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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the Lamb / 크로셀] 220930 -쿠그라-

E / P 2022. 9. 30. 00:08

 

 

 


 

 

주인님과 재회한 이후에도, 저는 성전을 탐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을 만났으니 더 이상 다른 소문이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 마련이죠. 지금의 제 목표는 그 이후로 또 어떤 소문이나 이야기가 퍼지고 있는지 들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주인님을 섬기는 추종자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성전 사이에서 떠돌고 있을지.

보통 성전을 탐험할 때에는 꽤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성전에는 이교도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가지고 다니며, 심지어는 그렇게 무기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교단에서 제물로 바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요. 저도 그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단검을 들고 다니긴 하지만 일단은 최대한 그들의 모습을 흉내내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제가 후드를 입고 다닌다는 게 꽤나 큰 도움이 되더군요.

 

아무튼, 이제 성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주인님에게도 미리 말해두었고, 교주님에게도 말해두었으니 혹시라도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부탁할 수 있겠죠.

 

 


 

 

후드를 눌러쓰고 얼굴을 최대한 내리깔며 이교도의 흉내를 내고 돌아다니는 성전. 오늘도 이 성전의 분위기는 한껏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 성전에서도 이교도분들이 저를 보며 같은 이교도 동료인 줄 알고 그렇게 무기를 꺼내지 않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네요. 가끔씩 그런 이교도가 저에게 먼저 다가와서 신원을 확인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적당히 둘러대며 최대한 이교도인 척 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둘러댈 때마다 거짓말이 잘 통하는 이교도만 걸린다는 것도 어쩌면 운이 좋은 일이고요.

이번에는 아쉽게도 그렇게 흥미로운 소문이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최근에 교주님이 이곳저곳 성전을 돌아다니면서 이교도들을 처치한 적이 있어서인지 다들 교주님을 어떻게 대처해야 될 지 작전을 짜는 듯한 모습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런 작전을 얼핏 듣기도 했습니다만, 이걸 교주님에게 알려줘야 할지 아니면 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을지 고민되기도 합니다. (교주님이라면 굳이 이걸 듣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리하실 것 같지만요.)

 

 

그렇게 큰 소득 없이 교단으로 복귀하려고 하던 중, 저 멀리서 어떤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혹시라도 저를 지켜보고 있던 이교도인 건 아닐까 싶어서 도망치듯 복귀할까 싶었지만... 이럴 때마다 생기는 무모한 자신감이라는 건 어쩔 수 없었는지 그 기척이 느껴졌던 곳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고, 그 곳에는 어떤 존재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분에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던 중, 그 분은 제 모습을 보곤 크게 놀라서 다시 도망가려고 했고 저는 그제서야 아직 이교도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저, 저기... 잠시만요...! 저는... 이교도가 아닙니다...!"

 

 

이교도 변장을 풀고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저를 둘러보곤 말을 꺼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대는... 이교도가 아니군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교도처럼 분장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굳이 이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를 만났더라도 똑같은 질문으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겠죠. 늘 있는 익숙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자연스럽게 늘 꺼냈던 대답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건넸습니다.

 

 

"주인님과 관련된 소문이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소문을 듣기 위해- 인가요... 참으로 대담한 분이시군요."

"사실 지금은 주인님과 재회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퍼지는 다른 소문이나 이야기들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또 이렇게 다시 한 번 목숨을 걸어본 셈이죠."

 

 

그렇군요, 라고 조용히 답하면서도 한편으론 신기한 부분이 있는 듯 다시 질문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저도 약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말이죠.

 

 

"보통 소문을 듣는다고 하면 본인의 소문을 듣기 마련인데, 그대는 주인이라는 분의 소문을 듣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니... 신기합니다."

"...하하, 다들 그렇게 반응하곤 하죠."

"아, 그리고 이 주변에는 이교도가 오지 않으니 편히 쉬어도 괜찮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교도를 꽤 많이 만나서 조금 힘이 들었거든요.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정식으로 이 곳을 담당하고 있는 듯한 존재에게 허락도 받았으니 편하게 휴식을 취했습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교도의 앞에서 이교도인 척 하면서 이교도를 대하는 것은 늘 힘들더군요. 한두번도 아니고 이제는 정말 익숙해질 때가 되었는데도, 아무래도 이교도가 한두명이 아니다보니 늘 힘든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먼저 질문을 걸어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괜찮다면, 그대가 섬기는 그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아, 제 주인님이... 워낙 여러 의미로 특별하셔서 소문이 꽤 자주 들렸는데 당신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기다리는 자' 라고 하면 혹시 아실 수도 있을 것 같고..."

 

 

'기다리는 자' 언급에 꽤나 크게 놀라면서 말을 이어가는 분.

 

 

"...! '기다리는 자' 라면 옛 신앙의 4주교에게 봉인당한 그...! 맞습니까?!"

"네, 생각하시는 그 분이 맞습니다."

"이건, 정말 놀랍군요... 다른 주교들처럼 다 죽은 줄 알았건만...!"

 

 

아마 이 분이 아니더라도 다들 똑같은 반응이었을 겁니다. 당장 저도 그런 반응이었으니까요. 다른 주교들처럼 다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할 지 종종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마지막을 생각할 이유가 없어져서 기쁜 마음과 동시에 어떻게 살아있는지 궁금했었으니.

그리고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소문을 쫓아다녔죠.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의 아래에서 명령을 수행하던 하수인이 마지막 운명을 거역하고 그에게 대적했고, 그렇게 대적한 하수인에게 패배하여 힘을 잃고 하수인의 추종자가 되었다' 라고 하더군요."

"그 하수인이라는 건 역시 '어린 양'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목숨을 걸고 다닌 덕분에 이런 이야기도 듣게 되고, 동시에 제 주인님과 재회할 수 있었죠."

"아무래도 듣고 싶은 소식을 들으려면 직접 발벗고 나서는 수 밖에 없겠지요. 연락을 주고받을 수단이 극히 제한되어 있으니..."

"그런 편이죠. 직접 나서는 것이 제일 소식을 얻기에 좋으니..."

 

 

그렇게 말하던 분은 "아, 뭐라도 한 잔 마시겠습니까?" 라며 마실 것을 준비하는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에 "그럼,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목이 마르긴 했었는데 타이밍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이교도를 흉내내기 위해 일부러 다른 목소리를 냈던 적도 있었고,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 또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마실 것을 건네주는 것을 받아들며 한 모금씩 마시고 있을 때 다시 저에게 질문을 건네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꽤나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렇게 그대의 바람을 이루고 난 후의 기분은 어땠습니까? 속이 시원했나요, 아니면 그리운 이를 다시금 만나게 되어 기뻤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직접 그대의 감상을 부담없이 말해도 좋아요."

"기분이라..."

 

 

이렇게 마실 것을 한 모금씩 마시며 생각을 떠올리니 유독 평소보다 더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에게 주인님에 대한 생각은 늘 한결같았는데, 어째서인지 '왜 그렇게 한결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이 마실거리의 효과인가, 라고 조용히 생각하며 제 감상을 조금씩 말해 주었습니다.

 

 

"뭐, 복수같은 걸 바란 건 아니었으니 속이 시원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역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쁜 쪽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말하다가도 깊게 생각한 것도 조심스럽게 꺼내보았습니다.

 

 

"...한편으론, 주인님에게 배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웠기도 했죠. 아무튼 저를 처음으로 구원해주셨던 분이니까요."

 

 

저의 대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실거리를 홀짝이며 마시곤 말을 꺼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본디 자신을 도와준 은인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그가 그대를 배신했더라도 말이지요."

"참 복잡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죠."

"역시 이리 놓고 보니... 감정이란 참으로 복잡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정이란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깊게 생각하니 그 무엇보다도 복잡하고 잔뜩 얽혀있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내가 지금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게 맞는지 복잡해지는 느낌이었으니, 다른 존재에겐 더 복잡하게 느껴질 터.

하지만, 그렇기에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건 이리도 복잡하지만... 이런 감정도 결국은 주인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요?"

"만약 주인님이 없었더라면... 이런 고마움도, 그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저 단순히 시간을 보내며 언제 생을 마감할 지 생각하는 존재에 불과했겠죠."

 

 

제 이야기를 들으며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웃음소리도 가볍게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제 이야기가 그만큼 인상적이고... 평소에는 듣지 못할 그런 이야기여서 나오는 반응이겠죠? 저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으니 오랜만에 더 기분이 편해지는 느낌입니다.

마시던 것을 내려놓고 다시 말을 꺼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대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받았군요. 그러니 쉬이 미워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리움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느새 마시던 것도 다 마셨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 모습을 본 존재는 "다 마셨으면 컵은 아무데나 두어도 괜찮아요." 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조금 높은 곳에 조심스럽게 컵을 올려놓곤 그 존재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런 모습을 보곤 곰곰히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꺼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기다리는 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기도 하는 말.

 

 

"대부분의 존재들은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겠죠. 저도 알고 있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걸 억지로 굽힐 이유도 없죠. 하지만..."

 

 

주인님을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제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저야말로 기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태양이 고개를 숙이고 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이렇게 오래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슬슬 입던 옷을 다시 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더 늦었다간 왠지 주인님이 걱정하실 것 같거든요.

 

 

"아, 벌써 시간이...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그가 걱정하고 있겠네요. 어서 가서 얻은 소식들을 그대의 주인에게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기회가 된다면, 이 곳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급하게 복귀한 탓에 그 존재의 이름같은 것들을 물어보지도 못했고 제 이름을 알려드리지도 못했네요. 그래도, 서로의 모습은 기억하고 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때 알려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챙겨갈지, 고민해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