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IF - 바이던트 / 메카닉 베드로] 200909
모든 메카닉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그 중에서도 전쟁의 용병으로 참여하는 메카닉이 있는가 하면, 전쟁을 피해 주인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는 메카닉도 있는 등 각자의 목적은 각자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처럼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거의 웬만한 메카닉이 전쟁의 용병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죽하면 각자의 목적을 가진 메카닉들도 용병으로 이용될 정도였으니, 대략적인 상황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메카닉 사이에서 자신들과 주인, 그리고 행성의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들을 보호하는 메카닉이 있고, 메카닉 사이에서도 어떤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는 등 그 안에서도 싸우는 목적이 달라져있는 상태이기에 상황은 계속해서 황폐화되기만 했다. 누구나 다 이 전쟁이 끝나길 바라고 있지만, 메카닉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날 일은 당장은 없을 것이고, 미래에도 불투명하다는 것을. 동시에 이 전쟁이 끝나봤자 언제나 불안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점을.
그럼에도, 지금의 전쟁을 위해 서로 협력하며 동료로 살아가는 메카닉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서로 모여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여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승리해온 수준급의 용병 메카닉들이었다. 각자 다른 주인, 다른 무기를 들고 있지만 이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은, 세 개체의 메카닉.
잠시 서로 휴전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항상 순찰을 했다. 언제 다시 싸움이 일어날지 모르는 장소였으니, 지금 당장은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순찰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메카닉과 주민들도 그들의 순찰 능력과 전투 실력을 인정하는 모습이었기에 다른 메카닉이나 어떤 개체를 더 추가로 영입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이 행성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었다.
하늘에 달빛만이 가득한 어느 날.
그들은 항상 함께 움직이며 순찰을 했지만, 오늘은 여러가지 상황이 겹쳤던 모양인지 각자 구역을 정해서 순찰을 하기로 했다. 함께 움직이는 것이 기습적인 상황에서 조금 더 쉽게 벗어날 수 있긴 했지만, 지금은 함께 움직이는 것이나 따로 움직이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다들 반대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동쪽과 북쪽 구간을 순찰하겠습니다."
"나는 서쪽을 맡겨줘-"
"남쪽으로 가겠다."
"그 쪽은 다른 쪽에 비해 더 위험한 곳인 거, 잘 알고 있지?"
"네 걱정이나 하길."
"하여간, 이럴 땐 조금 부드러워져도 좋잖아~?"
"어쨌거나... 각자 무사히 잘 다녀오길 바랍니다."
"그래그래- 너도 무사히 잘 다녀오고! 바이던트는, 역시- 알아서 잘 하겠지만!"
세 메카닉은 각자의 구역을 정한 뒤,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순찰에 나섰다. 바이던트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듯 매정하게 돌아서선 순찰을 시작했다.
이 곳에 처음 용병으로 왔을 때부터, 바이던트는 꽤나 냉혹하고 차가웠다. 다른 메카닉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런 메카닉의 치료보다는 적군들을 섬멸해야 된다는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크게 다치는 일 없이 무사히 복귀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본 다른 메카닉들도 적어도 바이던트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냉혹한 성격 때문에 조금 재수없다고 느끼는 메카닉은 약간 있었지만.
바이던트가 맡은 쪽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꽤나 위험할지도 모르는 구역이었다. 그들이 현재 지키고 있는 구역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구역이 현재 바이던트가 순찰하고 있는 구역이었기 때문에, 아직 그들이 처리하지 못한 적군들이 남아있을 확률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던트도 그런 점을 알고 있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조용히,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은밀함을 내세우며 움직였던 적이 없어서 약간은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을 법도 했지만.
그렇게 순찰을 하던 도중, 저 멀리서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살짝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바이던트는 순간 경계했다가, 그 그림자의 뒤를 쫓아가기로 했다.
"...저렇게 거대한 그림자는, 지금까지 이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그림자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가, 문득 어떤 소리들이 들렸다. 마치 생명체의 비명소리같은 그 소리는...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들리곤 했다. 아무래도 그 그림자의 주인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암시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불안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바이던트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 그림자가 지나간 곳을 뒤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이던 중, 조금은 밝은 빛이 스며들고 있는 어떤 공간에 도달했다.
어떤 공간에 도달하자마자, 그 그림자의 주인은 마치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미리 눈치채기라도 한 듯 멈춰서선 위협하려는 듯 저음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와."
바이던트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어떤 구석에서 잠시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어느샌가 바이던트의 눈앞까지 와서는 날카로운 창을 목 부분까지 들이밀고는 그 그림자의 주인이 정체를 드러냈다.
"분명 말했을텐데."
"..."
바이던트는 자신의 목에 노려진 창을 무심하게 바라보더니 곧 그 창을 노린 창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의 부품들로 이루어진, 흑기사와도 같은 메카닉이었다.
"...재미있군."
"허, 난데없이?"
마치 자신을 웃기듯 바라보는 검은 메카닉을 바라보며, 바이던트는 조용히 생각했다. '우리 메카닉 사이에 이런 메카닉이 있었던가.' 라고. 그렇게 조용히 생각만 하고 있던 바이던트를 바라보며 어딘가 심기가 불편한 듯 째려보는 눈빛이 보였다.
"뭘 그리 쳐다보기만 해?"
"넌 누구지?"
"신경 꺼."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이 굉장히 불만스러운 듯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이던트는 그런 모습을 보며 여전히 '왜 지금까지 이런 메카닉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 라고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치 그 검은 메카닉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꺼냈다.
"...목표가 꼬이겠군."
"목표?"
"주인의 명령."
그제서야 바이던트는 아, 라고 살짝 말을 꺼내며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바이저의 빛이 움직였다.
메카닉 사이에서도 바이던트와 그의 동료 메카닉들처럼 당당하게 다른 주민들이나 생명체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메카닉이 있는 반면, 어떤 주인이나 다른 존재가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조용히 움직이는 메카닉도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꽤 오랫동안 이 행성 내에서 퍼져왔었다. 그들은 마치 비밀병기처럼 움직였고, 아무도 그런 비밀병기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의 바이던트가 만난 이 검은 메카닉도, 그런 비밀병기 중 하나였으리라, 라고 바이던트는 생각했다.
"그래, 목표가 꼬였으니. 이제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나?"
"질문?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진 자격으로."
"허, 대단하네."
어이없다는 듯 살짝 비꼬는 말투로 어깨를 으쓱거리곤 마치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잠시 어울려 주겠다는 것마냥 말을 이었다.
"뭔데?"
"네 이름."
"그 전에."
검은 메카닉은 바이던트에게 가까이 다가가선 창 하나를 목에 다시 겨누곤 말을 꺼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물론."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목에 겨누었던 창을 다시 거두었다. 누군가를 믿지 않고 냉정한 모습이 조금은 소름이 돋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바이던트는 그런 메카닉을 지금까지 봐왔던 적이 없었기에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베드로."
"...그렇군."
"너도 말해."
"바이던트라고 한다."
베드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여전히 못마땅한 눈빛을 숨기지 않은 채 바이던트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등을 돌리며 바이던트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이제 꺼져."
"저기, 잠시..."
바이던트가 말을 완전히 끝내기도 전에, 다시 베드로는 매우 날카로운 눈빛과 날카로운 목소리로 짓누르듯 바이던트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위협하려는 것처럼 행동을 취했다. 바이던트는 그런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신을 쳐다보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도 베드로의 심기를 약간 건드리는 듯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취했다.
"...꺼지라고 했을텐데."
"내 말을..."
"당장 내 눈 앞에서..."
이번에는 바이던트가 베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옆으로 몸을 옮기곤 어딘가를 향해 창 하나를 재빠르게 집어던졌다. 그러자 어떤 적군의 몸에 관통하듯 꽂혔고, 주변에 있던 다른 적군들도 그 모습을 보더니 기겁하곤 반대편으로 달아나듯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적군이 가지고 있었던 무기는 아무리 강인하고 강력한 메카닉이라도 한번에 기절시키고 박살낼 수 있는 무기였기에, 당연한 순찰을 한 것이면서도 어쩌면 베드로를 보호해주기 위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이렇게 나에게 빚을 졌군."
"...젠장. 빌어먹을..."
주변에 다른 적군이 있었다는 걸 눈치 못 챈 것보단, 바이던트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분노에 가까울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고마움을 표현하겠지만, 적어도 베드로에겐 이런 도움이 항상 고맙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을 테니, 어쩌면 조금은 바이던트도 공감하는 모습이었는지 딱히 고마움을 표시해달라는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젠장, 젠장..."
"거슬리나보군."
"...이런 내가, 왜 너의 도움을..."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네 잘못이겠지."
한편으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에 약간 수치스러움같은 것이라도 느끼고 있나, 싶은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지만 바이던트에겐 큰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빚은, 다음에 갚게나."
"...너."
"그래."
"나를 보려면, 여기로 와."
다른 존재들에게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목적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바이던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억해두지."
"...짜증나지만, 빚은 빚이니까."
"언젠가 또 만나길."
베드로는 다시 그림자를 다루곤,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자신의 주인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러 가기 위한 것이겠지, 라고 바이던트는 조용히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순찰도 끝났으니, 순찰의 결과를 알려주어야 될 테니.
물론, 베드로를 만난 것은 비밀로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