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 옵시디언 / 엘리시온] take a step forward
나 혼자서 잠시 오고 싶은 곳이 있어서, 플루토는 잠시 오닉스에게 맡겨둔 채 조금 먼 길을 걸어서 이 곳에 도착했다. 사실 예전부터 자주 찾아오려고 노력은 했지만, 계속해서 의뢰가 쌓이니까 도통 올 시간이 없었다. 엄청 예의없어 보이겠지. 미안해.
여기에 오기 전에, 근처 가게에서 꽃도 한가득 끌어안을 정도로 사고, 내가 먹을 것과 날 기다렸을 그 분들을 위한 것들도 조금 챙겨서 왔다. 일단 먼저 꽃부터 놓아두고, 그리고 내가 사온 음식들도 가지런히 놓아준다.
「그동안 바빠서, 못 왔어요. 저, 참 못난 녀석이죠?」
「그래도 저 없는 동안... 잘 지냈죠?」
아무런 대답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물어봐주는 게... 그 쪽에서도 좋아하겠지. 그리고 이런 곳에선 이렇게 혼자서 이야기하는 게 흔한 곳이니까 주변의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애초에 내가 그런 눈치를 볼 녀석은 아니긴 하다만...
놓아준 음식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내가 먹을 것들도 조금씩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먹으면, 마치 그 사람과 나의 먹는 속도를 맞춰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혼자 빨리 먹은 다음에 기다리면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
「...맛있죠? 저도 이렇게 같이 먹으니까 맛있네요.」
「언제쯤이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저 하늘로 날아간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든 저 높이 날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왜 저 혼자 외롭게 이렇게 두고 간 거예요?」
푸르게 빛나는 하늘과, 바로 앞에 있는 비석과 묘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어째서 나 혼자서만 이렇게 살아남아 모든 것들을 다 헤쳐나가고 있는 걸까. 그나마 시라야미 형이 있긴 하지만, 시라야미 형도 바쁘니까 자주 만나질 못한다. 그래서 더욱 더 외롭다는 생각이 커졌다.
「저도, 거기로 가면 안 되나요...?」
「적어도 이렇게 마음 고생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은데...」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금씩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정말 힘든데... 나 혼자서 마음고생 하는 것 같은데...
그 곳은... 여기보다 더 편할까...?
그렇게 비석에 기대어 주저앉아 슬프게 울고 있으니까, 가끔씩 주변에서 지나가던 존재들이 나에게 와서는 괜찮다며 위로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전혀 효과가 있지 않았다. 그저 예의상 다가와주는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조금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낯선 존재의 느낌이 아닌, 항상 보던 익숙한 존재의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엘리시온이 내 앞에 와서는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는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망설이고 있는 거겠지.
"..."
"여긴 왜 온건데?"
"할 말이 있습니다."
"...뭐?"
그렇게 정말 오랜 시간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가만히 있어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는 걸 깨닫기라도 한 것인지 엘리시온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그 분들은..."
"알아. 네가 한 거잖아."
"...!? 그걸... 어떻게...?"
"언제부턴가 기억이 나더라고."
조금씩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엘리시온 앞에서 그 때의 이야기들을 꺼낸다.
"너였잖아. 우리 가족들을 죽인 게. 그것도 내 앞에서."
"..."
"아마 날 이런 까마귀의 모습으로 만들면서 그걸 잠시 묻어두려고 어떤 짓이라도 했겠지. 안 그래?"
"...정확하시군요."
"하지만 완전히 묻어버리긴 싫었는지, 잠시동안 기억나지 않게 만들었고 말이야."
"..."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엘리시온에게 의문이 들었던 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왜 완전히 묻어버리지 않았지?"
"...그래도, 그 기억을 통해 가족은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가족을 죽였고?"
"그건... 제가 의도한 게..."
"...그래서, 여긴 왜 찾아온 거야? 고작 그 이야기 하려고?"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기엔 조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니까요."
"내가 뭐 어떻게 반응하길 바랬던 건데?"
"..."
엘리시온은 그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아마 내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거겠지. 하긴, 내 기억을 묻어놨었는데 내가 기억을 하고 있으니, 할 말이 있을까.
이렇게 있다가, 정말 크게 한숨을 내쉬곤 날개를 휘저으며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살짝 고개를 돌린다.
"하-... 됐다. 괜히 분위기 더 가라앉히기 싫어."
"...옵시디언...?"
"예전의 일을 다시 꺼낸다고 해서 예전의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가서, 저 멋진 미래의 내가 되어 하늘에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희망이 되어 줄 거야."
"...!"
"언제까지 우울하게 있을 수만은 없잖아. 적어도 여기서만은 이렇게 우울하게 있을 수 있으니까, 우울한 기분들을 모조리 풀어내고 있는 거고."
조금 희미하게나마 싱긋 웃어보이며, 엘리시온에게 위로를 해 준다.
"나도 잘 알아. 엘리시온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거."
"...옵시디언..."
"이런 기억들은, 내가 알아서 잘 제어하고 있을 테니까- 다음엔 그러지 마-"
"알겠습니다. 절대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묘지와 비석을 바라보며, 저 멀리 빛나는 달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처럼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항상 거기서, 날 바라보고 있어줄 거죠?」
「내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하면, 하늘에서 날 바로 잡아주겠다고 약속해 줄 거죠?」
다시 엘리시온 쪽을 향해 바라보곤 방금 전보다는 더 크게 웃어보인다.
"비록 지금은 하늘에 있을 내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지금의 나에겐 끝까지 보호해 줄 존재가 있으니까."
"플루토 말씀이시죠?"
"플루토는 당연하고,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도 보호해 줘야지."
"아아-..."
"저 멋진 미래 속의 나를 만나서, 방금 전처럼 우울하게 있던 나 자신에게 다가가서 용기를 심어줄 거야."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픈 기억들을 마음 속에 담고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