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커뮤

[자캐 - 엘리시온 / 길티] #

E / P 2018. 1. 5. 01:13




일단 조용히 들어와서 처리하고 오려고 했는데, 들어오는 길목에서부터 길티의 눈에 발각되어 버렸습니다. 길티는 피식 웃으며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꼴이 났냐- 라는 느낌으로 계속해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츠으읏..."

"허- 뭐야? 온몸에 피를 다 묻히고."

"네, 뭐...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숨기지 말고 다 말하는 게 좋을텐데. 숨겨봤자 좋을 거 없어."

"..."


뭐, 들켜버렸으니... 계속해서 이걸로 저에게 질문을 걸어올 모습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명을 좀 죽였습니다."

"무슨 이유로?"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긴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지금 네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잔뜩 생겼는데, 이대로 끊으면 어쩌자는 거지?"

"...뭐, 어쩔 수 없죠... 사건은 이렇습니다."



오늘도 연구 일을 위해 연구소로 오는 길이었는데, 연구소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대충 봐도 한두명 정도의 그런 무리는 아니었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뒤에서 조용히 숨어 그 무리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까 더 많은 인원이 몰려오더군요. 다 합하면, 대략 10명 정도는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한 곳으로 모여 무언가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인공 생명체라고 말씀드렸듯이, 임무 수행에 필요한 일부 감각은 좀 많이 발달한 편입니다. 즉, 그 무리들이 뭐라고 속삭이는 지에 대해서 다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그 때 들었던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예전부터 계획해왔던 일이었으니, 제대로 끝내자.」

「이번이 아니면 다른 기회는 없다.」

「다들 제대로 챙겨왔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녀석이 오는 걸 보면, 그 때부터 시작이다.」


...라는 내용의 속삭임이었는데, 사실 이런 부류를 예전부터 쭈욱 봐왔기에, 그닥 좋은 쪽은 아니구나- 라는 건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죠.


그렇게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유유히 연구소 앞에 도달하니, 예상대로 그 무리들이 와서는 제 앞을 가로막고, 곧이어 다른 일행들도 나와서 제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곤 무기를 하나둘 꺼내들기 시작하더군요. 방금 말했듯이 제대로 챙겨왔냐고 물어본 것부터가 이런 거 아니면 꺼낼 일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위협적인 도구들은 이 주변에서 안 꺼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시끄러워!"

"...분명 경고를 드렸습니다만, 제 경고를 듣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죠."

"야, 다들 준비해!"

"흠... 그렇게 나오신다면..."


낫을 꺼내들곤 주변을 한바퀴 빙 돌리며 씨익 웃어보였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그렇게 슥- 말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의 그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도망가기 바쁘더군요. 물론 몇몇 분들은 꿋꿋하게 무기를 들어 절 위협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에 의해 좀 다쳐서 피투성이이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은, 다 죽였습니다. 한 명도 남김없이. 그만큼의 상처와 피도 저에게 많이 생기긴 했지만요.



"...치료나 하는 게 어떠냐?"

"괜찮습니다. 어차피 인공 생명체인 몸... 다쳐도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아니, 너... 굉장히 문제 있어 보여서."

"...네? 괜찮습니다만..."


그러곤 어디선가 붕대를 가져와서는 제 몸에 있는 상처 부분에 돌돌 말아서 감싸주었습니다. 저, 정말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진짜로 저는 괜찮습니다..."

"너한테나 괜찮지, 나한텐 안 괜찮아."

"아..."

"네가 다쳤는데 그걸 치료하지 않고 가만히 냅두는 모습을 보긴 싫거든."

"...계속 냅뒀다가 더 심해질까봐 말입니까?"

"음- 아마도?"

"그리고 그렇게 계속 냅두면 제가 쓰러지게 될 거고... 그래서..."

"...어이, 거기까지."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보니 문득 제 쪽에서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사람을 죽였는데... 별 특이한 반응은 없으시군요?"

"먹고 살려면 그럴 수 있으니까."

"...아..."

"어떤 일이든지 해야지. 살아가려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사실 제 생각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제 안전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바라보면 이 연구소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갑자기 또 이상한 소리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제가 만약 연구소 안에 있었다면 길티의 목숨도 위험했을 겁니다."

"그랬을려나..."

"물론, 뭐... 제가 끝까지 길티를 지켜냈겠지만요."


결론은 별 일 없어서 다행이라는 겁니다.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다른 게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언제든 바칠 수 있어야 진정한 영원의 불사조, 엘리시온의 모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