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탐욕] 211209

E / P 2021. 12. 9. 04:27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게 다르기 마련이죠. 어떤 누구는 평화로움을 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다른 어떤 누구는 아주 시끄러운 나날을 원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볼 수 있을 것이고요. 저는 어떤 쪽이냐고요? 글쎄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쪽이 아닐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요즘은 평화로운 게 더 나은 것 같더라구요. 괜히 일을 만드는 건 싫은지라...

하지만 여기에선 평화를 원하든, 시끄러운 것을 원하든 자기 마음대로 되는 곳은 아니라서 말이예요.

 

 

흔히 그렇게 표현하곤 하죠. '천사'와 '악마'라고. 이 곳에서는 그런 역할을 맡고 있는 존재들이 항상 이 곳을 관찰하고 있답니다. 그렇게 구별된 '천사'와 '악마'도 각자 7개의 선행과 악행으로 나누어져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 이 곳이랍니다. 아마 다른 분들이 이 곳에 놀러오기라도 한다면 꽤나 기겁하겠네요. 그렇게 누군가가 놀러온 적이 있었던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곳이랍니다.

소문에 따르면 각자 맡고 있는 선이나 악을 정말 충실히 잘 수행하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들을 만나는 게 워낙 쉬운 일은 아니라서 말이죠... 아니,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특히나 악마를 만나는 건 꽤나 어렵지 않은 일이겠죠. 저희들의 마음 속에 늘 숨어있는 게 그런 악한 것들이잖아요? 악마들이 얼마나 그런 악행을 잘 눈치채는지, 어느새 눈앞에 악마가 내려와 있다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들을 정도였다니까요.

 

 

악마들은 조용히 이 곳에 내려와서는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삼을만한 녀석들과 계약을 한다고 해요. 그 계약이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몰라도, 그 악마들의 눈에서 달아나기 위해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내놓아야 한다고도 하죠. 물론 단순히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그런 두려움을 가진 채 그들이 다시 내려왔을 때 그 때 내놓았던 것들을 다시 내놓아야 되는, 무한반복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결국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주지 못할 때에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요. 뭐, 충분히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로 물건 대신 물건의 원래 주인을 데려간 것일지도 모르죠. 처음엔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런 존재들의 수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주변 존재들의 두려움이 더 커지는 건 당연한 과정이겠네요.

한편으론 그렇기에 악마라는 일을 맡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그런 악마들과 대립하며 저희들을 보호해주는 천사도 있지만 천사라는 존재가 이 모든 것들을 다 막아세우는 건 역시 힘든 일이겠죠. 게다가 각자 대립하는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의 악마가 이 곳을 휩쓸고 다닐 땐 한 명으로는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악마라고 하니까, 최근에 꽤나 소문이 자주 들리는 악마가 있어요. 여러가지 죄악들 중에서도 '탐욕'을 맡고 있는 악마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악마들 사이에서도 우두머리나 보스에 해당하는 악마라는 소문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사실 그 악마를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적은 없지만, 정말 아주 우연히 그 악마를 멀리서 본 적이 있었어요. 확실히 우두머리나 보스라고 불릴만한 그런 모습이더라구요.

예를 들자면, 복근이 멋있다던지 전체적으로 육체미를 강조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던지... 아, 너무 내용이 산으로 갔나.

 

 

아무튼, 탐욕이라는 역할에 걸맞게 특히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은 존재들에게서 모습을 자주 비추더군요. 이 곳에서 웬만한 부자들은 다 한 번쯤 그 악마를 만나봤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예요. 그리고 그 악마에게 잔뜩 바친 보석이나 그런 반짝이는 것들을 잔뜩 건네줬겠죠. 어쩌면 이 곳에서의 부의 평등을 담당하는 것 같아서 '정말 악마인가?' 싶은 생각도 들곤 하지만, 뭐... 그들에겐 악마나 다름없으니 악마일지도.

사실 그들이 저렇게 악마에게 당하고 있는 걸 웃으며 바라볼 처지는 아니지만요. 이쪽도 나름 그런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긴 하니까. 단지 그들에게도, 그리고 이 모든 존재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아주 조용히 살아가는 척 지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겠네요. 솔직히 그렇게 누군가에게 유명해지는 건 조금 귀찮은 일이잖아요? 당장 저 부자들만 봐도 그렇게 자신들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소문내서 저렇게 피곤해지는 삶을 사는 거고요.

 

 

어쨌거나, 그런 일들을 하는 존재들이기에 악마들을 환영하는 존재들도 많아요. 뭐... 악마들의 능력 때문에 그들을 반기는 것인지, 아니면 악마들의 잘생긴 모습 때문에 그들을 반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가지의 이유로 갈라질 것 같다는 건 확실할 것 같네요.

솔직히 탐욕을 담당하는 저 분의 모습을 보면... 대충 그럴만도... 아, 자꾸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네요. 이러면 안 되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탐욕을 담당하는 악마만 하더라도 부자들을 항상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참 환영할 만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들에겐 부자들을 끌어내릴 힘이 없으니까, 차라리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들의 모습을 주눅들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없애버릴 수 있다고 하면 꽤나 솔깃한 제안일 것 같거든요.

물론 그런 악마라는 건 항상 부자들만을 노리는 건 아닐테니, 그렇게 힘을 빌린 대가는 자신의 영혼이 될 수도 있는 일종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에 가깝겠지만요. 실제로 부자들에 비하면 그렇게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존재들일테니, 그 탐욕의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존재도 없진 않을지도 모르죠. 단지 조용히 사라졌을지, 아니면 아직 존재할지 모르는 것일 뿐.

 

 

이렇게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여보는 건 처음인데, 조금 색다른 기분이네요. 뭐, 들을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아서 말이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저는 혼자서 얘기하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을 어떤 누군가가 있을지? 보통 뭐 유령이라느니, 그런 것도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존재가 있는 세상인데 정말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해도 마냥 이상할 일은 아니죠.

유령이라고 하니, 이 곳을 지키거나 망가뜨리는 저 천사와 악마도 유령이라면 유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명 이 곳의 존재들이 다 소문처럼 듣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존재가 다 만나보진 않은 그런 존재이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천사와 악마를 보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그런 게 존재할 수 있겠냐며 믿지 않을 존재도 있을테고... 뭐, 굳이 이런 것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겠지만요. 제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뭔가 갑자기 조금 으스스해진 기분이 드네요.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마치 누군가가 이 곳에 같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

 

무언가 제 눈 앞에, 어떤 눈이 보이는 것 같아요. 아니, 그걸 눈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혀라고 해야 할 지...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혀처럼 생긴 곳에 눈이 있는 구조네요. 저 구조는...

탐욕의 악마만이 가지고 있는 눈일텐데, 그렇다는 건...

 

 

그렇겠네요. 그렇게나 늘 이야기해오던, 다음 계약의 대상은 제가 되는 것이겠네요.

이 내용이 마지막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테니, 늘 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탐욕의 악마가 제 존재를 다른 존재들에게서도 완전히 없애버리는 능력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퍼졌는지도 모를 전설같은 게 되겠죠.

 

어떤 결말이든, 잘 받아들여야죠.

그럼, 탐욕의 다음 대상이 당신이 되기를 빌며 이만 줄여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