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로메] 190106
“마스...터?”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이 곳에 왔는데, 내가 그동안 봐오던 마스터가 아닌 진정한 모습의 마스터가 있었다.
“뭘 그리 이상한 눈빛으로 보나.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으면서.”
“그건 그렇지만...”
“하여간 어린 것들은.”
그래도 처음 보았을 때와는 조금 크기가 줄어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를 위해서 신경쓰긴 했구나.”
“그래. 특별히 어린 것을 위해 맞춰줬지.”
“역시 마스터. 고마워라.”
“잘해주면 잘해주는 줄 알고 고마워하도록.”
“당연히 그래야지.”
여전히 그 까칠한 모습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이 거대한 모습에서도 나를 사랑해주는 것도 변함없으니까.
진정한 모습의 마스터는 나를 바라보며 마치 웃기다는 듯, 그리고 재밌다는 듯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너는 나의 이런 모습이라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좋더냐.”
“응.”
“간단한 대답이군.”
“이 대답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한다고 해도, 여전히 마스터가 사랑스럽고 좋다는 건 똑같으니까.”
“역시 어린 것은 길게 말하는 일이 별로 없군.”
“...많은데?”
“적어도 이 모습에선 말이다.”
“아아...”
그건 뭐, 진정한 모습을 본 게 이번이 두 번째니까 그럴만도 하겠지.
이제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습에서는 네가 작아보이니 흥미롭군.”
“마스터가 엄청나게 커졌으니까. 그나마 지금 크기도 마스터가 적당하게 줄인 거잖아?”
“그렇지. 특별히 내 앞에 보이는 이 어린 것을 위해 말이다.”
“조금 부럽긴 하네. 그만큼 위엄을 표출할 수도 있으니까.”
“어린 것을 지켜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정말 고마운걸.”
“알면 잘 대해라.”
“그럼그럼. 마스터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예의바른 푸른 기계, 다른 곳에서 본 적 있어? 아마 없을걸?
내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마스터를 보고 있으니, 왠지 저 커다란 덩치에 기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내가 마스터를 많이 감싸주었으니, 이번엔... 내가 해도 될까.
“마스터.”
“왜 그러나.”
“...기대어도 될까?”
“...”
마스터는 웃기다는 듯 엄청나게 큰 덩쿨을 보이며 나를 쓰다듬더니 곧 그 덩쿨로 감싸서는 마스터의 커다란 덩치의 옆까지 끌어당겼다.
“쉬어라.”
“움직이는 건... 내가 직접 움직여도 되는데...”
“됐다. 그냥 영광으로 알아라, 어린 것아.”
“고마워. 정말 큰 영광이네.”
마스터의 큰 덩치에 기대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마스터의 까칠함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까칠함이 더 재미있는 호기심을 만들어낼 뿐.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더욱 마스터가 의지되는 느낌이었다.
“마스터가 좋아.”
“당연히 좋아야지.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테니.”
“그래서 더 좋아.”
“어린 것도 깨달아야 될 텐데.”
“...어떤 걸?”
“삶은 어린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탄치 않다는 것을.”
“뭐 어때. 지금은 이렇게 순탄하니까 됐지.”
전투병기 시절부터 느끼긴 했지만, 적어도 몇천년을 살아온 마스터 앞에서 완전히 느꼈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부족하겠지.
“생각해보면, 이렇게 덩치가 큰 것도 몇천년을 살아와서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 아직도 두자릿수인 너에 비하면 엄청나게도 오래 살았지.”
“오래 살면 좋은 건 있어?”
“글쎄. 말해줘봤자 아직 어린 것에 속하는 너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긴, 젊은 존재가 오래 살아온 존재의 모든 삶을 바로 이해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괜찮아. 천천히, 조금씩... 마스터가 지금까지 지내온 삶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때까지 마스터가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오늘은, 내가 마스터의 곁에서 쉴래."
"그래라. 흔치 않은 기회를 머릿속에 새겨주지."
"과연 흔치 않은 기회가 될까? 내가 흔한 기회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음대로 상상해라.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것."
"헤헤. 고마워."
"...어린 것아."
"응?"
"이런 모습이어도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군."
"뭘 이런 거 가지고. 언제나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가끔은, 위치가 뒤바뀌어도 나쁘진 않구나.
지금처럼 마스터의 진정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