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아이기스 w. 픽카] 191105

E / P 2019. 11. 5. 21:51

 

 


 

 

“마땅히 쉴만한 곳이 없네요.”

“저는 어디든 괜찮습니다. 사실은 당신을 위한 공간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이미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공간이 되는걸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게 배려해주고 싶었던 푸른 방패의 배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자신보다 푸른 방패를 더욱 신경쓰는 푸른 안드로이드.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두 메카의 만남.

 

 

“음, 어쩔 수 없죠.”

 

 

푸른 방패는 푸른 안드로이드에게 한쪽 손을 뻗어보였다.

 

 

“제 손바닥 위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떻겠습니까?”

“손바닥 위에 앉는 것이라,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군요. 제가 정말로 그 위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손 위에 올려서 앉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지금까지 그렇게 지나간 유기체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라며 덧붙이는 푸른 방패.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푸른 안드로이드.

 

푸른 방패는 자신의 손 위에 살포시 앉는 푸른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보곤 조금씩 자신의 상반신을 향해 손을 옮겼다.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편한대로 하면 됩니다. 저는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건 너무 이기적인걸요. 서로가 즐거워야 곧 즐거운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니.”

 

 

푸른 안드로이드는 푸른 방패의 손 위가 편한 듯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손 위에 앉는 게 이렇게 편할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손이 예상외로 워낙 편하다고, 다른 유기체 분들도 많이 말씀하셨지요.”

“다른 존재들에게 검증받은 손이군요.”

“하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가요?”

 

 

푸른 방패는 기분이 좋은 듯 목소리에 웃음이 묻어나온다.

 

 

“다음에는 제 어깨 위에 앉아 보시겠습니까?”

“그것도 당신은 불편하지 않은 겁니까.”

“그럼요. 누구나 어깨 위에 앉아보고 싶다는 건 하나씩 가지고 있는 소망같은 것일 테니.”

“오늘은 손 위에 앉는 것으로도 충분하니, 어깨는 다음에 빌리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기억해두지요.”

 

 

그런 나긋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며 푸른 방패는 깨달음을 느꼈다.

 

 

“이클립스님이 그대를 신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요.”

“선배인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남들을 먼저 생각하며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꽤 흥미롭습니다.”

 

 

푸른 안드로이드는 얼굴 부분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클립스씨에 비하면 저는 그저 총알받이에 가까운 구식 안드로이드일 뿐, 이런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입니다.”

“아무나 그런 걸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제가 이 일을 맡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 행동들이 다른 존재들에겐 충분한 신뢰를 가지게 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일 테지요.”

 

 

푸른 방패는 생각했다.

자신도 푸른 안드로이드처럼 지금보다 더 배려깊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건 좋지만, 본인을 챙겨야 타인을 챙길 수 있다는 건 언제나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예전부터 그런 것 정도는 다 신경쓰고 있으니까요.”

“하하, 그렇게 말하신다면 저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네요.”

 

 

그리고 푸른 방패는 또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 생각을 그저 생각으로만 두지 않았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유기체 분들이 말하는 ‘친구’가 되어볼 생각이 있으십니까?”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건 푸른 방패도 다르지 않았고, 그런 비슷한 마음을 가진 존재를 만난 것에 대한 기쁨도 같이 담겨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