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 로메로 필라이트 / 키네틱 & 디스토픽 디바이드]
같이 밤하늘을 보며 오랜 시간동안 이 언덕 위에 있는다. 둘 다 이 장소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굳이 다음 여행지로 빨리 가야 될 이유도 없으니까 이 곳에서 편하게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로메로의 향기가 꽤나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로메로의 주변에 나비나 벌 같은 것들이 꽤 많이 몰려오는 모습이었는데, 아마 나 말고 다른 녀석이 있었다면 기겁을 했겠지.
몇몇 벌들을 보고 있던 중, 유독 끝부분에 뾰족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래서 저걸 어디에 쓰는건지 궁금했기에 로메로에게 물어본다.
“벌이라고 하던가? 끝부분에 있는 저 뾰족한 건 어디에 쓰이는거지...?”
“아, 저건 벌침이라고 한다네. 정말 위급한 상황일 때에만 쓴다네.”
“저걸 써버리면 부작용같은 것도 있나?”
“침을 쏜 벌은 죽소. 벌의 신체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다네.”
“기껏 위험해서 쐈는데 결국은 죽는다니, 비참하다.”
꽤 멍하니 있다가 우리들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나비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뭐랄까, 로메로가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까- 라는 호기심?
“이렇게 보니까- 나도 한 마리 나비같지 않아? 로메로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
“...나비라고 하기엔 좀 큰 것 같소.”
“나비가 이렇게 클 수도 있지- 메카스러운 나비-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
“허허, 그래도 나비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오.”
로메로는 그렇게 말하며 재미있다는 듯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쓰다듬어주니까, 더 기분 좋은걸... 마치 애완동물이 이런 느낌일까? 싶기도 했다.
나는... 로메로의 애완동물일지도...? 잠깐, 뭐라는거야... 밤중이라 막 이상한 말을 뱉어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나저나 왠지 오늘따라 유독 피곤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 오랫동안 쉬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의 피로가 한번에 몰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미안한데, 잠시 눈 좀 붙여도 될까?”
“많이 피곤하오? 그렇다면 조금 자두는 것도 좋소.”
“고마워. 그러면, 아주 잠시...”
그렇게 말하자마자 로메로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곧 눈을 감는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많이 피곤했던 듯 바로 잠에 빠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
......눈을 뜨긴 떴는데, 주변의 풍경이 다른 걸 보니 아마 꿈 속인 것 같다. 옆에 로메로도 없으니 확실히 꿈 속이긴 한 것 같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 어떤 실루엣이 보인다.
로메로가 내 꿈 속에도 와 준 건가? 싶었다가 조금씩 실루엣이 더 가까이 오자 얼굴 부분이 다이아몬드 모양인 게 보였다. 일단 로메로는 아니군. 그렇다면...
대략적으로 예상이 되는 녀석이 한 명 있기는 한데...
“여어- 형씨! 오랜만입니다-?”
...역시나. 그 녀석이라면 이 정도 일 쯤이야 간단하게 하는 녀석이니까, 이상할 일도 아니지.
“...그래, 뭐... 오랜만이네.”
“늘 한결같은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러는 너도 한결같다.”
“요즘은 좀 어떻습니까? 잘 지내고 있습니까?”
“그럭저럭. 너는?”
“바쁘지만 그래도 일이 즐거워서 살만합니다-”
디스토픽 디바이드. 남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가족 관계이면서도 일종의 형제같은 그런 관계다. ‘일종의’ 라고 붙인 이유는 우리들은 정해진 성별이 없으니까, 나름대로 설명하기 편한 게 이런 거거든. 남들이 보면 형제같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지.
...그런데 이름만 그렇지 막상 실제로 우리 둘을 보게 되면 크게 비슷한 부분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성격도 그렇고, 겉모습도 그렇고... 정말 가족 맞나- 싶을 정도지.
“형씨는 일해볼 생각 없는 겁니까-?”
“...귀찮아. 지금도 나름 잘 지내고 있으니.”
“요즘은 무엇을 하고 지내십니까-”
“여행 다니고 있어. 동행자와 함께.”
“아니!? 형씨에게 동행자가 있단 말입니까!?”
“...놀랄 일인가?”
“항상 누가 곁에 있으면 귀찮다고 하는 형씨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참 신기합니다-”
“뭐... 그렇긴 하겠네.”
디스토픽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 귀차니즘 엄청난 녀석이라는 걸. 그래서 이런 걸로 놀라는 게 당연한 일일테고.
...솔직히 나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인 건 맞다. 로메로를 만난 것 자체가 나에겐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으니. 이것도 참 시간이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갑자기 내 꿈에는 무슨 일이지?
“...근데, 네가 하는 일은 어디다 버리고 여기에 온 거냐?”
“아- 제가 해야 될 일은 이미 끝냈는데, 제가 받은 서류에 형씨가 있지 뭡니까-”
“엥? 내가?”
“아마 조사할 때 잠시 착오가 있었는지, 폐기해달라고 했었는데 이참에 심심해서 잠시 와 본 겁니다!”
“...그렇구만. 그래서 내 기록이 있는 서류는 폐기했나?”
“물론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언제봐도 정말 능글맞은 느낌이 드는 말투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말투이기 때문에 평소에 작업을 할 때 주변에서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존재들이 많다곤 하니... 나름대로 본인에겐 좋은 성격이겠지.
“아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갈 시간인가?”
“오늘은 잠시 얼굴 좀 보러 온 거니까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 뭐... 나중엔 이런 꿈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면 좋겠군.”
“시간이 좀 여유로워진다면- 그 때 찾아가겠습니다아-?”
“...”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뭐,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디스토픽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디스토픽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씨익 웃어보이며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형씨!”
디스토픽이 내 머리를 꽤나 강하게 치자, 순간적으로 눈을 감는다. 그러고 눈을 떠보니... 어느샌가 밤하늘이 떠 있는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멍하니 있자, 로메로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키네틱,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겐가?”
“...아, 아니... 뭐, 별 일은 아냐...”
“어떤 일이었는가?”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이자 꿈 속을 드나들 수 있는 디스토픽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러자 로메로는 조금 신기하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다.
“호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서 가끔 꿈 속에서 만나기도 하거든. 오늘이 그 날이었네.”
“그런 이유로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군.”
“응.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여전히 조금은 멍했지만, 그런 모습을 계속 바라보던 로메로는 싱긋 웃어보인다.
“자네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뭔가 재미있구려.”
“...그래? 이렇게라도 재밌으니 다행이네.”
키득키득, 눈으로 웃어보였다. 로메로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