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고스] 230325
평소와도 같이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하이에나의 무리. 그러다 누군가가 찾아와서는 하이에나 무리의 대장이 누구냐고 주변을 수소문하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무리의 대장은 그 존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어이. 나를 찾는다고 주변에서 이야기가 자자하더만, 무슨 일이냐?"
"아! 친구가 이 무리의 대장이야?"
"그렇다!"
"별 건 아니고, 편지 하나를 전해주러 왔어!"
"...편지? 나에게 편지를 쓸 녀석이라면..."
"이미 대충 예상은 하고 있나보네! 하지만 가끔은 예상을 깨는 것이 존재하지 마련이지!"
편지를 건네 준 존재는 "아무튼 내 할 일은 여기서 끝이니까~ 난 다른 일을 하러 갈게!" 라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모습을 숨기며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무리의 대장은 "저렇게 빠른 녀석이 이 세상에 있다니..." 라며 잠깐 놀라다가도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바라보다가 봉투를 뜯곤 안에 들어있는 편지지를 펼쳐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하고 있다는 건... 편지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뜻이겠구나. 물론 편지를 전해주는 존재가 혹시라도 먼저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떻게 보장할 수 없으니 아무튼 네가 읽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겠지.
평소에는 크로셀이 편지를 써서 근황을 전달해주는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크로셀이 먼저 잠들어서 근황을 보낼 수가 없었다네. 그래서 내가 대신해서 편지를 통해 간단한 근황이나 나의 이야기들을 전해주려고 하니, 잠깐 들어주겠는가?
...이미 내가 누구인지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편지니까 다시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오래 전 크로셀을 돌봐주고 크로셀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과거 크로셀의 주인 '엘리고스'라고 한다네. 지금은 주인이 아닌 같은 동료 여행자로 다니고 있으니 크로셀을 대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편하게 대해 주게나. (물론 이렇게 편지로 부탁하지 않아도 이미 그대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일세.)
오늘은 저번보다 좀 더 먼 곳까지 왔더니, 크로셀은 피로함이 누적되었는지 바로 잠들었더구나. 사실 최근에 잠을 조금 넘기면서까지 더 많은 정보들을 얻으려고 많이 움직이긴 했었으니, 바로 잠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지. 이 곳도 그럭저럭 많은 것들이 발전한 도시라네. 낮에는 '그렇게까지 발전했나?' 싶을 정도로 의문이 드는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이렇게까지 발전한 도시일 줄이야...'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것들이 발전해있는 모습이었지. 그렇기에 크로셀이 더욱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었다네.
보통은 숲의 공터나 동굴같은 곳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오늘은 도시에 온 겸 적당히 좋은 방을 잡아서 그 곳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네. 마침 이 곳을 거쳐가기로 한 크로셀의 동료를 만난 덕분에, 그 동료를 통해서 그대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라네.
물론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건 이미 도착했다는 뜻이니 대충 적당히 과거의 일로 잘 넘겨주게나.
나와 크로셀의 근황은 그럭저럭 이 정도로 쓰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남은 부분은 나의 이야기들로 채워보려고 하니, 이후의 내용은 궁금하면 읽어주길 바라고, 아니라면 적당히 넘겨도 괜찮다네. 어떤 존재의 과거를 들춰보는 건 누군가는 흥미로워 할 수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으니까 말일세.
그대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이 세계에서 태어난 종족이 아니라네. 다른 세계에서 호기심에 이 세계로 잠깐 발을 들인 것이었지. 쉽게 말하면 "놀러 왔다", 또는 "여행"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 그래서 처음엔 잠깐 이 세계를 구경만 했다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흠, 정확히는 원래 세계가 조금 지긋지긋했던 탓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니 원래 세계로 돌아갈 의지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이 세계에서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다가... 생명체들을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실천한 것이 일종의 '교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이용해서 다른 생명체들을 보살펴주고, 그런 생명체들이 다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지. 그런 과정에서 크로셀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크로셀을 보살펴주다가 다시 홀로서기를 시킨 것이고... 지금은 재회해서 같이 여행을 다니는 그런 것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그대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고 했었지. 나는 단순히 생명체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미래까지도 전부 다 볼 수 있는 존재였으니. 하지만 이 미래라는 것은 생명체들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었기에 꼭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확정지어서 얘기해주진 않는다네. 그래서 내가 미래를 얘기할 때마다 꼭 말끝에 "네 노력에 따라 이 미래는 바뀔 것이니, 가만히 멈춰있진 말게나." 라고 덧붙여주곤 했지.
내가 알려준 미래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말에 다시 열심히 움직이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으니,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러면 이제 이 부분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생길 수도 있지. 대표적으로는 "내가 태어난 곳의 존재들은 다 이런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구나. 일단 간단하게 그 내용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그렇다네." 라고 말할 수 있다네.
정확히 나를 어떤 '종족'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곳에서의 동족들은 똑같이 두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네. 첫 번째는 '미래를 보는 능력',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염동력'이지. 둘 다 내가 다루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으니 이미 능력 자체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이제 이 능력들을 정확히 어떤 곳에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내가 알려줘야겠지.
사실 우리 종족은 이 능력을 이용해서 다른 행성을 정복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종족이었다네. 특히 이 미래를 보는 능력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성을 노려서 염동력을 이용해 그 행성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던지 하는 일들을 해왔으니까.
이렇게 싸움을 원하는 존재가 있다면, 반대로 싸움을 원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를 원하는 존재도 있는 법. 그런 평화를 원하는 존재 중에서 한 명이 바로 나였다네. 그래서 어쩌면 그 세계에 계속 머무르지 않고 이 세계로 넘어온 것도 그런 싸움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
원래 도피라는 것은 처음엔 즐거웠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후회나 미련으로 가득한 법이겠지만, 어째서인지 이건 시간이 지나도 딱히 후회한다던지, 원래 세계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던지 하는 그런 일이 없구나. 어쩌면 '도피'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이게 정말로 원했던 나의 '삶'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런 나의 '삶'을 만들어 준 과정에는 언제나 크로셀과 그대가 늘 함께하고 있을 것이니.
아마 지금도 나의 종족들은 다른 행성들을 힘으로 제압한다던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고... 그러면 이제 '이 세계도 그 종족들에 의해서 제압당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왜냐하면 우리 종족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니까. 그 규칙이라는 것은 바로...
'자신의 종족이 머무르고 있는 행성에 다른 존재가 난입하지 않는다' 라는 법칙이 있다네. 처음부터 무리를 만들어서 그 행성에 침입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나중에 추가로 다른 존재가 그 행성에 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힘으로 제압하는 종족이라고 말했는데 정작 이렇게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고, 사실 나도 처음 이 규칙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의문으로 가득했었다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럭저럭 납득은 되지만 여전히 참 의아하긴 하더구나.
누군가가 난입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미래와는 어긋난' 그런 상황인 것이고... 즉 자신들의 힘을 증명하지 못한 셈이 되는 것이니 일종의 '수치심'으로 남아서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듣기는 했네만... 뭐, 아무튼 그렇다네. 더 자세한 것은 말해봤자 잡설에 가까워질 뿐이겠구나. 아무튼 그런 규칙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면 나쁠 건 없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은가?
원래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적어보고 싶었지만... 편지지가 나의 내용들을 다 받아주질 못하는군. 편지지가 작은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그만큼 충분히 많은 얘기들을 적었다는 뜻이 되겠지. 혹시라도 더 궁금한 것이 생긴다면 나중에 내가 무리에 방문했을 때 자유롭게 물어보게나.
그럼, 슬슬 내용을 줄이도록 하겠네.
그대의 부하, 엘리고스.
무리의 대장은 편지를 유심히 읽으며 흥미로운 듯 큭큭 웃었다.
"편지에 이런 내용들 막 적어뒀다가 나 말고 다른 녀석이 보면 어쩌려고~"
물론 말은 이렇게 하긴 했지만 무리의 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엘리고스라면 충분히 다 커버하고도 남을'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아무튼 편지를 다시 접어서 봉투에 넣곤 어딘가에 고이 보관해 두고, 주변을 둘러보며 혼자서 잠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어떤 내용을 전해줘야 잘 전해줬다고 소문이 날까~"
아무래도 여러가지로 즐거운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