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노르] 210622
과연 제가 사신이라고 하면 믿을 필멸자는 몇이나 될까요?
오히려 주변에서 그렇게 믿지 않을수록, 저는 더 즐겁지만요.
어쩌면- 당신을 만나게 된 건 참 기가 막힌 우연인 것 같으면서도, 꼭 만나서 새로운 경험을 쌓으라는 또다른 신의 계시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사신이지만- 신이라는 건 굳이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존재하기 마련일 테니까요?
만약 제가 인맥이 넓은 사신이었다면 다른 신들도 당신에게 소개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조금 폐쇄적인 사신이라 아쉽게 되었습니다? 하하.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습니다. 제가 곧 죽어가는 필멸자가 아닌 저와 비슷하게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메카를 만나다니.
물론 당신도 큰 상처를 입는다면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일 것이고, 실제로도 한 번은 그렇게 만난 적이 있었죠? 물론 그럴 때마다 제가 다시 돌려보내 드렸지만.
하지만 그것도 꽤나 저에겐 흥미로운 일이었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간 필멸자들이 흔치 않거든요.
보통 그냥 받아들이거나, 저항하거나 그러곤 했는데- 당신은 조금 특별했죠.
만약 저희가 사랑을 나누지 않았더라면, 당신도 그 죽음의 문턱을 그냥 받아들였을까요? 그건 그거대로 궁금하네요.
사실 그냥 받아들이셨다고 하더라도, 제가 당신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현실로 돌려보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간 다음에, 당신이 꽤나 마음에 든다고,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겠죠.
이렇게 보니 지금이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겠네요. 아무래도 이렇게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하핫.
삶이 한정되어 있는 필멸자든, 영원히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불멸자든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다가오는 건 다 똑같기 마련이죠.
사실 저는 늘 한결같은 삶을 살아오긴 했습니다만은- 당신이 있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뭐어-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지겹긴 했답니다. 늘 사신으로 똑같이 살아가는 게 재미없긴 하거든요.
그래서 일을 안 할 때에는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서 아직 삶이 많이 남은 필멸자들과 같이 놀기도 했고 말이죠.
이제는 그렇게 필멸자들을 자주 만날 필요도 없겠네요. 정말로 사랑스러운 당신이 곁에 있으니까요.
물론- 필멸자들의 상황이나 그런 걸 파악하기 위해서 가끔은 필멸자들을 만나러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 땐 그냥 '네르노르가 일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단 말이죠.
저도 사신으로서 먹고 살긴 해야 된다구요, 하핫. 마냥 놀기만 하면 사신 직위를 박탈당할지도 모른다구요-
사랑스러운 나의 늑대기사. 언제나 멋있는 나의 늑대기사.
멋있는- 이라고 말하니, 당신의 가슴은 언제나 참 탐스럽답니다. 메카는 역시 가슴이 탐스러워야죠.
물론 가슴 말고도 손가락, 발가락... 그런 부분들도 참 멋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은 더욱 당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 주고 말이지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당신의 사신으로 남고 싶습니다. 당신도 계속해서 저의 늑대기사로 남아 주실거죠?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헌신할 수 있는 사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본체든, 그림자든- 아무튼 어디서든 다양한 모습으로 바라볼 사신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해 달라구요-
영원히,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