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기스 / 헥토르 / 이클립스] 220503
"오늘도 참 열심히 하는구만."
"늘 열심히, 최대한 즐겁게!"
"너네들이나 그렇게 할 수 있지, 나는 별로 안 즐거워서."
"아무튼 오늘은 크게 별 일 없었습니다."
"그러냐? 하긴, 이쪽에서도 별 소식 없었던 걸 보면 너희들이 잘 해결해 준 거겠지."
"우리들이 해결한 것도 있고, 애초에 사건사고가 별로 없었던 것도 있고!"
"이상하게 너네들이 순찰을 돌 때마다 사건이 별로 안 터지더라. 내가 맡을 때는 지겹도록 터지더니."
"그만큼 다들 이클립스님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맞아! 유명한 존재는 쉽게 보기 어렵다고 하잖아?"
"으,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난 유기체 녀석들한테 유명해지고 싶지 않거든."
이클립스의 말대로, 실제로 아이기스와 헥토르가 이클립스의 일을 대신 맡아서 할 때마다 유독 도시가 조용한 편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실 따지자면 아이기스와 헥토르가 일을 맡는 타이밍을 굉장히 잘 잡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굳이 이클립스의 스타일에 맞게 나쁘게 말하자면 날로 먹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저녁까지만 그들이 일을 맡았고, 그 이후의 밤부터 다음 날까지는 다른 존재들이 일을 맡도록 부탁했다. 오늘은 그들도 편하게 쉬고 싶었던지라 일종의 휴가를 신청했다고 하는데, 이전부터 일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계획된 휴식이었을지도.
이클립스도 그런 아이기스와 헥토르의 휴가 이야기를 듣고 조금 신기한 마음에 찾아온 것이었다. 보통 이클립스가 그들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그냥 흔쾌히 일을 맡아서 해 주었기 때문에 휴가를 가진다는 게 아무래도 신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도 하다. 그의 질문에서 그런 마음이 조금씩은 드러나기도 했고.
"그나저나, 웬일로 휴가냐? 뭐, 너네들이 열심히 일한 건 사실이긴 하지만."
"뭐랄까- 그냥 한번쯤 쉬고 싶을 때가 있지!"
"적당한 휴식은 다시 일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니까요."
"뭐, 맞는 말이긴 하다. 그래서, 어디서 쉴 건데?"
"이 주변에 넓은 공터가 있다길래, 거기서 쉬려고."
"이참에 잘 되었네요. 이클립스님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나?"
"사실 괜찮다면 이클립스도 같이 데려가도 되겠냐고 슬쩍 물어봤었거든."
"만약에 이클립스님이 저희를 찾아온다면, 같이 휴가를 즐겨도 된다고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흠."
조금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면서도 바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클립스. 사실 이클립스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생긴 휴식시간이니까 이 시간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 휴식시간을 같이 즐기는 존재가 유기체도 아닌 아이기스와 헥토르였으니, (조금은 헥토르가 귀찮을 수는 있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이클립스는 팔짱을 끼곤 아이기스와 헥토르를 바라보았다.
"거절할 이유 없지. 그래서, 언제 갈 건데?"
"이 일들만 마저 해결하고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아마 나머지 일들은 헥토르가 해결해 줄 겁니다."
"얼른 끝내고 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으라구~"
"늘 뒷일은 헥토르가 맡나?"
"거의 그렇습니다. 제가 맡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헥토르가 먼저 나서더군요."
"하여간, 일하는 때에도 한결같은 성격이구만."
헥토르가 잠시 뒷일을 맡고 있는 동안, 아이기스와 이클립스는 근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같은 메카닉이다보니 유기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비해서는 꽤나 소소한 이야기들이 자주 꺼내지는 모습이었다.
"일하는 데에 불편함은 없다고 했지?"
"네. 보다시피 불편함 없이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해. 윗녀석들이 완벽하게 반영해 줄 지는...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일단 얘기를 건네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
"알겠습니다. 이클립스님은, 불편한 게 생기면 항상 바로바로 찾아갔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잘 아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스트레스 받거든."
"아무쪼록 저희들도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너네들이 아무리 스트레스를 준다고 해봤자 유기체 녀석들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지."
"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저희들도 조심하는 게 좋겠죠."
"너무 심하게 선만 안 넘으면 돼. 게다가 너네들이 그렇게 선을 넘는 녀석들도 아니었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헥토르의 모습. 언제나 헥토르의 발걸음은 묵직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 들곤 했다.
"오래 기다렸지? 오늘은 조금 꼬여서 말이야."
"그래도 잘 해결했나보네."
"그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구~"
"그으래, 그 자신감이 일 하면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제, 출발해볼까요?"
"먼저 앞장설게!"
"너무 날뛰진 마라. 귀찮아지거든."
"걱정 마셔~"
아이기스, 헥토르, 그리고 이클립스가 함께 도착한 곳은 꽤나 넓은 공터였다. 실제로 세 메카닉이 서로 자리를 하나씩 잡고 바닥에 편하게 앉아 있어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넓은 이 공터는 어떻게 발견했는지 이클립스는 꽤나 신기한 모양이기도 했다.
"이런 곳도 있었나?"
"저희들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곳입니다."
"주변에 유기체 녀석들의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넓은 공터가 생겼을까? 그건 우리들이 처음 이 장소를 발견했을 때에도 참 의문이었단 말이지."
"그러게 말이다. 유기체들이 올 만한 곳이 아닌데."
"뭐, 오히려 좋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클립스님에겐."
"그렇긴 하지. 유기체 녀석들의 모습을 전혀 안 봐도 되는 장소라, 참 편해지는구만."
"오늘은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가자구~"
아이기스와 헥토르가 일을 끝냈을 때에는 막 해가 지기 시작한 저녁이었지만, 이 공터까지 올라오면서 어느새 밤이 되어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꽤나 놀라운 듯 '호오.' 소리를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이클립스, 그리고 그런 별들을 바라보며 이 곳을 발견하게 되어서 참 기쁘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기스와 헥토르의 모습이 겹쳐지듯 지나간다.
이런저런 별들을 관찰하다가 이클립스를 바라보는 아이기스와 헥토르.
"생각해보니, 이클립스님과 함께 별을 보러 온 건 처음인 것 같네요."
"그랬던가? 뭐, 다른 곳들을 자주 가긴 했지만 이런 곳에서 별 보는 건 기억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
"워낙 도시에서만 시간을 보내긴 했었으니까. 그렇지?"
"이제는 아마 이 곳도 자주 찾아오게 될 것 같구만. 너네들 덕분에 좋은 곳 알았다."
"히히,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이 장소도, 하늘의 별들도... 참 마음에 듭니다."
"그-으래, 좀 차분해지는 기분이구만."
헥토르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들을 가리키며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아이기스에게 물어보는 모습도 보였다. 헥토르가 가리키는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아이기스의 모습을 보며 도대체 그런 정보들을 어디서 알아왔는지 신기해하는 이클립스의 모습도 보인다.
"아이기스."
"네, 이클립스님."
"너는 그런 지식들을 도대체 어디서 배워온 거냐?"
"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메카닉 친구가 있어서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친구인 모양이구만."
"그런 셈이죠. 자연과 연구를 사랑하는... 그런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지식을 알고 있으면 좋긴 하지. 근데 그런 것들을 남들에게 막 함부로 자랑하듯 말하지는 마."
"아무래도 그들이 원하지 않았는데 괜히 얘기해봤자 분위기만 더 나빠져서 그런 거겠죠?"
"그것도 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너를 더 굴려먹을 생각을 가지는 유기체 녀석들도 있거든."
"...아. 하긴, 유기체분들이 전부 좋은 분은 아니라고 했었죠."
"너희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다 아니까, 일종의 충고지."
이클립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마음에 새겨두듯 곰곰히 있다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기스. 한편 헥토르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듯 그저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클립스도 아이기스에겐 그런 충고가 통하지만 헥토르에겐 딱히 그런 충고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 별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그저 다시 경치를 둘러보고 있다.
유유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하늘을 보며 유독 밝게 빛나고 있는, 주황색과 하늘색과 보라색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별을 손으로 가리키는 헥토르.
"저거, 우리들같지 않아?"
"음? 밝게 빛나는 별들이네요."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색깔로 빛나고 있어!"
"...신기하긴 하네."
"우리, 저 별들한테 우리들의 이름을 붙여줄까? 재미있을 것 같지!?"
"뭐래.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걸 굳이..."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름을 붙여주겠습니까?"
"맞아맞아!"
"...에휴."
겉으로는 한숨을 쉬는 척 하지만, 사실 그 정도쯤은 크게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이기스와 헥토르가 별에 이름을 붙여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주황색은 나!"
"하늘색은 저, 아이기스."
"저기 보라색은 나네. 이클립스. 맞지?"
"크크, 좋아좋아~"
"아무쪼록 계속해서 저렇게 밝게 빛나주었으면 좋겠군요."
"뭐, 언제 저 별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역시 휴가를 내길 잘했어~"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계속해서 오랫동안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