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 of the Lamb / 어린 양 & 기다리는 자] 220829
"..."
"...믿음으로 따르겠나이다..."
그는 반항할 여지도 없이 어린 양의 교단으로 끌려오듯 입교했다. 분명 끌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근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건만, 어째 입교하는 과정에서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말을 하며 어린 양의 교단에 발을 들였다. 아마 이 교단에 있는 다른 추종자들에겐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미 다 그 곳에서 같이 겪었던 추종자들이라고 생각하면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입교 과정을 거치고 이 교단의 정식 추종자가 된 이후, 이 사원을 둘러보며 어떤 것들이 있는지 둘러보는 그의 모습. 어린 양도 그의 뒤에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가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기다리듯 뒤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런 어린 양의 시선이 귀찮고 부담스럽고 한심하게 보이는 듯 했지만... 지금의 그에게 어린 양을 뒤엎을 힘이 있을리가. 아무튼 주변을 둘러보며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하게 말을 꺼내는 그였다.
"내 사원에 비하면... 흠."
짧게 툭 털어놓듯 말을 꺼내곤 뒤돌아보며 어린 양과 눈을 마주치는데, 마치 비웃는 듯 하면서도 여전히 한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시선을 보낸다.
"가련한 어린 양아. 네 노동이 가져오는 게 이것 뿐이란 말이냐? 이 곳은 내 사원에 비하면..."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린 양은 무언가 의미가 가득 담긴 듯한 미소를 씨익 짓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아마 어린 양의 머릿 속에는 지금 그에게 무슨 일을 시킬지, 어떤 것을 선물해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동안 부려먹은 댓가를 치르게 할 목적에 행복이 가득한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소름이 돋는 그의 상황이었다.
"...아니다. 내가 한 말들은 다 잊도록. 이제 가거라."
어린 양은 고개를 저으며 가기 싫다는 듯 계속 옆에 붙어있었고,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어린 양의 교단을 둘러본다. 그가 그렇게 교단을 둘러보는 시간에도, 어린 양의 추종자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낮의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으론 그런 추종자들을 보며 내심 생각에 잠기는 그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도 했다.
"벌목소, 광산, 정제소, 밭..."
무엇을 그리 중얼거리냐며 그를 톡톡 건드리는 어린 양의 행동에 그는 그제서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근엄한 척 행동을 취하며 어린 양을 내려보는 말투로 다시 말을 꺼냈다.
"하찮은 네 녀석을 위해 이 곳에서 일하는 추종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쓰럽고 불쌍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어린 양?"
...라고 그가 말했지만 어린 양은 그의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충 몸짓으로 넘기며 손가락으로 밭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침 밭에는 다른 추종자들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밭에서 일을 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어린 양의 행동에 수치스러움을 느끼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마지못해 밭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도 다 결국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려니하며 넘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밭에서 일을 하는 그의 옆에 어느새 다른 추종자가 와서는 밭에서의 일을 도우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추종자도 어린 양을 통해서 밭을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겠지만, 아무튼 지금의 그에겐 자신과 같이 일할 존재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지도. (적어도 이 밭일을 혼자서 해야 되는 건 아니니까.)
"힘들진 않아요? 이런 건 처음이실 것 같은데!"
"...흔해빠진 추종자 주제에..."
"그렇게 있어보이는 척 하셔도 어차피 여기선 다 똑같은 위치에 있게 되는걸요? 오직 지도자님만이 제일 위에 존재할 뿐!"
"하아..."
손을 머리에 짚으며 도저히 이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그의 모습과 그의 옆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마치 격려라도 하듯 어깨를 가볍게 쳐 주곤 다시 밭일을 하는 어린 양의 추종자.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의 이 곳에서의 일이 험난하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다른 일들도 적응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도자님이 갑자기 어떤 일을 시킬지 모르니까요."
"그래, 그렇겠지... 특히나 이런 몸이라면 더더욱 굴려댈테니..."
"귀한 몸이라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거라구요~"
"...네 눈에는, 이게 귀한 대접을 받는 것처럼 보이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그의 눈은 마치 지금이라도 신에 걸맞는 힘을 발휘해서 추종자를 잡아먹을 것 같은 이글거리는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고 추종자도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긴 했는지 살짝 겁먹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결국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다시 고개를 젓는다.
"이런 곳에서 이런 걸로 힘을 빼봤자 좋을 건 없겠지. ...네 일이나 해라."
"그럼요- 아, 저 멀리 지도자님이 오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
추종자의 말대로, 저 멀리서 다른 추종자들을 관리하고 격려해주던 어린 양이 그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고 있으니, 어린 양의 손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무언가를 본 그는 자연스럽게 기겁하며 마치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자, 잠깐... 내 말을..."
어린 양은 그의 말을 (이번에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어떤 목걸이인가 하니, 다름아닌 '달 목걸이'였다.
"..."
어린 양의 웃는 소리와 근처에 있던 추종자의 "지도자님의 선물을 받다니!" 라는 말에 이번에도 그는 또 신경질적으로 발끈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시작부터 잘 참아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겠지만, 이것도 결국은 그의 행동에 대한 대가일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달 목걸이를 받은 이후에도 밤에도 계속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밤에는 잠을 자게 만들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린 양의 선택에 따라 달린 일이겠지만, 어린 양의 반응이 항상 한결같지만은 않다는 점이 그에겐 굉장히 불편한 요소나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추종자들의 말에 의하면 생각보다 친절한 면이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그 추종자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래, 이 망할 어린 양아. 이 선물은 잘 받아들이겠다. 앞으로 네가 어떤 일을 나에게 명령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어린 양. 이번에는 아무래도 밤에 잠을 자기는 글러먹은 듯 하다. 한편으로는 단순히 자신에게 달 목걸이를 걸어준 것이 단순히 밤에도 일을 시키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모양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일을 하는 데에 보내게 될 것이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고.
아무튼, 이제부터는 자신도 어린 양의 추종자가 되어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새로운 노동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게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