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바이던트] 200919 (B side)

E / P 2020. 9. 19. 21:21

 

 


 

바이던트는 오늘도 그 장소를 찾아왔지만, 베드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흔하게 겪는 일이라서 바이던트도 '오늘은 조금 바쁜 임무라도 있는가보군.' 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느긋한 시간을 가지다가 자신의 동료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복귀하곤 했다. 바이던트 혼자 있을 때에는 여분의 부품을 다듬는다던지, 자신의 창을 다듬는다던지와 같은 행동을 취하며 절대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꾸준함을 보이곤 했는데, 그럴 때에도 주변 경계는 늘 늦추지 않았다. 웬만한 메카닉들도 그런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저것이 세월의 흐름을 통해 깨달은 연륜이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은 꽤 바쁜가보군."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하며 부품을 다듬는 바이던트. 혹시라도 자신의 그림자가 움찔거리진 않는지 종종 관찰해보곤 하지만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림자를 다룬다지만 다른 존재의 그림자까지 막 다루진 않겠지.' 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다시 부품을 다듬었다.

 

겉으로는 크게 손상되거나, 부식되거나, 망가져보이는 곳이 없어보이지만 바이던트가 손을 대는 부분마다 숨겨져있는 결함이 보이는 것이 정말 그동안 부품을 다듬은 실력이 있구나, 라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일부 메카닉들은 바이던트에게 부품을 맡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바이던트는 의외로 그런 다른 메카닉들의 부품까지 손을 봐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다른 메카닉들은 '내가 알던 그 냉정한 메카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문을 가지곤 했지만, 이런 것도 다 연륜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바이던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언젠가 베드로의 부품도 다듬어주고 싶은데."

 

 

물론 바이던트도 알고 있다. 베드로가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것에 아직은 꽤 적대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혼자서 부품을 다듬고 있을 때 혼잣말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일 터.

 

 


 

 

"생각해보면, 나도 참 겁이 없었지."

 

 

새로운 메카닉을 보는 게 당연히 신기하긴 했지만, 자신에 대해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나긋하게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겁이 없었다고 한다면 따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원래 처음 보는 존재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이어야 했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연륜 중 하나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왠지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

 


 

생각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네.

겉으로는 냉정하고 차가워도, 꽤 호기심이 많은 메카닉이라고 말이지.

 

 

처음에는 부정했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겠군.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을 지금까지 어떻게든 억제하며 지냈다는 것을.

 

 

그대는 처음부터 그런 존재로 만들어졌나?

 

 

왠지 그대를 만든 주인은 꽤나 대단한 존재일 것 같군.

일반적인 메카닉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그림자까지 스며들게 할 생각까지 하다니.

그건 웬만해선 과학자급의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텐데.

 

 

아마 서로 만나게 될 일은 없겠지만... 나의 주인을 만나지 않게 조심하게나.

그대를 보곤 질투해서 이런저런 무언가를 훔쳐올지도 모르니 말일세.

나의 주인이 그대의 신체를 이루는 부품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비밀이 많은 존재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긴장하게 되는 일이지.

나의 실수로 비밀이 드러나는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없지 않고.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언제든 그대의 비밀을 지켜줄테니.

 

 

 

그대같은 모습을 보며, 철부지없다고 표현하던가.

조금 재미있더군. 동료들 중에선 그런 느낌의 동료가 없다보니 신기하다고 해야될지.

 

 

투덜거리고 아닌 척해도, 사실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네.

나름대로 나에게 어느정도 관심이 없진 않다는 것을.

 

 

언제든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네.

궁금한 건 전부 해결해야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

 


 

혼자서 자신만의 생각을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다가, 바이던트는 어디선가 무언가가 움직였다는 것을 느낀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왠지 눈에 띈 어떤 높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그 곳에는 어떤 흔적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달빛만이 이 곳을 향해 비춰지고 있을 뿐이었다.

 

 

"...흠, 바람이라도 불었나."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순찰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함이라도 쌓였나보군.' 이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곤 살짝 몸을 풀어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베드로가 오늘은 이 곳에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자신도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려는 모양새였다.

 

 

"내일은 만날 수 있기를."

 

 

혼자 중얼거리며 등을 돌려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왜이리 늦었냐고 할 것 같지만."

 

 

살짝 어깨를 으쓱거리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