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기스 / 카르디스] 220502
2022.04.07 - [메카닉] - [아이기스 / 카르디스] 220407
생각보다 이 장소를 정리하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이 곳에서 연구를 하시느라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겠죠. 정확히는 카르디스님의 이런저런 물건들보다는 주변의 잡초같은 것들에 시간을 많이 보내긴 했지만요.
사실 저는 이런 숲에서 잡초와 식물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카르디스님의 지식 덕분에 유용한 식물이 아닌 풀들을 걸러낼 수 있었습니다. 카르디스님과 함께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스스로 구분해보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어느정도 구분이 될듯 말듯한 그런 알쏭달쏭한 영역까지는 도달한 것 같습니다.
카르디스님의 연구 자료들이나 물건들, 그리고 주변을 정리하다보니 방금 전보다 하늘이 더 어두워진 게 보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걸 증명하는 모습이기도 하겠죠. 카르디스님은 그런 하늘을 보며 약간은 미안한 듯한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습니다.
"쉬려고 온 건데, 내가 너무 시간을 잡아먹게 한 건 아닐까..."
"하하, 괜찮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카르디스님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쉴 때는 편하게 쉬어야지. 이제 편하게 쉬어도 돼."
"저는 언제나 이 곳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걸요. 늘 편하게 쉬고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 맞다. 같이 경치 구경하고 싶다고 했었지?"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카르디스님이라면 왠지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실 것 같군요."
"내가 도움이 될만한 게 있으려나... 그래도 원한다면 최대한 알려줄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넓은 공터. 확실히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장소였습니다. 보통 이런 장소는 사람이 만들기 마련인데, 정작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 꽤나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사람의 흔적보단 자연의 흔적에 가까운 것이겠죠?
카르디스님은 이 곳을 둘러보며 꽤나 오랜만에 오는 것같은 모습으로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없을 때에도, 이 곳에 자주 오셨나요?"
"글쎄... 워낙 연구에 집중하느라 잘 찾아오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한결같아서 좋긴 하네."
"아무래도 사람의 기척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이 곳을 발견했을 때에도 조금 신기하긴 했었어. 분명 다른 존재들이 왔을 법한 장소인데, 그런 흔적이 없었으니까."
"자연이 만들어 준 선물인 걸까요?"
"하하, 아이기스는 언제나 참 신기한 표현을 쓴단 말이지. 하지만 나도 공감해."
두 메크가 편하게 자리잡아도 공간이 많이 남는 넓직한 공터. 그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분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동안 다녔던 곳들은 도시가 많았던지라 도시의 불빛들 때문에 저렇게 많은 별들을 보기 힘들었는데, 이 곳은 아무래도 숲이라서 그런지 별을 보기가 굉장히 쉬웠습니다. 카르디스님도 느긋하게 별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용히 분위기 속으로 녹아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도시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지금도 하늘에 떠 있나요?"
"음, 어디 보자... 아, 저기에 있네. 네가 말한 별이야."
"오, 확실히 특별한 모양을 이루어서 빛나고 있군요."
"보통 다른 존재들이 정한 별은 그렇게 모양을 정해서 이름을 짓곤 하니까. 다른 별들도 궁금해?"
"더 알고 있는 별이 있으시다면, 더 듣고 싶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은... 저건 어떨려나."
이런저런 별들을 구경하다가 얼핏 들어본 적이 있었던 별들에 대해 카르디스님에게 물어보았고, 카르디스님은 하늘을 둘러보다가 손으로 별들을 가리키며 저것이 그 별이다, 라는 식으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게 별들의 이름을 듣고 있으니, 저렇게 이름을 짓는 것도 생명체들이 직접 하나하나 고르며 지은 것이겠죠?
"보통 이런 것들은, 생명체분들이 직접 하나하나 고르며 지어준 이름인가요?"
"음, 보통은 그렇지. 지금도 이름없이 빛나고 사라지는 별들이 잔뜩 있으니까."
"별들의 삶도 누군가는 유명하게 시간을 보내고, 또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자신만의 빛을 내뿜다가 사라지는 것이로군요."
"비록 조용히 내뿜는 것이더라도, 누군가에겐 그 빛이 감동이나 희망이 될 수도 있겠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네요."
"응? 이미 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가요...?"
"은근히 아이기스는 남들을 신경쓰는 건 능숙하지만, 본인 스스로를 생각하는 건 조금 미숙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
"음..."
남들을 생각하는 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익숙하지만, 정작 본인을 생각하는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는 카르디스님의 말에 왠지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항상 자신보다는 다른 존재의 안전이나 보호에 신경쓰곤 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다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이것이 제가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넘기곤 했었죠.
하지만 카르디스님의 말을 들으니 조금씩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더욱 남들을 신경쓰고 보호해주기 위해서는 제 자신을 먼저 신경쓸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하하, 카르디스님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을 생각하는 것에는 조금 미숙하지 않았나 싶네요."
"조금 말이 강했으려나... 왠지 미안해지기도 하네."
"아닙니다. 늘 카르디스님은 정확하게 제 모습을 바라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알려주셨으니까요."
"그래도 내 말이 조언으로 된 건 기쁜걸.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나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고 있냐고 한다면... 음..."
"이미 카르디스님도 스스로를 잘 생각하고 계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럴려나...? 일단 나 자신이 잘 살아있어야, 다양한 것들을 연구할 수 있긴 할 테니까..."
그렇게 서로에 대해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하늘의 별들도 저희의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듯 방금 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밝게 빛나고 있는 별들 중에서 두 별을 골라서 카르디스님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기 밝게 빛나는 별들, 보이시나요?"
"응. 다른 별들보다 더욱 밝게 빛나고 있네."
"왼쪽에 있는 푸른 별에겐 아이기스, 오른쪽에 있는 청록빛 별에겐 카르디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네요."
"푸핫, 갑자기? 하긴, 그렇게 이름을 짓는 것도 한번쯤은 있어야겠지."
"언제나 카르디스님이 저렇게 밝게 빛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아이기스도 그렇고, 나를 생각해주는 존재가 없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영원히 밝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 주시길 바라며, 이 시간을 더 깊게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