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tL

[Cult of the Lamb / 어린 양, 기다리는 자, 애임] 220909 -만약에 2-

E / P 2022. 9. 9. 02:35

 

 

 


2022.09.05 - [기타] - [Cult of the Lamb / 어린 양, 기다리는 자, 바알] 220905 -만약에 1-


 

 

"...이 곳에서의 생활은 그럭저럭 적응할만 하더냐?"

"네, 지도자님. 생각보다... 피를 볼 일은 없어서 괜찮은 것 같기도 합니다."

"피를 볼 일이 과연 없을까... 뭐, 지금은 때가 아닌 거겠지."

 

 

바알을 그 곳에서 데려온 후 어린 양은 바알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시키기도 했고, 가끔은 기다리는 자와 휴식을 가지라며 특별한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바알은 기다리는 자가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닌 어린 양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에 낯선 기분이 들면서도 어린 양의 명령이나 권유에 따라 움직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기다리는 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테니, 어린 양의 말을 듣는 게 낯선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처음에는 어린 양을 비난하며 전투에 임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한편으로는 바알의 입장에서도 이런 평화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곤 했다. 항상 기다리는 자의 옆에서 누가 그에게 반목을 할 지 긴장 속에서 지켜보는 것보단, 적어도 이런 곳에서 기다리는 자와 함께 부담없는 마음가짐으로 어린 양의 일을 맡아서 하면 되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 (뭐, 언제 갑자기 어린 양이 그를 번제시킬지, 아니면 승천시킬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어린 양에겐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바알이 교단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의식을 준비할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일석이조-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알도 사실 자신이 다시 눈을 뜨고 이 교단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눈치채긴 했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면서 기다리는 자를 통해서 물어보곤 했던 모양이다. 기다리는 자도 그런 바알의 모습을 보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라고 말해주었는데, 기다리는 자도 그 붉은 왕관의 힘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을 테니 시간에 대해서도 어린 양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용했던, 그리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라고나 할까.)

붉은 왕관의 힘이 어느정도 모인 게 느껴졌다. 어린 양도 눈치챘고, 멀리서 항상 어린 양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혼잣말을 꺼내는 기다리는 자도 그런 왕관의 힘을 보며 바알에게 다가가선 "시간이 되었다." 라는 짧은 말과 함께 어린 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바알도 그 말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곤 어린 양과 기다리는 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그들은 함께 모여 다시 그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 양의 추종자들은 최근 관문에서 기도를 하는 일이 많아져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자신들과 함께 어린 양과 이 교단을 성장시킬 새로운 추종자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금 힘을 모아 그들이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돌아온 그들의 세계. 기다리는 자는 이 세계에 올 때마다 무언가 반가운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운 느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이 곳이 곧 자신의 교단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을 테니까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게 마냥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으리라.

 

 

"...역시 언제나 교단보다는 이 곳이 더 익숙하군."

"그야 지도자님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네가 있었지."

 

 

기다리는 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바알. 그리고 어느새 어린 양의 옆에 도착해서는 어린 양이 가지고 있던 해골을 바라보고 있다. 누가봐도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과 함께 기다리는 자를 지켰던 존재의 해골이었으니 그것을 볼 때마다 여러가지 감정이 솟아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어린 양은 이제 시작해야 될 것 같다면서 바알에게 어깨를 으쓱거렸고 바알도 그런 모습을 보며 기다리는 자에게 자신의 옆을 넘겨주었다. 기다리는 자도 그런 모습을 보곤 어린 양에게 신호를 주듯 눈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시작하자꾸나. 어린 양이여."

 

 

어린 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해골을 바닥에 놓아두곤, 붉은 왕관의 힘으로 의식을 열어 죽음 속에서 그를 다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바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신과 함께 맞서 싸웠던, 기다리는 자를 지키던, 달을 상징하던 또다른 존재.

 

 

"...여긴..."

 

 

마치 방금 잠에서 깬 듯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의 눈에 어린 양의 모습이 제일 먼저 보이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싸울 준비가 된 것처럼 경계 태세를 취하곤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꺼냈다.

 

 

"왜 네 녀석이 다시... 이번에야말로 너의 머리를!..."

"그만. 멈춰라."

"...!"

 

 

어린 양의 옆에서 기다리는 자가 한발짝 나서서 그를 저지했고, 그는 그제서야 기다리는 자를 바라보곤 경의를 표하듯 자세를 취했다. 그가 늘 지키고 있던 기다리는 자의 모습과는 다르게 꽤나 작아진 모습이긴 했지만, 작아지건 말건 상관없이 그럼에도 자신이 항상 지키던 그 지도자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모습이었기에 그의 본능으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모습을 보곤 싱긋 웃으며 그를 쓰다듬듯 손을 내밀었다.

 

 

"다시 눈을 뜨게 되어 반갑구나, 애임."

"저야말로, 다시 지도자님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달의 지팡이를 가지며 기다리는 자의 옆에서 그를 수호했던, 애임. 그를 다시 보게 된 기다리는 자는 어린 양의 앞에선 흔히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를 지으며 애임을 둘러본다.

 

 

"나를 지키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구나."

"제가 마지막까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후회는 필요없다.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어쨌거나 나는 살아있으니, 이렇게 다시 너의 눈을 뜨게 해 준 건 그동안 나를 지켜준 것에 대한 나의 보답이라고 생각해라."

 

 

"물론 어린 양의 힘을 빌렸지만." 이라고 조용히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는 모습이었지만, 애임은 그런 중얼거림을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을 다시 기다리는 자와 만나게 해 준 것에 대해 나름의 감사를 보이는 것 같기는 했다. 그의 성격상 절대로 어린 양에게 제대로 표현을 하진 않는 것 같지만.

 

 

"...이번만큼은, 고맙다고 해야 할까."

 

 

기다리는 자, 바알, 애임. 그렇게 셋이 한 자리에 모여있으니 왠지 다시 전투를 해야 될 것 같지만 물론 실제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며 씨익 웃는 어린 양. 그럴 때마다 애임은 약간 무언가 눌리는 게 있는 듯 살짝 다혈질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바알이 옆에서 저지해주고 기다리는 자도 옆에서 "이제 그런 전투와는 놓아줄 때가 되었다." 라며 화를 가라앉히라는 뉘앙스로 말을 꺼냈다. 애임은 여전히 그런 상황이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확실한 건 이제 어린 양과의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라는 점은 애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상황을 다시금 체감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말을 꺼내는 애임.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상태로는 또 싸웠다간 다시 눈을 감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굳이 싸워야 될 이유도 없으니. 아무튼..."

 

 

기다리는 자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곤 애임에게 말을 꺼냈다.

 

 

"망할 양의 교단에서 힘이 되어 줄 또다른 동료가 생겨서 나쁘진 않군."

"언제나 지도자님의 곁에 있겠나이다."

"저도 늘 곁에 있겠습니다. 다시 생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의 교단에서 반목하지는 말라고 나름 경고하듯 말을 꺼냈지만, 그걸 들은체 만체 그들끼리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실 들은 척도 안했다고 하기엔 기다리는 자가 어린 양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긴 했으니 뭐 어떻게든 알아듣긴 한 모양이었지만.

아무튼, 이 곳에서의 할 일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으니 돌아가서 마저 이야기를 꺼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어린 양과 그런 어린 양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기다리는 자. 그리고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기다리는 자의 옆에서 그와 함께하기 시작한 태양과 달.

 

 

"돌아가자꾸나. 태양과 달이여."

"지도자님의 말대로."

"지도자님의 뜻에 따라서."

 

 

문득 어린 양은 생각했다. 그들이 다시 하나로 모였으니 자신의 교단에서 하는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적어도 혼자서 투덜거리며 일하는 것보단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배정시켜서 함께 일을 하게 만들면 나름 괜찮을 테니까. 이렇게 일에 대해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들의 눈에 그런 어린 양의 모습은 딱히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다시 하나로 모여 그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행복과 즐거움에 도달했을 뿐.

 

그렇게 그들은 다시 어린 양의 교단으로 함께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