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젝트 헤드

[자캐 - 로메로 필라이트 / 키네틱 디바이드] Traveler

E / P 2018. 3. 16. 23:00





…날씨가 묘하군. 저번에 비가 와서 그런가- 조금 추워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사실 나에겐 크게 상관이 없는 게-… 몸이 기계라서 언제든 원하는대로 온도를 살짝 조절할 수 있어서 말이지. 물론 이런 기능도 너무 오래 쓰면 과부하가 걸린다나 뭐라나.

솔직히… 온도 조절하는 기능 써 본 적 없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조절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냥 내가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고.


그렇게 바깥에서 풍경 구경이나 하고 있다가, 저멀리 무언가 우리들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묘하게 다른 듯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뭐랄까… 우리들과는 조금 다르게 장미같은 느낌의 꽃이 머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들고 있는 것들을 보아하니- 마치 여행을 다니는 녀석인 것 같은데, 여행자인가? 싶은 마음에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겉으로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의외로 나는 여행을 많이 좋아한다. 그저 두 녀석 곁에 있느라 여행을 할 여건이 전혀 없었을 뿐이지. 지금은 그 두 녀석들이 나중에 연락할 때 같이 만나자면서 알아서 갈 곳으로 갔기 때문에 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일단 귀찮아도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게 좋겠지. 마치 길을 걷다가 먼저 말을 건네는 녀석인 것처럼 최대한 흉내내며 곁으로 다가간다.


"저기-"

"흠? 누구인가?"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지."

"어떤 것인가?"

"…혹시 좀 여유로우면 같이 어딘가에 앉아서 이야기라도 할까 싶은데. 묻고 싶은 게 한두가지 정도가 아니라서 말이야."

"후흐흐, 좋지. 낯선 존재와의 이야기는 언제든 환영이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려는데, 살짝 거리를 두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초면이라서 좀 가까이 붙어있는 건 무리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일단은 물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굳이 그렇게까지 거리를 둘 필요는 없잖아?"

"아, 내 가시가 그대를 다치게 할 것 같아서 그렇다네."

"걱정 마셔- 옷 때문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신체도 기계같으니까."

"다리처럼 말인가?"

"그래. 이 다리처럼."


녀석은 나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왜? 뭐 하려고?"

"정말 기계로 이루어진 신체가 맞는지, 만져봐도 되겠나?"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묻고 그러는 거야. 만져 보라고-"


그렇게 이곳저곳 옷으로 가려진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진짜로 내가 기계 신체가 맞는지 확인하는 모습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다는 걸 확인한 뒤에는 조금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위험한 거라도 숨기고 있는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인간 신체엔 나의 가시가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네."

"그러고보니, 얼굴이 장미꽃처럼 생긴 것 같더만… 가시도 있는 거야?"

"가시덩쿨도 있고, 그대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들이 많지."

"…너 말이야, 볼 때마다 흥미로워…"


지금 보니까 손도 약간 덩쿨같은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남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조금은 주저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물론, 나는 말했듯이 인간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그런 체질의 신체가 아닌지라 전혀 걱정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처음 봤을 때 느낀건데- 굉장히 여행자같은 느낌이 나네."

"그렇다네. 이곳저곳 다양한 세계들을 여행하며 관찰하고 있소."

"그렇구나- 아, 맞다. 나는 키네틱. 키네틱 디바이드."

"로메로 필라이트. 간단하게 로메로라고 불러주시게나!"

"이름 구성도 참 특이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어-…"


아마 그 두 녀석이 보게 되면 나를 보고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을 할 것이다. 만약 정말 그런 반응을 보게 된다면 이게 다 너네들 때문에 뭐든지 다 귀찮아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했던 거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나저나 여행자니까- 이곳저곳 다 돌아다녀 봤겠지? 다른 세계는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이 곳 이외에도 다른 곳도 많이 돌아다녔을 것 같은데… 그런 곳에 나도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미 갔던 곳은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다네. 아직 다양한 세계를 만나보아야 되는데, 갔던 곳을 또 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겠는가?"

"흠-…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지. 그만큼 인상에 남았던 것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도 큰 의미는 없을 거야."

"그대도 여행을 좋아하오?"

"물론이지. 그저 시간이 없어서 못 다닐 뿐이었어. 이제서야 시간이 생겨서 나름대로 관심도 가지는 거고-…"

"오오- 그렇다면 같이 다니며 같은 길을 걸으면 좋겠구려!"

"그럴 것 같네-… 로메로가 지금까지 다녔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

"그리고 혼자서 하는 여행도 좋지만 누군가와 같이 걷는 것도 좋으니 말이오-"


다행히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꽤나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어차피 나 혼자 돌아다닌다고 하면 크게 흥미를 못 느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여행할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흥미로운걸."

"바람따라 흙길따라 걷다보면 그대의 마음에 드는 곳도 나올 것이오."

"아마 가는 곳마다 내 마음에 드는 곳일수도 있겠지."


꽤나 진지하게,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본다.


"…내가 네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도 될까?"


혼자서 하는 여행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여행길을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