신은... 저에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희망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 희망과 즐거움을 받은 만큼, 이 영원의 불사조가 곁에서 지키겠습니다.》

- 엘리시온,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은 종이 中




"...오늘도 참 피곤한 하루였군요."


마땅히 큰 성과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슨 연구이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비밀로 해 두고 싶군요. 나중에 제대로 된 성과가 나타난다면, 그 때 천천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제 좀 저도 제대로 쉬어볼까- 싶어서 항상 쉬던 곳으로 왔는데, 이미 길티가 벌써 와서 쉬고 있었군요. 정확히는... 잠들었지만.


"이런 상태로 주무시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깊게 잠에 빠져 있어서 들리지는 않겠지만, 제가 입고 있던 옷을 잠시 벗어서 이불처럼 덮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있으면, 적어도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것보단 따뜻하게 잠에 들 수 있을 테니까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옆에 앉아 잠자는 모습을 계속 관찰하고 있는데, 무언가 길티를 볼 때마다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참 여러 의미로 감사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분이기도 하죠.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 우연히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게 있었습니다.



"...그냥 왠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떤 거?"

"저를 만나기 전의 과거엔, 무슨 일을 하며 지내셨습니까?"

"...흠, 별 걸 물어보네. 특별한 건 없어. 부모가 없었던지라 자급자족하며 살았지. 어떤 일은 너무 가혹해서 하다가 그만 둔 적도 있었고... 결론은 그렇게 썩 유쾌하진 않았어."

"흠..."


"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군요."

"이참에 네 과거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은데."

"제 과거라... 저도 사실 별 거 없긴 합니다. 저는 일종의 로봇같은 것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입니다. 그래서 저를 만든 존재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죠. 그런 존재였기에... 저에게도 가족같은 건 없었습니다. 혼자서 알아나갔을 뿐..."

"...흐하, 나름 비슷하긴 하네. 성실의 정도는 좀 다르겠지만... 크흐."



...그렇게 과거에 대해 우연히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의외로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다가갔었는데, 이렇게 좀 더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갔을 때 그 부분마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알게 된 인연을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렇게 챙겨드리는 능력이 되지 못했다면, 저를 그렇게 좋은 녀석으로 생각하지 않으셨겠죠...?"

"글쎄, 네가 나쁜 녀석은 아니잖아. 챙겨주지 않았다고 해서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

"지금만큼 좋아질 수는 없었다고 쳐도, 너는 너였을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저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에겐, 신뢰란 곧 임무를 의미했으니까요. 신뢰를 계속해서 얻으면, 그만큼 계속 임무를 저에게 맡겨서 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반대로 신뢰를 잃게 되어 저를 나쁘게 생각하게 된다면 저는 결국 버려질 테니까요.


버려진다고 하니... 사실 전 과거에 버려질 뻔한 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왔는데, 저에게 돌아온 말은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처분에 대한 이야기가 돌아올 것이니 잠시 기다려라.' 였으니 말이죠.

뭐... 결과적으로 따지면 결국 그 폐기처분은 없었던 일이 되긴 했지만, 그 일 때문일까요... 여전히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건...


그래서 저를 나쁘게 생각하는 존재들이 생기게 된다면, 저를 어떻게든 없애려고 생각하게 되겠죠. 저는 그게 너무 두렵습니다. 저를 믿어주는 분들의 기억 속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니까요.

그 분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한순간에 신뢰하는 존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게 너무 끔찍합니다.



"...저는, 절 믿어주는 분들을 영원히 곁에서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다른 존재들에게 나쁜 존재로 기억되지 않게 노력해야 되겠죠."

"...푸핫, 재미있네, 엘리시온."

"어떤 게 말입니까...?"

"네가 그런 존재로 기억될 만큼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있나?"

"...아뇨, 아직까진 없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없을거야."

"...네?"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으니, 나쁜 행동이 몸에 배이진 않았겠네. 그렇기에, 나쁜 행동을 할 일이 전혀 없을거란 뜻이라고."

"그렇게 되는 건가요...?"



...저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군요. '저를 신뢰하는 존재를 지켜내기 위한' 여행입니다. 그 여행의 도우미는 지금 제 옆에 있는 길티가 될 것이고요. 어디로 가야 된다- 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이 기다리고 있겠죠. 그 결과를 찾아내기 위해,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늘 말하는 것이지만, 절 믿어주시고 좋은 녀석으로 생각해 주시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합니다."

"크흐, 갑자기 그런 말 들으니까 부끄러운데."

"이 영원의 불사조, 엘리시온이... 영원히 곁에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름대로 자유로운 몸 아닌가? 배운 것도 많을테고. 그래서 특별히 해보고 싶은 거라던가, 그런 것도 있겠지?"

"...하고 싶은 것이라... 지금은 연구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고, 막상 그런 걸 떠올려 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이렇게 맺어진 인연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습니다."

"은근히 소박하네. 그러니, 그 소소한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주지. 감사해하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 감사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