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터너스] 220101
새로운 인연은 늘 낯설지만,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미묘한 분위기가 있지. 그런 미묘한 분위기 덕분에 조금이나마 남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고, 남들의 행동이나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
...뭐, 이제 다 지난 과거의 일이니까 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정도는 알려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볍게나마 알려줄 수 있는 건 알려주고 싶군.
과거에는 전쟁에서 활동했던 용병으로서 움직이는 메카닉이었지. 전체적으로 까만 색배치라던지, 단단해보이는 부품이라던지, 날카로운 손톱같은 파츠라던지...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단해보이는 부품이나 손톱같은 파츠는 특별히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유를 알 것이고, 전체적으로 까만 색배치도 어둠 속에서 몰래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듣긴 했었다.
이쯤되면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낮보다는 밤에 움직이는 메카닉이기도 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겨서 잠입하듯 적진에 침범하여 아무도 모르게 날카로운 손톱으로 목을 그어버리는 건 꽤나 나에겐 익숙한 임무 중 하나였지. 다른 임무들도 여러가지 기억이 나긴 한다만, 대부분 다 조용히 잠입하는 것이거나 첩보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라 계속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 같군.
이런 거대한 덩치로 무슨 잠입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 실제로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전쟁이라는 곳에서는 다들 거대한 것들을 잔뜩 만들어내는 편이었으니 꽤나 잠입이라는 게 할만하더군. 물론 조그마한 녀석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런 녀석들은 그저 밟아버리면 되는 일이었고.
아무튼, 그렇게 윗선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조금 전쟁이 가라앉을 때였던 시기도 있었지. 아마 내가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이 가라앉아있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워낙 과거의 일이라 제대로 시간을 계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니까 대충 알아서 잘 이해했으면 좋겠군. (적당히 잘 알아들을 수 있기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다시 전쟁에 참여해서 그런 잠입이나 첩보같은 것을 해야 된다는 것이, 분명 적군에서도 이렇게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이 날카로운 손톱에 베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모순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모순을 이겨내지 못하고 완전히 잠식되어 결국 다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그 장소에서 이탈했다.
...뭐, 정확히는 이탈이 아니고 추방에 가까울 정도겠지만. 쫓겨나듯이 나왔다곤 해도 사실 굳이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돌아가봤자 결국 다시 할 일을 하게 될 뿐인데, 나에게 좋을 일이 무엇이 있겠나.
그렇게 되어서 지금은 여행을 다니고 있지. 보통은 혼자 다니고 있지만 가끔은 어떤 저승사자 녀석을 만난다던지, 또 어떨 때는 당시에 같이 용병으로 활동하던 다른 메카닉을 만난다던지 하는 일도 있더군. 서로 의도치 않게 여행길이 겹쳐서 만나는 건 꽤나 흔한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따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망이 있어서 여행길이 겹치지 않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점이라면, 진작에 전쟁에서 손 떼고 이런 여행을 다녔으면 참 좋았을텐데- 라는 후회 아닌 후회가 종종 들기도 하지만, 지금에서나마 이렇게 손을 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곤 하지. 사실 그 평온한 시간이라는 게 없었다면 아마 이런 고민을 할 이유조차 가지지 못했을 테니, 결론적으론 평온한 시간을 만들어준 그 지역에 고마워해야 되는 일일까. 이것도 참 모순이라면 모순이군.
원래 삶이라는 게 모순의 극치라는 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지만, 더 파고들수록 더 놀랍군...
...또 이야기가 먼 산으로 흘러갈 뻔했군. 이렇게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그만큼 자연스럽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주는 존재들을 만나고 있으니 꽤나 즐겁다는 생각도 드는군. 전쟁이라는 것에서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으니 그게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행을 통해서 조금씩 낯설지만 배워가는 기분이 꽤 흥미롭구나.
그렇게 되어서, 이번에 네 녀석을 만나게 되었으니 내가 배우게 될 새로운 감정은 무엇일까. 그런 것들도 꽤나 호기심이 생기게 되는군. 아니면, 내가 네 녀석에게 어떤 새로운 감정을 가르쳐주게 될까. ...뭐, 당연하겠지만 네 녀석이 나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나 기분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무엇이든지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건 존재하기 마련일 테니.
앞으로 전쟁이라는 걸 다시는 떠올리지 않도록, 네 녀석이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군. 이미 떠오르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못을 박아서 가둬두는 것이 나을 테니까. 쉽게 표현하자면, '확인사살' 이라고 하던가? 대충 그런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고 있을테니 잘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고, 열심히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도록 움직여 줄 테니.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