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로/커뮤

[자캐 - 옵시디언] occasional rain

E / P 2018. 3. 16. 21:51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본 적 있어? 



…나는, 지금의 이 모습으로 변하자마자 바로 행복하고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사실 지금처럼 나름대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건 그 이후의 경험으로 알게 된 일이었으니까. 

지금의 모습으로 된 뒤에도 나는 다른 존재들에 의해 여전히 따돌림받아야 했고, 오히려 이 모습이 되면서 더욱 더 많은 놀림을 받았던 것 같았다.


원래부터 이상했는데 날개가 달리니까 더 이상해졌다고, 겉모습이 변한다고 속이 변하는 건 아니라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라고… 정말 여러 의미로 다양한 말들을 들어서 더 기억나는 것도 없다.


아, 그래도 확실히 그 당시에 예전의 모습보단 편한 게 하나 있긴 있었다. 팔이 날개가 되었기 때문에, 녀석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는 건 예전보단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뭐… 그닥 긍정적인 부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피하는 거라도 빠르게 할 수 있었으니 나름 좋았다면 좋았으려나.


그러다 길을 방황하다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다가간 곳은, 어떤 허름하면서도 내부는 꽤나 깔끔했던 어느 건물이었다. 그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나를 보면서 이제서야 주인이 왔다고 날 좋아했었다.


…솔직히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항상 날 놀리기만 하던 존재들 뿐이었는데, 내가 왔다고, 심지어 초면이었는데 좋아해 주었으니… 많이 의문스럽기도 했었다.


나를 좋아하던 그 존재는 나에게 낫을 건네주며 「언젠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존재를 위해 이 낫을 휘둘러 그 존재를 보호해라」 라고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날 좋아해주는 존재가 어디 있다고… 이 낫을 주곤 그 존재를 보호하라고 하는 건지.


그래도 이 때부터인가, 낫이라는 게 굉장히 컸고 꽤나 위협적이게 생겨서 그런지 이 낫을 가지게 된 이후부터 조금씩 싱긋 웃으며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마음 속은 여전히 피폐한 상태로 여전히 있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떤 거대한 도시로 넘어갔을 때의 일이다. 늘 그렇듯 주변을 배회하며 무엇이 있나 둘러보고 있었을 때, 어떤 길 사이에서 특이한 소리와 느낌이 느껴져서 그 길로 본능에 이끌려 걸어갔었다.

그 본능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케르베로스의 애교를 잔뜩 받고 있는 박쥐처럼 생긴 존재 한 명. 바로 플루토. 그 당시엔 박쥐 이외의 다른 것도 섞여있었는지 몰랐기에 나를 보고 그르릉거리며 경계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먹을 게 있어서 그 당시에 꽤나 빨리 친해졌던 것 같았는데 만약 그 때 먹을 게 없었다면… 나는 이미 그 때 플루토에 의해 죽어 있었을까? 솔직히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긴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에 길을 걷다가 비를 잔뜩 맞고 있는 플루토를 보며… 왠지 내 마음속에 영원한 비가 내리고 있는 것처럼 플루토의 마음 속에도 영원한 비가 내리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를 맞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 같다. 왠지… 이 존재도 나랑 비슷한 것 같다는 걸. 그래서 먼저 다가가서 우산도 씌워주고, 친절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나는 플루토에게 먼저 다가가서 여러가지 좋은 행동들을 베풀었다.


좋은 행동을 베풀다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플루토에 대한 사랑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 사랑을 무작정 마음 속에 담아두기만 할 순 없을 정도로 커져버려서 플루토에게 영원히 같이 있고 싶다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었다. 그리고 돌아왔던 대답은…


나를 껴안아주면서 고맙다고,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고… 그런 대답이었다. 나는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 예전부터 항상 나에겐 부정적인 이야기만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것도 전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루토는 날 받아주었고, 나를 원하던 눈빛이었다.


…아, 그래서 그 때 그 존재가 나에게 낫을 건네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구나. 언젠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생긴다면 이 낫으로 보호해 주라고… 그래서, 정말로… 나는 플루토가 날 받아준 이후부터 이 낫을 당당히 꺼내며 플루토에게 조금의 해라도 끼치는 녀석은 끝까지 내가 쫓아가서 전부 찢어버리곤 했다.

이 때부터였을까? 조금씩 내가 강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던 게. 혼자서는 전혀 강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했고,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는 것도 놀라웠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 준 플루토를 위해… 언제든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


그리고 플루토를 사랑하게 된 이후로,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내리고 있던 비도 조금씩 걷어지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가끔씩 먹구름이 끼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 정도는 확실히 좋아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아마 플루토의 마음 속에도… 나처럼 해가 뜨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