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 of the Lamb (2P AU) / 크로셀, 나린더 (+@)] 221102
신님과 함께하는 삶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교도 무리에서 다른 녀석들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 듬직한 신님과 함께 이곳저곳 다니면서 교단을 돕는 게 더 나은 것 같더라고. 이 곳에 있어도 어쨌거나 위협을 받는 건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단체로 위협받는 것과 적당한 무리의 인원들에게서 위협받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요즘따라 이교도 쪽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것 같고.
사실 이교도 쪽의 힘이 강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야.
만약 신님을 위협하는 이교도 녀석이 나타난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다 베어버리려고 했지만, 이미 가는 길마다 이교도 녀석들이 다 쓰러져 있더라고. 아마 그 심판자 친구가 이 곳에 먼저 와서는 다른 녀석들을 전부 해치운 거겠지. 신님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내려준 권능을 정말 잘 다루고 있다고, 이렇게 잘 다룰 줄 알았다며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확실히 심판자 녀석이 좀 대단하긴 한 것 같아.
뭐, 지나가다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이교도 녀석들은 내가 마무리를 해 주긴 했지. 특히 어떤 녀석은 일부러 쓰러져 있는 척이라도 했던건지 멀쩡하게 일어나서는 신님을 향해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모습이 있었는데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내가 아니지. 바로 무기를 튕겨내고 몸 깊숙히 단검을 찔러넣었거든.
"까불지 말고, 다시 누워계셔." 라는 말과 함께 말이야.
어느정도 이교도의 상황도 파악했고, 슬슬 다른 교단들의 상황은 어떤지 신님과 함께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교단들이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떨어져 있어서 생각보다 둘러보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지. 다행히 아직까지는 교단 쪽도 평화로운 것 같기는 한데 이교도라는 녀석들이 언제 침입할 지 모르는 게 이교도이긴 하니까- 뭐 어쩔 수 없지.
그러고보니 최근에 심판자 친구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교단을 꾸린 것 같더라고? 4주교 녀석들의 자리 말고도 바로 옆에 적당히 빈 공간이 하나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적당히 임시용 교단을 만든 것 같아. 거기에 속해있는 추종자는 다른 4주교의 교단에서 잠깐 파견을 온 추종자도 있고, 아예 심판자 친구가 성전으로 가서 직접 구출해 데려온 추종자도 있었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교단을 만들기도 한다며 흡족해하는 신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랄까.
"새로운 교단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신님에게는 그만큼 자신의 편이 많아지는 거니깐."
"그들에게 대부분의 힘을 바친 지금은, 제 힘보단 그들의 결속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신님의 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 그만큼 신님도 중요하다는 뜻이지."
"크로셀의 눈에는 언제나 저만 비춰지는 것 같군요."
"헤에, 나를 구원해준 게 누군데."
그렇게 교단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참에 우리들도 저 심판자 친구의 교단에 가보는 건 어때? 그동안 한 번도 안 가봤잖아." 라며 잠깐 제안을 해 봤고, 신님도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한 번 확인해보자고 그 교단으로 들어갔지.
심판자의 교단은 아무래도 분위기 자체는 역시 다른 교단이랑 비슷했는데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교단이라서 좀 더 깔끔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분위기가 좀 신기하긴 하네. 아마 다른 교단도 초기에는 이렇게 깔끔한 분위기였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내가 이 교단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사이, 신님은 심판자의 추종자들에게 다가가서는 그들에게 간단한 설교를 하는 것 같았다. 뭐, 심판자를 통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긴 했겠지만 직접 눈앞에서 생명의 권능의 이야기를 듣는 건 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 멀리서 그런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신님도 나를 바라보곤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게 보였고, 그 손짓에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될 지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신님이 오라고 했으니... 가야겠지.
신님의 손짓에 따라 신님의 옆에 머쓱하게 서 있자, 신님은 내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제 옆에 있는 분은, 제 손을 잡고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제가 사랑하는 존재랍니다."
그 말에 심판자의 추종자들은 깜짝 놀랐고,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깜짝 놀랐다.
"그, 그렇게 갑작스럽게 말해도 되는 거냐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머쓱해하고 있기엔 좀 그러니까, 나도 무언가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서 조금씩 말을 꺼내긴 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될 지 모르겠어서 좀 어버버거리긴 했지만.
"뭐... 신님의 말은 사실이야.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
"사실 제가 드리고 있는 도움보다, 이 쪽에서 받고 있는 도움이 더 많지만요."
"뭐라는 거야. 신님 없으면 애초에 줄 수도 없는 도움이었는데. ...아, 그래. 이렇게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대신 소개해드리죠. 제가 사랑하는 이, 크로셀입니다."
"봤지? 이렇게 내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신님이라고. 그러니 너희들도 마음이 읽히지 않게 조심해야 될 거야."
아무튼 조금 급발진한 부분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렇게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바라보니 심판자가 돌아오는 게 보이더라구. 근데 심판자의 상태가 영... 온통 피를 뒤집어쓰곤 이교도 녀석들을 너무 많이 청소하고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여서 걱정이 되는 정도였달까. 누가 옆에서 톡 건드리면 그대로 쓰러질 것처럼.
나 말고도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심판자의 추종자들이 다 한꺼번에 다가가서는 심판자를 부축해주는 모습이었어. 우리들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던 추종자들도 다 그 쪽으로 몰려가서 어쩌다 이 곳에 신님과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상황이 되긴 했지만... 뭐, 일단 이 교단의 주인은 심판자인 어린 양이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
"도대체 얼마나 이교도 녀석들이 많았던 거야...?"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진 것 같군요, 크로셀."
"저럴 줄 알았으면 나도 다시 성전으로 가서 돕는 거였는데."
"어쩔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도 무사히 잘 돌아왔으니,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죠."
"그래야겠지. 지금은- 심판자 녀석의 휴식이 우선일 테니까."
멀리서 심판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곁으로 다가오는 어떤 추종자가 유독 인상깊게 보였다. 겉으로는 애써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심판자의 상태를 보자마자 마치 울분을 토해내는 것처럼 말을 꺼내는 것도 나름 인상깊게 보이기도 했다.
"지도자님... 지도자님은 정말...
...바보예요!?"
겉으로는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심판자를 신경쓰면서 하는 말이었다. 만약 내가 심판자의 추종자였다면 그 말을 하는 추종자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이 심하다고 말렸을 것 같지만. 신님도 그런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듯 눈을 감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존재는, 어린 양의 배우자."
"...에?"
그 말을 듣고서야 나름 저 추종자가 어떤 기분일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지도자이면서 배우자이기도 한 존재가 자신의 힘을 너무 많이 쓰거나, 너무 무리해서 일을 마치고 오면 그만큼 걱정되는 건 누구나 다 공감되는 일일 테니까. 지금 당장의 나에게도 포함되는 일이었다.
"저거 보니까... 가끔 신님도 너무 힘을 과도하게 써서 문제가 될 때가 있어."
"그것이 제가 해야 될 일이자 숙명이니까요."
"물론 그건 아는데... 신님이 힘을 너무 많이 쓰니까 오죽하면 신님이 쓰러져 있을 때마다 맨날 죽은 줄 알았다고..."
"후후, 그만큼 걱정되는 것이죠?"
"걱정이 안 되겠냐고...!"
순간 조금 욱해버린 것 같지만, "그, 갑자기 좀 화를 내버려서 미안..." 이라고 빠르게 사과하고 신님도 그 모습을 보며 "괜찮습니다. 크로셀의 마음은 다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라며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아무튼 심판자와 그 심판자의 배우자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 배우자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심판자의 곁에 있었다.
"지도자님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건 좋지만, 저는...
지도자님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건 좋은 일이지. 그치만 그게 너무 과도해져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정도가 된다면... 글쎄, 그건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미안해지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이런 것에서 '적당한'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인지도 정답이 없으니- 참 미스터리란 말이야.
"헌신이라는 것의 적당한 영역은 어느 정도일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는 일이랍니다."
"그러면 신님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영역이라고 생각해?"
"제 힘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 곧 제가 생각하는 적당한 영역이겠죠."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계속 무리하게 만드는 거잖아."
"크로셀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응? 나? ...글쎄..."
지금까지 이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이참에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
"그때그때 내 마음이 이끌리는 게, 적당한 영역 아닐까 싶은데."
"그러면 그 마음이 크게 이끌릴 때는, 저처럼 무리를 하실 수도 있겠군요. 과연, 그 날이 언제가 될 지 기대됩니다."
"내가 무리하면... 어떻게 하려고?"
"저의 권능으로, 당신을 회복시켜 드려야죠."
"절대로 무리 안 해야겠다. 괜히 신님의 권능을 이런 곳에 쓰게 하기엔 아깝거든."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심판자와 그 심판자의 배우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어느새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계속 그렇게 부축하고 있기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치료소든 사원이든 어디론가 데려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긴, 다친 존재를 계속 그렇게 가만히 두면 큰일나지. 그동안 버티고 있던 심판자도 따지고 보면 대단한 일이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할까.
"...이제 뭐하지?"
"이 곳에서의 일은 끝났으니, 다시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볼까요."
"그럴까. 마침 다른 추종자 녀석들도 다 그 심판자를 따라간 것 같으니."
괜히 소란피우지 않고, 조용히 교단을 빠져나온다.
아마 종종 찾아오게 될 테니... 다음에는 좀 더 발전된 교단의 모습이었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