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로/도로로] c-diver -f-
잠시 길을 걷다가 신기한 것이 있다면서 한 번 체험해보고 가라는 존재의 말에 이끌려 어떤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는 미로가 있었다. 흥, 고작 미로가지고 신기하다고 생각할 존재가 몇이나 될 것 같냐. 처음엔 그저 하찮게로만 생각했을 뿐이지만, 미로를 체험하다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이건 분명 평범한 미로가 아닌 것이다. 무슨 장치가 있는거지?
젠장, 막다른 길이군. 나름 미로에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평범한 미로가 아니라서 그런지 상당히 강화된 미로인 것 같았다. 가도가도 계속 막다른 길만 앞에 나올 뿐이니…. 기억을 더듬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걸어갔는데 이번에도 새로운 막다른 길이 나왔다. 그런데 여긴 이상한 버튼같은 것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힌트같은 것이 등장하는 건가? 딱히 무언가의 도움을 받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하자고.
버튼을 누르자… 함정이었다. 바닥이 두갈래로 갈라지더니 미끄럼틀같은 걸 타곤 더 이상한 미로가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아, 이런. 괜히 쓸데없는 희망을 가졌다가 더 큰일로 번져버렸군. 어쩔 수 있나, 이 미로라도 제대로 탈출해야지.
여긴 특이하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을 듯한 도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울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안을 살펴보니 탈출 루트의 절반 정도가 보였다. 이 도구를 사용해서 저 어딘가에서 나처럼 함정에 걸린 녀석과 소통하면서 이 곳을 빠져나가면 되는건가. 마침 도구에서 연락이 오는 듯하니 받아보기로 하자.
"거기 누구냐."
"앗, 그대는 기로로 아니오이까?"
"…? 도로로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실은… 신기해서 들어왔다가 함정에 걸렸소이다."
"…한심하긴."
"그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어쨌든 이 곳을 나가기나 하자고. 나머지 잡담은 바깥에서."
"좋소. 여기에 지도가 있으니, 이걸 가르쳐 드리면 되는 것이오이까?"
"아마 그럴거다. 이 쪽에도 지도가 있으니 내 말을 잘 듣고 나오도록."
"알겠소이다."
지도의 길을 기억하며 병장에게 알려주자, 병장은 길찾기에는 능숙한 듯 재빠르게 내가 말하는 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대로 나는 좀 헤매긴 하지만, 그래도 길치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서로 반쪽씩 길을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마 어딘가에서 서로 만나는 게 아닐까. 만난 후에는 뭘 해야 되는거지?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먼저 만나는 걸 우선으로 하자.
병장이 알려준 대로 길을 걷자,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병장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서로 한 곳에서 만나는 거였군. 그나저나 벌써 도착했다니, 좀 늦어서 미안한 감도 없지 않게 있었지만 병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기서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듯 웃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그대를 만나게 되어 꽤 의외이오이다."
"그렇군. 병장은 이런 곳에 안 올 줄 알았기에…"
"호기심이란 건 항상 참을 수 없으니까 말이오. 그대도 호기심이 많은 것 같소만."
"글쎄… 내가 자발적으로 이 안으로 들어온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젠 여길 나갈 방법을 찾아야 될 것 같소이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어디로 나가야 될까."
"아마 여기에도 버튼같은 게 있을 것 같지 않소이까?"
"아직 안 가본 구간이 있나?"
"생각나는 곳이 있소."
"그럼 길 안내를 부탁하지. 그 곳으로."
병장이 앞장서는 대로 길을 따라가자 확실히 지금까지 찾아본 적이 없는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굉장히 화사해지는 기분인데, 아무래도 이 길에 탈출구가 있어서 그런걸까. 얼른 이 답답한 곳을 빠져나오고 싶다. 해야 될 일도 있는데, 여기 하루종일 갇혀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굉장히 끔찍하군.
아까 내가 함정에 걸린 곳처럼 여기의 막힌 곳에도 버튼같은 것이 있고, 동시에 위로 올라갈 수 있을 듯한 엘리베이터같은 것이 있었다. 역시, 여기가 탈출구인가. 병장은 날 먼저 안으로 들이곤 그 다음으로 자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 이런 건 굳이 배려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다행히 찾아왔군."
"이 곳에서 하루종일 있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오이다."
"처음에는 재미없었지만, 병장과 함께하니 나름 재미있군."
"소인도 길을 찾는 재미를 깨달은 것 같소."
"밖에서 하고싶은 일은 있는가?"
"나중에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는 게 어떻소이까?"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기꺼이."
바깥으로 나오자 처음에 우리들을 입구에서 맞아주었던 녀석이 축하를 해 주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서로가 협력해서 이렇게 탈출한 존재는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저 하찮은 미로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하찮지 않았나보다. 어쨌든 축하를 뒤로 하고 마치 며칠만에 맡는 듯한 바깥 공기가 꽤 상쾌했다.
"오랜만에 숲이라도 걷는 게 어떻소이까?"
"흠, 나쁘진 않을 것 같군. 숲의 공기를 마시는 것도 좋긴 하니까."
"소인이 좋은 곳을 알고 있으니, 그 곳으로 안내하겠소이다."
"이번에도 부탁하지."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오묘한 병장이지만, 같이 있으면 확실히 이득이 많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