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 of the Lamb / 크로셀 & 크툴] 230426
성전들은 각 성전의 분위기에 걸맞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앵커딥은 유독 더 특별하고 신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늘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었죠. 특히 다른 성전들의 자원들보다도 더 귀중한 자원인 '수정'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소문으로는 교단을 이끌고 있는 교주님께서도 이 수정 조각이 늘 부족하셔서 꾸준히 앵커딥을 방문해서 수정을 수집해온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실제로도 앵커딥을 탐험하고 있으면 교주님께서 이교도를 청소하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합니다.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탐험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저에겐 좋은 일이죠.)
그렇게 교주님께서 늘 수정 조각의 부족함을 느끼고 계시니, 이번에는 제가 직접 먼저 나서서 수정 조각들을 적당히 모아서 교주님에게도 교단 운영을 위한 목적으로 바치고, 나머지 조각들은 적당히 다듬어서 제가 섬기는 주인님에게 바칠 예정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님께서도 예전에는 이 수정 조각을 모아서 과거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교주님에게 해 주었다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도 이렇게 수정 조각을 선물로 드리면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둘 차근차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앵커딥은 유독 바다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물고기와 관련된 것들이 길을 방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잡아도 되는가, 싶기도 하지만... 결국 앞길을 막는다면 다 해치울 수 밖에 없겠죠. 특히 이 곳에서는 스스로 몸을 폭발시키는 형식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존재도 휘말리게 만드는 자폭 형식의 생물들이 많았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아주 과거에 저 폭발에 한 번 휘말린 적이 있었는데... 따끔하면서도 꽤나 아팠거든요.
이런저런 따끔한 일을 겪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 곳의 주교를 생각하면... 사실 예전에는 정말로 물고기와 관련된 존재들만 살아갈 수 있었던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다가 모종의 사유로 인해서 물은 다 제거되고, 대신 바다에 존재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도록 일종의 작업같은 것을 거친 셈이랄까요? 물론 이건 스스로의 추측이긴 하니까 대충 가볍게 넘기셔도 됩니다. 아무튼... 이 앵커딥의 일렁거리는 물결같은 분위기가 참 신기하고,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 그런 매력이 느껴집니다.
근처의 방해물들을 적당히 제거하고 근처의 수정들을 조심스럽게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 수정 조각들은 볼 때마다 참 이 곳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수정을 이루고 있는 성분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앵커딥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자원일까요? 앵커딥에서는 이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며 다른 성전들과 교류를 했을까요? 궁금한 것이 정말 많지만... 이런 의문을 바로 해소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오히려 저를 즐겁게 만듭니다.
의문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냐고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 바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끊임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하다가 그 호기심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과 쾌감이 존재하는 법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뭔가 혼자서 이것저것 이런 잡담을 하면서 자원을 모으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아무튼 이 정도면 적당히 많이 챙긴 것 같으니 교단으로 복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마음같아선 자원을 더 많이 챙기고 싶지만, 너무 많이 챙기게 되면 제가 무기를 휘둘러야 할 때 불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랍니다. 무기를 제대로 휘두를 수 있어야 교단까지 무사히 복귀할 수 있을테니... 욕심을 버리고 목숨을 건지는 셈입니다.
그렇게 조용히 복귀하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이 조금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물론 이 곳도 결국 성전이니만큼 몬스터뿐만 아니라 이교도라던지, 그런 존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늘 항상 머릿속에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인기척을 느끼게 되면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경계부터 하게 되더군요. 아무튼 주변을 둘러보며 누가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재빠르게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니, 저 멀리서 닻을 든 어떤 존재가 저를 보며 경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모습을 보아하니 이 곳에서 살아오는 존재였던 것 같고, 저는 어쨌거나 이 곳에서는 외부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저를 보며 경계하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진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느꼈죠.
"...일단 저는 당신을 공격할 생각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경계심을 낮출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보았습니다만 다행히 효과가 있긴 했는지 무기를 완전히 거두진 않았지만 적당히 바닥에 꽂아두듯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경계심을 완전히 거두진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무기를 휘두를 정도로 높지도 않다' 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혼자서의 판단일 뿐이었지만, 아마 저를 마주하고 있는 분께서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 분께서도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계시는 거겠죠.
"당신도...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계시는군요."
최근 성전의 주교들이 하나둘 부활하고 있다는 소문은 어디선가 들리고 있지만, 아직 저는 그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은 그렇게 자신의 지도자를 잃은 존재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되는 존재인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렇기에 그 분들의 마음을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저는 다시 주인님을 만나서 섬기고 있다지만, 그렇게 주인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며 생존에만 집중해야 되었던 그런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공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저를 바라보고 있던 분께서도 제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씩 말을 꺼냈습니다.
"그쪽 교단은 번창하고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막강한 힘을 가진 교주가 있으니 그럴 법도 한데..."
아무래도 현재 가장 유명한 교단은 어린 양 교주님의 교단일 것이고, 보통의 존재들은 그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니 저도 그 교단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꺼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존재에게 저 말을 꺼내면 다들 그렇다고 할 정도로 지금 교주님의 교단은 상당히 번창한 상태이긴 하니 그렇게 판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혀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습니다.
"번창이라... 일단은 그렇죠.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어둠은 어느 곳에서나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 교주님의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는 교주님보단 주인님을 더 섬기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교주님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 교단에서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신 분' 또는 '스스로의 힘을 이용해 저를 비롯한 추종자들을 도와주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죠. 물론 그렇게 '도와주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교단의 발전과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희생시키는' 부분도 존재했기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저는 그 부분을 '숨겨진 어둠' 이라고 생각하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상대분께서도 제가 온전히 어린 양을 섬기고 있다는 걸 어느정도 눈치채긴 했는지 방금 전보다 약간은 더 경계심이 약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그럭저럭 공감대를 형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대답에 만족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공격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더 꺼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재미있는 대답이군요. 적어도 당신은, 그 교주를 온전히 섬기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따지면 그런 편이죠. 저에겐 또다른 주인님이 있으니."
"그렇군요. ...혹시 괜찮다면, 저희들이 살아가고 있는 캠프로 안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야말로 감사한 일이죠."
닻을 든 존재는 저에게 이리로 오라며 손짓하였고, 저는 그 손짓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겨서 도착한 곳은, 꽤나 허름하지만 그럼에도 있을 것들은 웬만해선 다 존재하는 일종의 캠프같은 곳이었습니다. 사실 주인을 잃은 성전에서 이렇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끝까지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굉장한 일이었기에,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리기도 했죠.
"저의 주인님께서... 앵커딥에 대해 '끈질김'이자 '과거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 분위기를, 이 곳에서 느낄 수 있군요."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확실히 저희들은... 이 곳에서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을 텐데도, 나긋하게 받아주는 모습에 왠지 감사를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캠프를 계속해서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서로에 대한 소개를 했는지 잠깐 생각을 했고, 애초에 처음부터 경계하며 만났던 사이인데 서로를 소개할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살짝 고개를 돌려 먼저 소개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처음엔 경계하느라 제 소개를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죽음을 섬기는 자... '크로셀'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재미있게 표현하시는군요. '크툴'이라고 부르시길."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툴님."
서로에 대한 간단한 인사도 했고... 슬슬 시간이 늦어져서 이제는 교단으로 복귀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마 더 늦어졌다간, 주인님의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겠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찾아오겠습니다."
"언제든 부담없이 찾아오셔도 됩니다. 물론 다른 분을 동행하는 건 조금 무리겠지만요."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은 혼자 성전을 다니는 편이니."
여러모로 앵커딥을 자주 방문하게 될 이유가 생겨서, 내심 기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