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로메] 190108
2019/01/06 - [오브젝트 헤드] - [키네로메] 190106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을 살아온 마스터.
그런 마스터에게 기억에 남는 일이 분명 존재하겠지.
“마스터.”
“그래, 어린 것.”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봐라. 무엇이 궁금한지 나도 궁금하군.”
“별로 뭐 특별한 건 아니지만...”
고개를 들어 마스터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몇천년간의 세월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
마스터는 빤히 나를 바라보다가 덩쿨을 움직이며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 많은걸까, 아니면 생각해야 될 정도로 기억나는 게 없는걸까?
“나에겐 일상이었지만, 어린 것에겐 놀라서 뒤집어질 일은 있지.”
“어떤 일이길래... 가르쳐 줘.”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마스터는 여러 개의 덩쿨을 꺼내서는 나를 완전히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얼굴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빽빽하고 꼼꼼하게 감쌌다. 그래도 완전히 숨도 못 쉴 정도로 강한 압박이 있지는 않았다.
“마, 마스터...?”
“이런 식으로 조금씩 잡아먹었다고 하면 믿을텐가.”
솔직히, 생각해보면...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당연하지.”
“다행이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지.”
“어떤 이야기인데?”
마스터는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략 3천년쯤 되었을까. 살아있는 존재나 도시 정도가 아닌 나라 하나를 완전히 삼켜버린 일이 있다.”
“나라...를...?”
아마 내 눈이 동그란 모습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마스터가 웃는 소리를 조금 들었으니까.
“그래. 나라 하나를.”
“그러면... 주변에서 엄청 시끄러울텐데...”
“잘 알고 있군. 그래서 나라 하나를 완전히 삼켜버리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지.”
“...다행이네. 신사 모습의 마스터도 소란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아하니까.”
“지금의 내가 적당하게 조절하고 있으니, 조그맣게 변했을 때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가 피를 마시는 걸 좋아하는 거구나. 물론 지금은 많이 줄어들긴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종종 피를 구해서 흡수하는 걸 본 적이 있긴 했다.
그러고보니, 크기 조절이 된다는 건...
“마스터는 계속 자라고 있겠네.”
“그렇지. 나는 죽을 때까지 영원히 끝까지 성장한다.”
“...그래서 적당하게 크기를 조절하기 위해 이런 능력도 있는 것일테고...”
“부러운가, 어린 것.”
“딱히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싱긋 웃어보였다.
“조그만 마스터를 껴안을 수 있는 지금의 크기에 만족하고 있어.”
“욕심이 없군.”
“마스터를 만난 것 자체만으로 이미 나의 모든 건 다 채워졌으니까.”
“늘 말하는 것이지만, 영광인 줄 알거라.”
까칠하면서도 나름대로 나를 신경써주는 진정한 모습의 마스터. 어쩌면 이것도 사랑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마스터가 지금의 진정한 모습의 마스터를 보여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거의 기밀사항에 가까운 일이니까.
“남들은 기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지금의 이 마스터의 모습도 멋있어.”
“...특이한 녀석.”
마스터는 커다란 덩쿨로 나를 쓰다듬...어 주는데 어떻게 보면 꾹꾹 누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꾹꾹 눌려지면 땅에 박혀서 마스터처럼 식물이 될 수 있는걸까?"
"정말... 너는..."
"특이하다고 말하려고 했지?"
"...그래. 이미 한 번 말해서 또 말하기 귀찮았을 뿐."
사실 특이한 건 지금의 모습을 한 마스터가 더 특이한 것 같다고 느껴지지만.
문득 모든 걸 집어삼킨 마스터를 보며 궁금해졌다.
“마스터.”
“그래.”
“이런 걸 물어봐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피라는 건 맛있는 거야?”
“...갑자기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이상하군.”
“에, 뭐... 궁금할 수도 있지.”
“맛은 모르겠고, 하나 확실한 건 어린 것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으니... 그냥 단순한 궁금함이었으니 괜찮다.
“걱정 마. 나는 피 안 마실거야.”
“그래야지.”
“내가 맛있는 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네 녀석의 피는 안 받는다.”
“그래도 급하면 마실수도 있지-”
누군가가 이 얘기를 엿듣고 있으면 참 무서운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마치 우리들은 일상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지만.
...근데 정말 내 피가 평범한 피였다면 마스터에게 좀 나눠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네. 마스터가 내 피는 안 마신다고 해도... 비상용으로 있으면 좋잖아?
뭐... 그렇다고.
그냥 그런 식으로 이야기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