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로메] 181126
“후우- 이제 날씨가 변하긴 하나보네...”
“추워지고 있는 것이 그대에게도 느껴지고 있소?”
“그럼. 물론이지.”
남들처럼 피부 속까지 찬 바람이 들어와서 추운 걸 느끼는 그런 방식은 아니고, 그냥 겉표면이 차가워지는 정도는 느낄 수 있으니까... 대략 그렇게 온도를 느낀다.
“낙엽도 떨어지고 있고, 날씨도 추워지고...”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모습이구려.”
“그래도 마스터의 장미는 항상 아름답게 피어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푸흐, 그렇게 생각하오?”
“다른 건 다 떨어져도, 마스터의 장미는 항상 그대로이니까.”
오늘도 마스터의 장미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따뜻할 때보다는 조금 약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향기 자체는 늘 여전하니까.
난 마스터의 향기가 참 좋더라. 마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런 기분도 들고, 내가 이렇게 마스터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느낌도 동시에 들고.
그렇게 길을 걷다가, 잠시 마스터가 어떤 할 일이 있다면서 이 곳에서 다시 만나자며 홀로그램 지도의 어떤 부분을 가리켰다. 나도 이 주변을 잠시 둘러볼 겸- 해서 마스터에게 고개를 끄덕거린 뒤 따로 움직이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할 일이 있는걸까- 내심 궁금하면서도 마스터의 일이니까 굳이 내가 알아야 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스터가 가르쳐준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어째서인지 마스터보다 내가 먼저 도착했다. 보통은 마스터가 먼저 와 있었는데... 오늘은 좀 특이한 날이군...
뭐, 사실 내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온 것도 있기는 하지만 막상 기다려보니 마스터가 약속한 시간을 넘어섰는데도 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혹시라도 마스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려고 움직일까, 아니면 그렇게 움직이다가 오히려 마스터가 나를 걱정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서로 싸우고 있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무언가 뒤에서 갑자기 따뜻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어느샌가 마스터가 나의 코트 안으로 들어와서는 뒤에서 꼬오옥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 뭐야... 마스터가 왜 거기서 나와...?”
“후흐, 그냥 놀래키고 싶었소- 반응을 보니 성공한 것 같구려.”
“마스터도 참...”
코트 속에 가려진 채 뒤에서 껴안고 있는 마스터의 모습을 보며 웃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문득 살짝 엉켜있는 마스터의 덩쿨을 보곤 살짝 몸을 숙여 덩쿨을 집어올린 뒤 조심스럽게 덩쿨을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으음? 언제 이렇게 엉켜있었던 것인지...”
“덩쿨들도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다들 붙어있고 싶었던 거 아닐까?”
“키네틱은 가끔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구려.”
“그러는 마스터도 가끔은 장난끼가 있어 보인다고-”
“심심하면 재미없지 않은가-?”
“뭐, 마스터 말대로 아주 심심하면 재미없겠는걸. 내 존재가 재미없는 존재는 아닌가 걱정이지만.”
“너무 걱정 말게나-”
마스터의 덩쿨을 풀어주면서 문득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
“이렇게 덩쿨을 푸는 것도 내가 기계의 몸이라서 아무렇지 않게 풀어줄 수 있는 거겠지.”
“분명 그럴 것이오. 평범한 몸이었다면 이미 덩쿨의 가시에 잔뜩 찔렸을 터이니...”
“이런 몸도 어딘가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구나-”
“후후, 그대의 몸은 어디든 쓸모가 있소.”
“그래도 나는 한번 망가지면 다시 고쳐야 되는 몸인데- 마스터 몸보단 못하지-”
“덩쿨도 바로바로 자라는 건 아니오-”
정말 별 일 아닌걸로 마치 말싸움 배틀을 하듯 장난을 치기도 하는 걸 보니, 아주 심심하지만은 않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아- 이제, 다시 가볼까?”
“이번엔 그대가 앞장서는 것이오?”
“아마도?”
날씨가 추우니까, 혹시라도 마스터가 추위를 느낄 것 같아서 그대로 가볍게 껴안은 채로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한다.
“가, 갑자기... 이러면...”
“마스터는 추운 거 싫어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어, 어쨌든 고맙소...”
고맙긴. 내 곁에 있어주는 마스터가 더 고맙지.
...아, 이 곳을 떠나기 전에 잠시 눈에 띄었던 것만 가지고 가고 싶은데. 별 건 아니고... 그냥 옷이긴 한데... 좀 특이한 옷이라서 말이지.
“음, 잠깐만 옷 좀 봐도 될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알겠소. 무슨 옷을 사고 싶길래 그러는가?”
“직접 보면 알 수 있을걸-”
그렇게 마스터를 이끌고 도착한 곳에서 내가 눈에 두고 있었던 옷 두 벌을 샀다. 그리고 그 옷을 마스터에게 보여주자 마스터는 살짝 갸웃거리는 모습이다.
“...? 그냥 평범한 옷 아니오?”
“이 쪽은 평범하지만, 반대로 뒤집어보면...”
옷의 앞은 평범했지만 옷의 뒤에는... ‘건들면 물어요’ 와 ‘제 주인이예요’ 라는 문장이 적혀있는... 좀... 특이한 옷이었다.
“............”
“아하핫, 재미있지 않아-?”
“뭐, 그대의 취향이 그렇다는 건 잘 알겠소...”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마스터-”
“나중에 같이 입자고 할 것이오?”
“그러니까 두 벌 샀지.”
“...생각해보도록 하겠구려.”
“헤- 재밌을걸-”
나는 벌써부터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기대되는데. 나중에 직접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진짜로, 정말로 입을 것이오...?”
“그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스터... 키네틱한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걸...”
“...갑자기 무슨...”
“음, 아무것도 아냐- 다시 여행길이나 오르자구. 아- 그리고...”
“그리고?”
“옷은 정말로 언젠간 입어볼지도 모르지-”
“...흠...”
언제가 될려나- 날씨도 추워지는데 꽤 빨리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