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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the Lamb / 크로셀] 221004 -마온-

E / P 2022. 10. 4. 03:44

 

 

 


 

 

교단에서 생활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내긴 했지만, 사실상 이 교단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주인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아직 교단의 분위기나 교주님의 추종자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을 많이 하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교주님도 이해해주시고 주인님도 "너무 겁먹지 마라. 다들 똑같은 추종자일 뿐이다." 라며 격려해주시긴 했는데, 덕분에 조금은 다른 추종자분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침 오늘도 교주님께서 시킨 일이 있다며 주인님께서 전달해 주셨으니, 그 일을 하러 움직여야 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슬슬... 다른 추종자분들의 삶을 확인하러 가 볼까요.

 

 

떠돌이 생활은 이제 접은 것이나 다름없긴 해도, 여전히 그 당시의 버릇이나 특성이 아직 깊숙히 남아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른 존재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이야기를 조용히 엿듣거나, 그 존재의 약점을 알아채거나... 그런 식으로 말이죠. 방랑자의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 정보를 이용해 미끼로 삼을 수도 있고, 약점을 이용해 먼저 찌르고 살아남을 수도 있었죠. 떠돌이의 삶이라는 건 늘 그렇게 잔인하고 가혹한 것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다시 교단으로 넘어와서... 조용히 구석이나 건물 뒤편같은 곳을 이용해서 교주님의 추종자들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위험이 잔뜩 내려앉아있는 바깥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이 곳은 전체적으로 평온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추종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를 파악하는 건 꽤나 즐거웠습니다. 바깥의 삭막한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교단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일상적인 분위기나 나름대로 즐겁게 써먹기 좋은 이야기가 많이 들렸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이 교단은 장례식 대신 부활을 통해 추종자를 다시 되살리는 교단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만큼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함께 교단을 운영하고 시간을 보낸 추종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낼 수 없었던 것이겠죠. 아마 그렇게 부활한 추종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요?

이번에 겪은 일은... 그것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교주님의 어떤 추종자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혼자서 시위를 벌이는 것마냥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이후로는 그런 시위는 그만두고 교주님에게 다가가서 무언가 속삭이듯 얘기를 하는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모습을 본 추종자님은 한숨을 쉬며 다시 할 일을 하러 가는 것 같더군요. 뭔가... 엄청 큰 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숨어있던 걸 벗어나 근처에 있는 추종자 무리에 살짝 이야기를 건네보았습니다.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자 추종자 무리에 있던 분들은 "아, 웬일로 먼저 말을 거시네요!" 라며 "질문은 언제든 부담없이 하셔도 괜찮아요~" 라는 반응해 주셨습니다.

 

 

"저기 계시는 저 추종자님에 대해서... 좀 궁금한데... 혹시 알고 계시는 게 있으신지요...?"

 

 

제가 손으로 가리키는 추종자를 본 추종자분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늘상 있는 일이예요~ 그러고보니 크로셀 씨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실 수도 있겠구나...!"

"뭔가... 사연이 있는 분인 것 같네요...?"

"일을 너~무 잘 해서 지도자님에게 낙인이 찍혔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아, 아하..."

 

 

하긴, 상사가 보았을 때 일 잘하는 부하가 눈에 제일 잘 띄기 마련이었죠. 아마 저 분도 그런 상사와 부하 관계가 아닐까... 하고 조용히 생각하고 있던 중, 옆에 있던 다른 추종자분께서 이야기를 대신 이어주셨습니다.

 

 

"아마 지도자님의 첫 추종자인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일을 잘 하는 것도 다 그런 영향이 있을테고..."

"하긴, 처음부터 교단을 함께 시작했던 추종자라면... 다른 추종자 분들보다 더 돋보이기 마련이죠."

"어쩌면... 첫 추종자라는 그 자체가 제일 문제였던 게 아닐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선택이라는 게 자신이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역시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추종자 분과 그 옆에서 거들어주듯 "일하는 게 싫을 뿐이지, 휴식을 가지는 건 아마 그 분도 똑같을 테니까요?" 라며 덧붙이는 말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짧게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고 대답해주곤 그 무리에서 벗어났습니다. 사실 이 정도로도 충분하긴 했지만, 역시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 호기심은 어쩔 수 없이 생기기 마련이네요.

 

 


 

 

그 분과 이야기할 시간을 마련해보기 위해 다시 관찰 모드로 돌입했는데, 근처에 있던 교주님의 추종자 무리에서 "휴식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 라며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곤 주변에 있던 추종자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지도자님에게 한 번 부탁해보자!" 라며 단체로 교주님에게 가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죠. 어쩌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교주님은 사원으로 들어가시더니 꽤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자신이 이끄는 교단의 추종자들을 위해 부탁을 들어준 것이겠죠. 그리고 그 사원에서 나오는 추종자 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평소에 입고 있는 옷이 아닌 휴가를 즐길 법한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교주님께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시고 성일의 의식을 열었던 것입니다. 더더욱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가는군요.

 

 

다들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사이로 조심스럽게 뚫고 지나가서 그 전부터 계속 시선에 두고 있었던 그 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누군가가 다가왔다는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서는 저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저를 탐색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작자는 어디서 굴러다녔길래 꼴이 만신창이냐...' 라고 생각하는 듯 잔뜩 가라앉은 표정이었지만... 사실 이게 그런 생각을 하는 표정인지 아니면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앉아서 피곤한 표정인지 구별은 잘 안 됩니다. 아무튼 그런 표정을 보다가... 제가 먼저 다가온 만큼 인사도 제가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추종자님..."

"아. 안녕하세요, 형제님! 오늘은 평온하신가요?"

"네, 보다시피..."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런저런 생활을 많이 했던(사실 굳이 그런 생활을 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눈치챌 수 있는) 저는 그것이 일종의 가면이라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면을 굳이 벗어내야 될 이유는 없어서 저도 똑같이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이 곳에서... 오래 생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도자님과 처음으로 이 곳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죠. 그래서 늘 저를 부활시키기도 하고..."

"저번에 농성을 벌이거나 귓속말을 하신 걸 본 적이 있... 아니, 그런 적이 있었다고 다른 추종자분께서 알려주셨는데... 사실인가요?"

"제발 좀 편히 쉬게 해 달라고 하긴 했는데...  효과가 있을리가요."

"아아..."

 

 

눈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조금 신기하다는 그런 느낌보다는, 왠지 안쓰럽다는 느낌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목에 달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걸 보니, 밤낮으로 열심히 굴려진 모양이네요. 처음부터 그런 달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자신과 함께했던 첫 추종자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던 교주님은 결국 달 목걸이가 생기자마자 이 추종자 분에게 걸어주었던 거겠죠. 운명이라면... 운명일까요.

그렇게 여러가지 안쓰러운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중, 저를 바라보고 있던 추종자님은 제 생각을 끊어내며 말을 꺼냈습니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고 계시나요?"

"아, 별 건 아니고... 이 곳에서 밤낮없이 노동하는 것 이외에... 다른 고생도 하셨을 것 같아서요..."

"다른 고생이라... 선교활동이나, 악마같은 걸 말씀하신다면 물론이죠."

"역시..."

"아무래도 교단에서 열심히 일한 만큼 바깥에서도 똑같은 모양이라서요. 지도자님께서 항상 만족스럽다고 하실 정도면..."

"보통 그렇게 다녀오면 엄청 피곤할 텐데요."

"이렇게라도 잠깐이나마 잘 수 있으면 다행이죠."

"아, 그런..."

 

 

...순간 이 추종자 분의 목에 걸려있던 달 목걸이의 존재를 잊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교주님과 함께 다녀오던지, 선교활동을 다녀오던지 하는 방식으로 피곤해질 수 있다면 오히려 이 분에게는 좋은 일이겠네요. 조금이나마 잠을 잘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니까요. ...그나저나 보통 이렇게 달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면 본인이 언제 마지막으로 잠들었는지 잊어버리곤 하던데, 아마 이 분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마음 속으로 생각해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저 멀리서 주인님이 부르시는 게 느껴져서 이만 이야기를 줄여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죠. 이 교단은 늘 (그럭저럭)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럼, 잠깐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언제든 찾아오셔도 괜찮아요."

"...아, 알겠...습니다..."

 

 

솔직히 겉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가 말을 걸면 더 피곤해지실 것 같은 몰골이라 '언제든' 찾아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예' 안 찾아올 것은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추가적인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달 목걸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깨달은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