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시플루 > 옵시디언] 181108
“옵시디언, 오늘도 의뢰 해결하러 가는거야?”
“그럼- 이 몸이 인기가 많은가봐-”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걱정 마! 플루토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해결하고 올 테니까!”
“이번에도 같이 가면 안 돼?”
음, 마음같아선 데려가고 싶지만 이번 의뢰는 플루토에겐 조금 위험할 수 있는 의뢰인지라, 적당히 둘러댈 필요가 있겠다.
“플루토는 잠시 쉬고 있으라구- 이번에는 힘 위주가 아니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써야되는 의뢰라서 말이지...!”
“힘만 쓰는 게 아닌거야?”
“응! 나쁜 녀석들을 혼내주러 가는 거거든!”
“그렇구나. 나쁜 녀석들, 전부 혼내주고 와...!”
“그래야지!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혼내고 올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나쁜 녀석들을 혼내주는 건 맞긴 하니까. 뭐, 내 기준에서 나쁜 게 아니라 의뢰를 요청한 사람의 기준에서 나쁜 것이겠지만.
뭐, 결론적으론 나쁜 거니까 틀린 건 아니겠지.
어디, 이렇게 암살을 요청하는 게 한두명이 아니다. 적어도 그만큼 이 몸의 실력을 모두가 인정해주고 있다는 뜻이 되는건가? 언제 그렇게 입소문이 잔뜩 퍼졌지?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들고 있는 이런 낫이라던지, 겉모습이라던지 그런 부분에서 누구 처리하기 좋은 모습처럼 보이긴 하다. 예전에는 이런 거 하기 싫었는데 결국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접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
젊은 나이에 이런 걸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의뢰자들에겐 꽤나 호기심이 생기나보다. 분명 실력이 되긴 할지 미심쩍게 여길 사람도 있을텐데, 아마 입소문이 잔뜩 퍼졌으니까 나에게 맡기는 거겠지.
에? 잡혀가진 않냐고? 걱정 마셔. 애초에 의뢰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어떤 연결고리같은 게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작업할 수 있거든. 나도 그런 건 미리 다 알아두고 의뢰를 받는 편이고.
어디- 오늘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구만. 하지만 받을 건 받아야지.
예에- 소문은 들으셨을테니, 말 안해도 아시겠죠?
설마 이런 걸 요구하면서 고작 얼마 안 되는 보답을 줄 생각은 아닌거겠죠-? 만약에 얼마 안 되면 그쪽도 같이 처리할 거니까, 미리 잘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크크, 좋습니다. 그 정도면 짭짤하겠네요.
보통은 의뢰를 마친 후 보상을 받지만, 이런 의뢰의 경우에는 보통 의뢰자들이 먼저 선입금을 해 주곤 했다. 그만큼 내가 보상을 먹고 튈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애초에 먹고 튀었으면 지금 이렇게 의뢰 수행하는 것 자체를 못 했겠지.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건 의외로 참 재미있는 일이다. 두려움에 떨며 죽음을 맞이한다는 그런 점이 흔하디 흔하지만, 직접 겪게 될 존재의 입장에서는 그게 마지막으로 느낄 감정일 테니까.
마지막엔 좋은 거 깨닫고 가야지. 그럼그럼.
자, 그러면 공포를 심으러 가 볼까! 이번 의뢰는 의뢰자의 입장에서 상당한 적대를 하고 있는 자를 처리해달라는 의뢰였다. 아무래도 라이벌인가? 라이벌은 있으면 좋을 때도 있지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종종 있겠지. 나에겐 라이벌이라는 게 없어서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건 없지만서도.
항상 느끼는건데, 왜 암살 의뢰를 받으면 이렇게 으슥한 길에서 만나게 되는걸까? 조용히 처리해달라는 의미에서?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몸에게 의뢰를 부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워낙 흑백에 가까운 몸이라서 이런 곳에서도 쉽게 모습을 들키지 않을 테니까!
자아- 이제 녀석들이 올 때가 되었는데. 의뢰자가 여기서 만나자고 미리 연락을 했다고 하거든. 라이벌이 연락을 했는데 나와서 끝장은 봐야지. 다른 점이라면 라이벌 대신 내가 있다는 점이겠지만!
아, 마침 저기 온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라이벌이 먼저 연락을 걸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은 게 대놓고 보인다. 조용히 처리해야 되니까 잠시 근처의 어둠에 숨어있을까.
녀석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갸웃거렸다. 아마 의뢰자가 안 나와서 그런 거겠지.
“...뭐야? 먼저 연락해놓고 미리 안 나와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그 녀석이 원래 그렇지, 뭐.”
“하긴, 달라진 게 없구만.”
이미 먼저 와 있었지만! 그래도 모르는 척하며 슬그머니 녀석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아아- 죄송합니다! 좀 늦었네요- 그쵸?"
"...? 누구냐?"
"그- 원래 분께서 정작 연락을 해놓고 못 나올 것 같다면서, 저를 대타로 보냈거든요."
"그래? 뭐... 어쨌든 녀석이랑 연관되어 있는 것 같으니."
녀석들은 나에 대한 소문을 못 들은건가? 싶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그 옆에 있던 녀석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굉장히 놀라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래- 그렇게 나와줘야지. 나름 내가 유명하다는 걸 증명해보이란 말이야-
"야, 잠깐...만..."
"...왜?"
"저 녀석... 그 소문의 걔잖아..."
"뭐?"
"아하하! 설마 이 몸을 모르나 했는데, 역시 알고 있었구만!"
"자아- 반갑습니다! 재앙의 까마귀, 쿠로마- 인사드립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 빛내보였다.
옵시디언이라는 이름은 의뢰를 받을 땐 일부러 쓰지 않는다. 혹시라도 그 이름을 알아채서 플루토에게 피해라도 가면 안 되니까 말이지. 반대로 플루토는 자신의 이름을 남들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 몸이 항상 플루토의 곁에 있으니까 이름을 물어보려고 하면 내가 가로채면 되는 것이다.
가끔은... 플루토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없는 게 이럴 때는 좋은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몸을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예의차릴 필요도 없겠지? 어차피 곧 이 몸의 길안내를 받을 녀석들인데.
"너무 무서워하진 말라구- 나름대로 좋은 거 알려주려고 온 거니까."
"좋은 거? 도대체 그 좋은 게 뭔데?"
"혼자 가기엔 두려운 곳이지만, 이 몸의 안내가 있으면 전혀 두렵지 않은 곳에 대해 알려주려고."
싱긋 웃으며 낫을 들어보였다.
"쿠로마가 아-주 친절하게 알려드릴테니, 너무 무서워하진 마시고!"
"자아- 그럼 쿠로마,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칠흑의 어둠 속으로 스윽 숨으며, 이곳저곳 날뛰듯이 움직이다가 녀석들을 향해 낫을 푸욱, 찔렀다.
녀석들은 반항도 못 한 채, 그렇게 조용히 이런 으슥한 어둠 속에서 잔뜩 피를 흘리며 눈을 감는 모습이었다.
"이거이거, 이 쿠로마를 위해 마지막까지 이렇게 레드카펫을 잔뜩 깔아주시다니 정말 영광이지 말입니다-?"
아마 이 말이 녀석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릴 말 아니었을까? 마지막까지 좋지 않은 말만 듣고 갈 바엔 이렇게 남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가는게 그나마 더 행복하지 않을까? 녀석들에게는 이게 좋은 말로 들릴지 비꼬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니 상관없지.
이런 암살 의뢰를 받으면 즐겁기는 한데, 뒷처리가 은근히 귀찮단 말이야. 즐거움에는 그만큼 귀찮은 일이 같이 따라온다는 걸 가르쳐주는 이 세상의 법칙일려나. 플루토가 있으면 빨리 끝나긴 하겠지만, 플루토에게 이런 잔인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게다가 플루토는 이미 이런 일들을 몇 번 겪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칫 잘못 건드리면 예전의 그 아픈 기억들이 다시 떠올라서 괴로워할 것 같고. 나는 플루토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거든. 괴로워도 내가 괴롭고 말지.
뒷정리를 하면서 문득 피비린내에도 아무렇지 않게 된 나 자신을 깨달으며 새삼 놀랐다. 어느샌가 피비린내를 즐기고 있는 이 몸이 된 것 같기도 해서 말이지.
그래서 암살 의뢰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보상을 받아가는건가.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적응된 것일려나.
시간이라는 건, 참 놀랍고도 대단한 것이지. 내가 이렇게 피비린내에도 아무렇지 않게 된 것도 그렇고 플루토가 이젠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전부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해결해 준 것들이지.
아, 그러고보니 조금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의뢰를 받을 때 의뢰자가 궁금해하기도 했었고. ‘쿠로마’ 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쿠로마. 黒魔 라고 쓰는 걸 어떤 언어로 읽은 것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검은 악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과거의 이름이긴 했지만 이제는 ‘옵시디언 아포크로’ 라는 확실한 이름이 있으니까.
어쩌면 ‘아포크로’ 라는 이름을 이 쿠로마에서 따온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재앙의 까마귀와 검은 악마... 둘 다 분위기상으론 비슷한 느낌이니 말이다.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른 말을 이어붙인 것이겠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생각을 해 보겠는가...
어느정도 뒷정리도 말끔하게 끝났겠다, 이제 의뢰인에게 다시 돌아가볼까. 이미 의뢰 보상을 선입금으로 받긴 했지만, 완료된 뒤에 돌아오면 추가적인 무언가를 준다고 했으니, 그걸 빼먹을 순 없지.
받을 수 있을 때 모조리, 그리고 많이 받아둬야 이게 나중에 쌓였을 때 엄청난 만족감을 준단 말이지. 그리고 플루토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누가 보면 플루토에게만 잔뜩 챙겨주고 정작 자기 자신에겐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도 적당히 이것저것 사용하고 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쟁취하기 위해 사용한다던지... 남들과 똑같이 말이다.
요구하신대로- 깔끔하게 처리해 드렸습니다- 자, 여기 결과물도 받아왔고 말이죠-
하핫, 마음에 드신다니 쿠로마, 참 다행이지 말입니다-! 언제나 의뢰가 필요할 땐- 말 안해도 아시겠지요-?”
입소문이 많이 퍼질수록 바빠지긴 해도, 그만큼 이 몸을 신뢰하고 의뢰를 신청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의뢰가 많아질수록 플루토에게 챙겨줄 수 있는 것도 당연히 더 많아질테고.
오랜만의 암살 의뢰라 그런지- 피곤함이 누적된 기분이다. 얼른 플루토에게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