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셀 → 안다르타] 관록
당신을 처음 만난 이후로,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 속에서 혼란스럽게 뒤섞이기 시작했습니다. 뭐, 정확히는 오래 전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라서 뒤섞이는 기분에 가깝긴 하네요. ...그러고보니 제 오래 전 이야기들을 들려드린 적이 있었던가요? 문득 기억 속에서 떠오르신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 번 더 들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저번에 들으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짧게, 필요한 부분만 얘기하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리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이 많다는 뜻이라서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무리에서 활동을 할 때마다 조금씩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도 결국은 존재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원래 무리라는 것은 늘 한결같지 않고, 어떨 때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해체되기도 하면서, 또 어떨 때에는 그렇게 해체된 무리의 몇몇 인원들이 다시 모여서 재결합을 하기도 하죠. 그런 과정들을 전부 겪는 것은... 생각보다 괴롭고 피곤한 일입니다.
처음에 당신이 '과거엔 무리를 지어서 활동했는데,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다 흩어져버렸다'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내심 제가 겪었던 것들을 다 똑같이 겪은 분이라는 걸 깨닫곤 그 때부터 당신이 하는 이야기들에 꽤나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당신처럼 무리의 대장이었던 건 아니고 그저 무리의 일원 중 한 명일 뿐이었지만, 그런 직위와는 관련없이 '무리에서 활동했다' 라는 공통점 하나는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저는 새로운 목표를 하나 다짐하곤 했었죠.
그건...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이 이끌던 무리를 다시 하나로 재결합하게 만들어 주겠다' 라는 목표였죠.
당연히 그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무작정 당신과 비슷한 (또는 당신과 똑같은 종족인) 하이에나 분들에게 찾아가서 이런 존재를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자신감을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난데없이 처음 보는 존재가 다가와서 이런 존재를 아냐고 다짜고짜 물어본다면 솔직히 저였어도 조금 어이없었을 것 같고, 어쩌면 가끔은 당황스러울 것 같기도 하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게 무리의 일원들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상한 소리나 욕설같은 것도 듣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당신이 무리를 다시 이끌어주는 그 '미래' 하나만을 생각하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물어보기 시작했죠.
다행히 그 이후로는 친절한 분들만 계셔서 이상한 소리를 듣거나 욕설을 듣는 일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신 분들은 전부 지금은 당신의 무리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네요.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하던 말이 다시 생각나곤 합니다. '하이에나는 얍삽하다느니, 시체를 먹는다느니- 주변에서는 그런 편견이 있다' 라고 말이죠.
사실 저도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비슷한 편견같은 것이 없진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얍삽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시체를 먹는다는 점에서는 '하이에나니까 당연한 일 아닐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그리고 당신이 이끌던 무리의 일원들을 만나며 무리의 재결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런 편견들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런 편견들을 만든 존재들을 찾아가서 왜 그런 편견들을 만들었냐며 찾아가서 따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곳에 에너지를 쓰진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그렇게 친절하고, 제 편견을 부숴 준 하이에나 분들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하이에나들 사이에서 무리를 맡은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친절한 분들 속에서 당신이 무리의 대장을 이끌고 있다는 건... 그런 일원들 사이에서도 당신이 더 독보적으로 자격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무리가 다시 재결합되고, 무리의 일원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행복해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저도 행복해지곤 했습니다. 한편으론 저도 언젠가 그렇게 흩어진 일원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그리움에 빠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그리움에 빠져있을 시간이 아니겠죠. 무리가 다시 재결합되었다고 거기서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요. 재결합을 했으니... 그만큼 다시 재정비를 하고,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저도 그런 과정을 열심히 도와드리곤 했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떠오르게 되고...
옛날 생각이라고 하니, 어쩌면 그런 과거가 현재의 저에게 발목을 잡는 경우가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무리가 재결합 된 이후로 당신이 저를 보며 "너도 우리 무리에 들어오지 않을테냐?" 라는 느낌의 말을 꺼냈을 때... 잠깐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던 것처럼요.
다시 재결합된 무리의 모습을 보는 건 즐겁지만, 여전히 저는... 그런 무리에 다시 끼어들 자신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제가 끼어들었다가 다시 이 무리가 흩어지게 되는 건 아닌지, 사실 이런 것들도 단순한 피해망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예전에 생활했던 무리가 이미 흩어졌던 기억이 있었기에 다시 무리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도 왠지... 그런 불안감을 떨쳐내고 다시 자신감을 가지게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조금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이제 슬슬, 눈치챌 수 있지 않나요?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게 해 주고, 저의 과거를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건 바로, 제가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무리의 대장인, 바로 당신입니다.
물론... 갑작스럽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미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동시에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물론 제가 당신에게 큰 걸 원하거나, 엄청 중요한 것을 맡긴다거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냥 평소처럼 무리의 대장을 맡으면서, 가볍게 제가 부탁하는 일을 들어주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무엇을 부탁하는지를 알려 드려야겠죠.
비록 당신의 무리에 정식으로 속하지는 않더라도, 당신을 대장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의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것도 있고... 동시에 저는 떠돌이 생활이 이제는 더 익숙해진 몸이 되어서, 한 곳에만 머무르는 건 아무래도 이제는 어색해진 면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늘 무리를 위해서 헌신하고 도움을 드릴 준비는 되어 있으니, 흔히 말하는 '마음만은 늘 여기에 있다' 느낌으로 당신이 이끄는 무리가 더 번창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뭐... 다른 이유로는... 하이에나의 무리인데 계속 고양이가 끼어들어 있으면 무리 내부에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을진 몰라도 외부에서는 특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테니... 그렇게 남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해서요. 적당히 묻혀 살아가는 게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편해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남들의 관심을 모조리 받으며 다닌다면 그건 조금 불편해지는 부분이 생기긴 하겠죠.)
...제가, 당신을 '대장' 이라로 부르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