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녹터너스] 220330

E / P 2022. 3. 30. 00:03

 

 

 


 

 

생명체들이 북적거리는 도시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거나 새로운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 목적으로 험난한 곳을 탐험하는 것도 좋지. 사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메카닉들은 대부분 험난한 곳을 탐험하는 걸 선호했던 것이 기억나는군. 아무래도 용병 활동을 하면서 그런 험난한 곳들을 자주 오르내렸던 기억 때문일까.

물론 지금은 그들도 도시처럼 평온한 곳을 선호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오늘은 새로운 것들을 탐험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근처에 있는 숲에 잠시 방문하게 되었다. 숲이라곤 하지만, 중간중간 공터가 있는 걸 보면 생명체들의 흔적이 아예 없지만은 않은 것 같지만, 지금은 생명체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라는 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이런 곳까지 생명체가 드나들었던 건 이젠 옛날 일이라는 걸 흔적으로나마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

 

 

우리같은 거대한 메카닉들은 이런 공터를 찾아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일이 많았다. 공터를 찾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 그런 이유들을 설명하자면 꽤나 다양한 이유가 존재할 테지.

 

- 첫번째 이유로는, 거대 메카닉에게 일반적인 휴식처는 크기가 맞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넓은 공터는 우리들의 유일한 쉼터나 다름없었지.

- 두번째 이유로는, 아마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부담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용병 활동을 하면서 몸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다른 생명체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두가지 이유가 다 포함되겠군.)

- 마지막으로는, 보통 이런 곳이 풍경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다. 특히 종종 연락하곤 하는 다른 메카닉은 그런 풍경들을 구경하기 위해 이런 공터를 찾는다고 하더군. 그 메카닉의 말을 들은 이후로 나도 이런 공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그의 말을 증명하듯 밤이 되면 여러가지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밤이 될 때마다 빛나는 하늘의 별들이라던지, 밤이 되면 밝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이라던지... 그런 것들을 이 공터에서 유유히 구경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더군. 어쩌면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도 그런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이런 곳에 공터를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것까지는, 내가 알아낼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굳이 알아보려고 하진 않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근처에 도시가 있다보니, 밤하늘에 별이 떠있는 모습을 보기는 좀 힘들군. 대신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도시의 불빛들이 이 공간을 밝게 비추고 있으니 이건 이거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원래 내가 이런 표현을 잘 쓰는 편은 아니었는데, 다른 메카닉들과 생명체 덕분에 이런 표현이 조금씩 몸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름 이렇게 감성적인 메카닉이 되는 것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겠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풍경을 즐기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과거 용병 시절의 본능이 남아있을 때에는 참혹함과 잔인함에 너무 물들어있어서 이런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군. 지금은 완전히 용병에서는 손을 뗐기에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이고.

 

 

...아무튼, 그렇게 경치를 구경하고 있으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어느새 깊은 밤이 지나 새벽이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저 멀리서 떠오르려고 하는 태양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오늘도 꽤나 맑은 날씨가 예상되는군. 저 햇빛을 맞이하는 것을 싫어하는 생명체들도 종종 보았는데, 그럼에도 결국은 햇빛에 굴복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시 시간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나는, 뭐... 이 곳에 휴가같은 느낌으로 온 것이니 굳이 몸을 일으켜서 도시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지만 이 곳에서 충분히 쉬긴 했으니 다른 곳을 더 둘러볼까, 싶은 마음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했다. ...그런데, 몸을 막 일으킨 찰나 어디선가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냐."

 

 

용병 시절의 본능은 이제 완전히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긴 했어도, 사실은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것에 가까운 편이다. 아무튼 그 시절의 본능을 깨워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시선을 옮기고 날카로운 손톱을 보였는데, 그 곳에는 하반신에 누더기 천만 두르고 맨몸으로 다니는 다른 존재가 있었다.

 

 

"..."

 

 

그런 모습을 보며 일단 나에게 적대감이 있어서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존재의 모습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흔히 생명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떡대' 또는 '근육돼지'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거대한 몸집과 근육을 가지고 있고, 옷이라고는 하나도 입지 않고 단순히 하반신의 중요한 부위에 누더기 천으로 가려둔 것 정도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종족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닌... 나와 같은 메카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조금 특별한 생명체일 수도 있는 것이고. ...사실 메카닉도 나처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도 생명체라고 할 수 있겠지.

 

아무튼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내 앞의 존재를 보며 나도 같이 적대감을 거두듯 날카로운 손톱을 거두며 조심스럽게 가까이에 다가가서 그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살펴본다.

 

 

"이 곳에는, 무슨 일이지?"

 

 

나의 질문에 그 존재는 단순히 자신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던 중 이 곳에서 어떤 거대한 그림자같은 것이 보여서 호기심에 다가온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음, 다른 생명체들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덩치도 이 존재마냥 거대한 몸집에 가깝긴 했으니. (나름 근육을 형상화한 파츠들도 근육이라면 근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고 자신의 무릎에 앉아 편히 쉬라는 느낌으로 나의 무릎을 톡톡 건드렸다. 아직 무릎에 앉기엔 부담스러운지 가볍게 나의 옆에만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뭐, 처음엔 다 그렇게 낯선 분위기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못하긴 했으니, 이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적대감을 거두고 이 존재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으니 이 떠돌이 생명체도 나를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가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왠지 내가 이 생명체와 함께 다니며 이 생명체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과거에는 누군가를 없애기 위해 내 실력을 발휘했다면, 지금은 누군가를 보호해주기 위해 내 실력을 발휘하고 싶기도 하고... 이 떠돌이 생명체를 보고 있으니 왠지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었던 그런 감정들이 조금씩 몸 안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분명 어떤 식으로 표현하긴 했는데, 나와는 관련이 없을 것 같아 대충 들어서 넘겼던지라 막상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괜찮다면, 네 녀석의 떠돌이 생활에 내가 함께하고 싶은데."

 

 

떠돌이 생명체는 나의 말에 좀 놀란 듯 잠깐 멈춰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오늘 처음 만난 존재가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좀 당황스럽긴 하겠지. 나같아도 좀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함께하고 싶다는 말이 듬직하게 느껴졌는지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진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이 나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뻗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떠돌이 생명체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니 네가 나의 장애물이라느니, 반대로 내가 너의 장애물이라느니- 그런 생각은 가지지 않고 서로에게 편안한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가 이런 부탁 쪽으론 미숙하다는 걸 미처 말하지 못했군. 어쩌면 명령조로 들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떠돌이 생명체는 마치 내가 이런 쪽에 미숙하다는 걸 눈치챈 듯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듯했다.

사실 정확히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단정짓기엔 어려울 수도 있다. 그저 나의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는 것이고. 하지만 떠돌이 생명체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듬직한 기운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무쪼록, 서로에게 좋은 여행이 되기를."

 

 

이번에는, 확실하게 부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말을 건넸다.

나의 진심이, 자네에게 전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