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녹터너스 / 마일즈] 220403

E / P 2022. 4. 3. 16:05

 

 


2022.03.30 - [메카닉] - [녹터너스] 220330


 

 

"갑자기 이런저런 하고싶은 말이 많아지는군. 꽤 질문이 많아도 괜찮겠나?"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 메카닉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무작정 질문부터 꺼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어디선가 얼핏 들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부터 하려는 목적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는지 어느새 꽤나 가까워졌고, 누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서로 사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아무튼, 어떤 질문부터 꺼내야 할까.

 

 

"너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이 좀 궁금한데."

 

 

나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나를 바라보곤 조금씩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했던 것은 자신의 과거를 꺼내기 위한 시간이었을지, 아니면 말을 꺼낼지에 대한 고민이었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저는, 과거엔... 어떤 실험실에서... 조수를 맡았어요."

"실험실의 조수라, 나름 멋진 일을 했군."

"에, 그... 그런가요...? 아무튼, 그렇게 조수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이렇게..."

"..."

 

 

내심 마음 속으로 '용서할 수 없군.' 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이 하얀 메카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얀 메카닉은 나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라도 했는지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곤 이런저런 과거나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마, 그 실험실은... 제가... 필요없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 곳에서는 네가 필요없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에겐 네가 필요하다."

"ㄴ, 네...?"

"방금 내가 했던 말 그대로다. 지금은 그것만 알아주면 된다."

 

 

나의 말을 듣곤 더욱 나에게 파고드는 하얀 메카닉. 아무래도 이런 포근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나름 내 생각엔) 부드럽게 하얀 메카닉을 끌어안아주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허리가 굵어서 품 안에 완전히 끌어안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나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흔히 말하자면, 서로 반대되는 매력이어서 더 끌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렇게 품 안에 끌어안아진 하얀 메카닉은 조금 안정된 상태로 다시 나에게 말을 꺼내기도 했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지금 두르고 있는 이 천도... 이 곳까지 오다가 발견한 쓰레기장에서... 잠깐 주워온 것이구요..."

"그렇군. 그렇다면,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 어떤..."

 

 

하얀 메카닉을 두른 천을 가볍게 벗겨주며, 다시 끌어안아준다.

 

 

"내 앞에서는, 이 천을 두르지 않아주었으면 해서."

"그, 그렇지만..."

"물론 내가 없을 때에는 이 천을 두르고 다니고, 내가 있을 때에는 벗고 다녀달라는 뜻이다."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요...!"

 

 

천을 두르고 다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 메카닉의 곁에 있을 때에는 그런 이유들을 내가 다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런 생각들은 전혀 틀린 것들이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가 그렇게 믿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멋진 몸을 천으로 가리고 다니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몸이라고 하면, 그 쪽도 만만치 않은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생각해보니 내 이름을 따로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 이제 막 만난 사이에서 다른 질문들을 먼저 꺼냈으니, 서로에 대한 소개를 하지도 못했군. 그런 의미에서, 나름 사죄의 의미도 담아서 나의 소개를 먼저 하기로 했다.

 

 

"나는 '녹터너스' 라고 한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녹터너스씨...!"

"그런 의미에서, 네 이름은 뭐지?"

"제 이름..."

 

 

잠시 생각하다가도 결국 완벽한 해답을 찾지 못한 듯 약간의 한숨을 쉬곤 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한편으로는 마치 무언가 부탁하려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저는, 이름이... 없는 것 같아요..."

"네가 일했던 그 실험실에서도, 따로 정해준 이름이 없었나?"

"ㄴ, 네... 없었어요..."

"...그렇다면."

 

 

내가 함부로 이런 걸 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하얀 메카닉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았고 나도 이 하얀 메카닉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러서지 않고 이 하얀 메카닉에게 제안을 하나 건넸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마일즈' 라는 이름을 지어줘도 괜찮을까."

"마일즈..."

 

 

하얀 메카닉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마음에 드는 듯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에... 들어요...! 이름을 지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만큼 너에게 큰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이니, 너무 부담갖진 말았으면 좋겠군."

 

 

마일즈의 밝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것이 낯설면서도 고마운 것이 그런 모습에서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동안 이름없이 혼자서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

문득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그 중에서도 정말 힘든 일이 있었을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혼자 다니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있나?"

"힘들었던 것..."

 

 

마일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곧 무언가가 떠오른 게 있는 듯 조금 뜸을 들이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무서웠어요. ...사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렇군. 혼자 다닌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는 마일즈를 부드럽게 더욱 끌어안아주며 토닥여주었다.

 

 

"어떤 나쁜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리고...?"

"그런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사과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라는 것이니까."

"그, 그렇군요..."

"모든 존재들이 다 선한 행동만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

"덕분에... 좋은 교훈을 얻은 것 같아요... 헤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욱 밝아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조금씩 더욱 밝아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선한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일까, 라고 조용히 생각하며 다시 마일즈를 바라보고 약간 쓰다듬어주는 느낌과 함께 포근한 말을 건넸다.

 

 

"앞으로도, 모르는 것이 있거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라."

"그치만, 녹터너스씨를 부담 가지게 하긴 싫은걸요..."

"그럴 일은 없으니, 무엇이든지 다 말해라."

"그러면... 뭐든지 다 말할게요...!"

"그래. 그런 모습이 정말 보기 좋구나."

 

 

언제까지나, 이런 밝은 분위기를 즐기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