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 of the Lamb / 어린 양, 기다리는 자, 바알] 220905 -만약에 1-
"어린 양이여, 조금... 특별한 부탁이 있다."
그의 부탁에 꽤나 놀란 듯 표정을 지으면서도 무엇을 원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는 어린 양. 실제로 어린 양의 입장에서 그가 자신에게 부탁을 할 것이라곤 옛 주교들의 성전에서 어떤 자원을 가져와 달라는 식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추종자를 찾아 달라는 등 다른 추종자들과 비슷한 부탁을 하곤 했었기에 '특별한' 부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는 그런 어린 양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마치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들이 마지막 결전을 했던 세계에서, 이 곳으로 데려오고 싶은 존재가 있다. 네 녀석도, 알고는 있겠지."
그 세계에서 데려오고 싶은 존재라고 하면 당연히 생각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어린 양도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갑자기 그 존재들을 데려오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 이유에 대해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냥, 허전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제 왕관의 힘이라던지, 신에 버금가는 힘이라던지... 그런 건 네 녀석에게나 존재하는 힘이니까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 곳에서 그를 제압한 이후 사실상 완전한 힘을 가지게 된 건 어린 양이었으니까. 그러니 어린 양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꺾어서라도 어린 양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어린 양도 무언가 생각을 하더니 '그들을 전부 데려와서 다시 힘을 키우려는 것 아니냐?' 라는 질문 겸 의심을 꺼냈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도록) 말했다.
실제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뭐... 그의 상태를 생각해본다면 일단 이 어린 양의 교단에서 힘을 키우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절대 그런 게 아니다! 뭐... 어차피 힘을 키운다고 해도 다시 제압할 수 있는 건 어린 양 네 녀석 아니었더냐?"
그의 말에 부정하진 않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어린 양. 아무튼 다른 추종자들은 잠시 대기시키고, 그와 어린 양은 그들이 처음 만났고, 마지막으로 전투를 벌였던 그 세계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언제나 이 관문의 분위기는 고요하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듯한 그런 긴장감을 주곤 했다. 지금이야 뭐 당시의 긴장감보단 조금 덜해지긴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느껴지는 이 고요함은 그와 어린 양에게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함께 그의 세계로 돌아갈 준비를 했고, 어린 양의 추종자들도 다시금 힘을 모아 그들이 그 세계에 방문할 수 있도록 신앙을 쌓아준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그 세계. 흔히 '죽은 자들의 세계' 라고 부르곤 했던 세계. 실제로는 죽은 자든 죽지 않은 자든 이 곳에 올 존재가 있을지는 의문이 드는 세계지만, 아무튼 이 곳으로 돌아오니 여전히 적막이 흐르는, 온통 새하얀 빛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곳은 언제나 참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런 모순적인 기분이 들게 한다.
처음 이 곳에 도달했을 때에는 그에게 대적하기 위한 무기와 저주를 준비했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이유도 없기에 그저 서로가 서로의 만남을 맞이했던 장소로 발걸음을 함께 옮긴다. 이 곳에서는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발걸음이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더 이상 이 곳에서 대적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발걸음은 유독 평소보다 느렸다. 아마 이 공간에 대한 분위기에서 생기는 압박감 때문일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들이 서로 전투를 벌였던 곳에는 아직도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 사이에서는 미처 마지막까지 그를 지키려고 했던 자들의 찢어진 망토와 그 망토에 있었던 동백꽃과 해골같은... 어쩌면 이 '죽은 자들의 세계' 라는 이름에 걸맞는 그런 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 오고 싶었던 그는 그 흔적들을 조심스럽게 주워서 마치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어린 양에게 건네어 주었다.
"붉은 왕관의 힘으로, 그들을 다시 눈뜨게 해 주길 바란다."
어린 양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면서도 곧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사원에서 부활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왕관의 힘을 빌려 이 곳에서의 특별한 의식을 거행했다.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바닥에서 생기는 의식의 진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곤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는 듯 보였다.
분명 망토와 동백꽃 등 그의 흔적이 이 곳에 남아있었건만, 다시 이 곳에서 눈을 뜬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깔끔하고 완벽한, 마치 이 곳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원에서 진행했던 부활식도 그렇게 나이마저 역행할 정도로 완벽하게 부활하긴 했었지만, 이 곳에서도 그렇게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린 양의 입장에서는 조금 놀란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놀란 건 어린 양뿐만이 아니었다.
"...제가, 왜 여기에..."
바알. 그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어린 양과 기다리는 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자는 조심스럽게 바알에게 다가가서는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는 말과 함께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동안 나를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해 주고 싶었다."
보상이라는 말에 여전히 놀란 듯 멈춰있지만, 한편으론 옆에 있는 어린 양과 어린 양의 머리 위에 있는 붉은 왕관을 보며 결국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자는 그에게 패배했다는 걸, 그리고 그에게 패배했기에 지금의 이 조그마한 모습이 되었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그가 어떤 모습이든 자신이 지키려고 했다는 자였다는 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기에 무릎을 꿇으며 감사의 의미를 표하는 듯 보였다.
기다리는 자는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곧 고개를 어린 양에게로 돌리며 말을 꺼낸다.
"물론 나에게 그런 걸 해 주는 건 좋지만, 이제는... 이 어린 양에게 해야겠지."
바알은 어린 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똑같이 어린 양에게도 가볍게 무릎을 꿇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비록 그대에게 패배한 몸이지만, 이 패배자를 용서한다면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결과는 알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어린 양은 붉은 왕관의 힘을 발휘하여 바알을 자신의 교단으로 이동시켰다. 기다리는 자는 그런 바알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군. 물론 그 때의 나는... 좀 반항적이었지만." 이라고 짧게 덧붙이곤 했다. 그리고 저거보다 더 심했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어린 양의 모습과 아무튼 그랬다고 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기다리는 자의 모습은 덤.
그러다 문득 어린 양은 아직 한 명이 더 남아있음을 깨닫고 그 존재도 다시 이 곳으로 이끌어낼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기다리는 자는 "아무리 붉은 왕관의 힘이라고 한들 그런 의식에는 휴식 시간이 필요하지 않느냐." 라며 급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사원에서 추종자를 다시 죽음에서 깨웠을 때에도 붉은 왕관의 힘이 이런 부활에서는 잠시 힘을 멈추곤 했었으니, 충분히 그럴 법한 말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자를 지키던 자 두 명 중에서 한 명을 교단으로 데려오고, 그들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과연 그를 지키던 자들은, 새로운 교단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그건 조금씩 살펴보아야 될 일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