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노르 / 딘] Stella
"호오- 이런 곳에 있었네, 자기?"
"어라라? 당신은 이 곳에 웬일이십니까-?"
"그냥 뭔가 인기척같은 게 느껴지길래 와 봤는데, 그게 자기인 줄은 몰랐지~"
"하핫- 덕분에 분위기 좋아지네요."
산의 중턱쯤 되는, 도시의 경치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넓은 공터. 네르-노르는 종종 이 곳을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그 곳을 어쩌다가 찾아오게 된 딘. 사실 이 공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런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딘이 이 곳에 찾아왔다는 것은 딘도 종종 이 곳을 찾아오곤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아무튼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편하게 바닥에 앉는 네르-노르와 딘.
딘은 자신의 손에 끼워진 금반지를 바라보며 싱긋 웃다가 네르-노르를 향해 이런저런 말을 꺼낸다.
"자기는 이런 곳을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이런 분위기가 좋아서?"
"둘 다- 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하긴~ 은근 자기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좀 편안해지는 그런 분위기라고 해야 되나?"
"가끔 이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나 즐겁거든요. 항상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즐기는 여유라고나 할까요?"
"저승사자 일이 엄청 바쁘긴 바쁜가봐."
"생각보다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구요-"
큭큭 웃으며 딘을 바라보곤 마치 윙크를 하듯 한쪽 부분의 푸른 빛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네르-노르의 모습. 아무래도 딘이 저승사자 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적당히 알려줘도 괜찮은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네르-노르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좀 낯설긴 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듯 자신의 이야기들을 많이 꺼내고 있다.
"보통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만 골라서 데려가는 경우가 많긴 한데- 가끔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떼를 쓰는 생명체들도 종종 있었단 말이죠."
"어떤 녀석들인지 대충 감은 잡히는데, 역시 저승사자한테도 예외는 아니구만."
"어라라, 당신에게도 종종 있었던 일이긴 했나 봅니다?"
"이런 모습이라서 그런지 좀 있긴 했었지. 뭐-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어서 저런 일보단 내 가슴에 유혹당한 녀석들이 더 많았지만 말이야~"
"큭큭, 그런 가슴을 이젠 저만 가질 수 있단 말이죠?"
"가슴은 자기도 만만치 않다고~?"
"하핫- 애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유독 더 기쁘지 말입니다."
잠시 뿌듯해하는 시간을 가지다가 약간의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네르-노르.
"아무튼! 저승으로 데려가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사람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답니다."
"그럴 땐 자기도 계속 옆에 있는건가?"
"옆에 계속 붙어있을 때도 있고, 잠깐 자리를 비워주는 경우도 있죠. 전자든 후자든- 마지막엔 결국 제가 데려가긴 하지만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다가 가기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꽤 많죠. 하지만 생명체의 정해진 운명은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생명체분들도 결국 마지막엔 납득하고 저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답니다."
어느새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분위기에 빠져드는 네르-노르. 그러면서도 별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도시의 경치와 밤하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보통 이런 도시에서는 별 보기가 힘들다던데, 오늘은 의외로 많이 떠 있네요."
"다들 자기 보려고 빛나는 거 아닐까~"
"하핫, 저런 별들도 좋지만- 제 옆에 더 붉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있는걸요?"
"은근히 그런 유혹적인 말을 많이 한단 말이지? 그래서 좋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런 말 정도는 언제나 해 줄 수 있죠-"
큭큭 웃다가 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딘에게 더욱 가까이 붙는 네르-노르의 모습. 거의 밀착되다시피 한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추위 걱정은 하나도 안 해도 될 것 같을 정도다. 그렇게 따스하고 후끈후끈 피어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네르-노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다가, 생명체들이 나눈 얘기들 중에서 꽤 인상적인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죠."
별들을 이것저것 바라보며 다시 딘을 바라보는 네르-노르.
"언젠가 시간이 되면,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말이죠."
"생명체 녀석들도 은근히 감수성이 넘친다니깐. 그렇지?"
"하핫, 저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나름 감동적인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죠."
네르-노르가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별들도 평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자신들의 감정이나 기분을 대신하는 것처럼.
"저렇게 빛나고 있는 모습도- 어쩌면 자신은 여전히 여기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이기도 하겠죠."
"그때 나누었던 마지막 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대충 이런 상상을 하니- 생명체들이 왜 별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저도 나름 관심이 생기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저 별들에게 자기가 만난 마지막 생명체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그것도 꽤 재미있겠군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그렇게 해봐야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둘의 마음은 꽤나 잘 통하는 듯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얘기를 나누다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은 딘. 자신과 밀착되어 있는 네르-노르를 장난스럽게 더욱 끌어안으며 윙크를 한다.
"이제 슬슬 내려갈 때가 된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군요? 내려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시겠습니까-?"
"요즘 나 때문에 자기가 술에 중독된 건 아닌가 걱정이야~"
"알아서 잘 절제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구요-"
"이번에도 좀 깊은 걸로 마실까, 자기?"
"당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