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 즈 / 옵시디언] 180623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 녀석을 못 본지가 말이지.
평상시엔 활발해 보이지만, 임무를 수행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날렵한 어쌔신같은 녀석.
그러고보니 그 때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를 죽이는 그림자는 한 곳에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고. 항상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고 있어."
"헤엑- 그렇구나. 그러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부르면 뿅- 하고 나타날 수도 있는건가?"
"…어쩌면?"
"나중에 한 번 해 봐야지!"
"…굳이?"
* 2018/01/28 - [케로로/자캐] - [자캐 - 옵시디언 / 즈]
음… 확실히 그 당시에는 마지막에 즈가 한 말대로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꽤 오랜 시간도 지났고 왠지 즈가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싶은 그런 생각도 들어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근처에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이 있다. 이 몸이 이런 곳을 좋아하는데, 즈도 그림자가 생길테니 이런 곳이 좋을려나-
이 곳이라면 충분히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 있겠지.
"즈- 혹시 여기 있어-?"
설마- 싶은 마음과 왠지 기대되는 마음이 같이 곁들여진 말투로 꽤나 큰 소리로 외치자, 어디선가 이 쪽을 향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굉장히 긴 무언가가 내 앞에 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혹시… 즈의 굉장히 긴 모자 끝자락일려나…?
"뭐야, 정말로 그렇게 부를줄은."
"오옷! 정말 찾아와줬구나!"
"뭐… 내가 말한 건 지켜야지. 안 그래?"
살짝 키득키득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곧 어둠 속에서 회색빛으로 희미하게 눈에 띄기 시작한 즈가 보였다.
"역시 오랜만에 봐도 엄청 날렵한걸-"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는 너도 충분히 이 정도는 하잖아?"
"그래도 어둠 속에 완전히 숨는 건 어려워-♪"
"무슨 소리. 방금 내가 찾아온 것도 꽤나 우연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에엑? 정말?"
"정말 눈앞까지 와서야 네 녀석의 그 날개를 보고 겨우 깨달았다니까."
"히이- 그런가? 즈가 그렇다고 해주니, 당연히 믿어야겠지-!"
솔직히 내가 엄청 느린 것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특히나 즈가 그렇게 말해주니 더욱 더 내 속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나보다 더 빠른 존재가 나에게 빠르다고 말해주면 왠지 그런 뿌듯함같은 게 생긴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즈를 문득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이라고 주변을 지나가면서 많이 들었던 것 같긴 한데, 왠지 즈에게도 어울릴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 몸이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어떤 거냐?"
"별 건 아니고, 그냥 이 몸의 요구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달까-?"
"…이상한 요구만 아니면 일단 들어보긴 하지."
어둠 속을 뒤적뒤적거리며 이게 어디있나- 살펴보던 중… 드디어 찾았다!
"…? 그건…"
"이 몸이 종종 입고 다니는 옷이야! 어라, 반응을 보아하니 기억하는 모양새인 것 같네?"
"예전에 자주 입고 다니더만. 그래서 눈에 익었지."
"그렇다면 더더욱 다행이네! 이 몸의 요구라는 게 말이야-♪"
싱긋 웃으며 내가 종종 입던 옷과 내가 항상 쓰고 다니는 낫을 슬쩍 건넨다.
"이 옷과 낫을 즈가 착용해봤으면 좋겠어!"
"…내가? 진심이냐?"
"물론이지! 그러니까 이렇게 이 몸이 건넨거고!"
"옷이야 그렇다 쳐도… 낫까지 건넬줄은 몰랐는데. 그거, 엄청 소중한 거 아니야?"
"소중하다고 해도 보고 싶은 건 일단 봐야 내가 만족할 것 같아서!"
즈는 여전히 옷과 낫을 보며 갸웃거리다가 뭐 이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생각을 하는지 그런 표정을 짓더니 옷과 낫을 가지고 잠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어둠 속에서 즈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오오오-!"
역시 옷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옷이 어두운 축에 속하다보니까, 그 색깔이 즈와도 잘 어울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몸도, 즈도 둘 다 몸이 좀 어두운 편이니까, 어두운 옷이 잘 어울리나봐-♪
"…음, 어떠냐? 네가 생각했던 대로 만족스러울려나."
"엄-청 만족스러워!"
"그래? 다행이네. 난 잘 모르겠는데 말이지…"
"원래 본인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남들이 잘 어울린다고 해주니까 잘 어울리는구나- 싶은 경우도 있지."
"일단은 내가 그런 타입이겠구만."
나름대로 낫을 자신의 몸에 기대듯 어깨에 걸치며 나름대로 자세를 취해보는 즈의 모습인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렇게 자신이 어떤 모습에서 가장 멋있는지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자, 즈도 나름 기쁜 듯 눈으로 웃음짓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도 꽤나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옷과 낫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꽤 괜찮은 착용감인데, 나중에 종종 빌려입어도 되나?"
"히히! 물론이지! 여분은 언제나 많으니까!"
"여분이 많다-라…"
"이참에 옷을 하나 줄 수도 있고!"
"그래? 그럼 하나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그렇게 말하자마자 이 몸이 여분의 옷을 바로 건넨다. 그러자 즈는 어둠 속 어딘가에 넣어서 보관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이 몸의 모습은 덤.
"이 몸의 요구를 들어줘서 고마워-♪"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 뭐. 이 정도 쯤이야-"
"나중에도 종종 이런 거 부탁해도 될려나? 다른 녀석들은 이 옷이 어울리는가 궁금할 때 말이지-!"
"시간이 느긋하다면? 크크…"
좋아-! 그 말, 기억해두고 있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