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 of the Lamb / 크로셀 & 알메르] 230507
"요즘 앵커딥을 자주 가는 것 같구나. 덕분에 망할 양이 수정 조각이 부족하지 않다고 해서 좋기는 하다만..."
"이전부터 앵커딥의 분위기를 좋아했던지라,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이 모아볼까 합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 크로셀이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
크툴님과 라켄님을 만난 이후로 요즘 성전을 탐험하러 갈 때 앵커딥 이외의 장소로는 거의 찾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앵커딥만 탐험한다고 해도 다른 성전들을 탐험하고 청소해 줄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앵커딥에 찾아가도 문제없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아무튼 오늘도 앵커딥에 방문해서 크툴님과 라켄님의 캠프에 잠깐 방문해 볼 예정입니다. 저번에 마저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나눠보고 말이죠.
언제나 이 앵커딥의 분위기는 신비로우면서도, 고요하며...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잔뜩 빠져들어 있는 틈을 탄 날카롭고 재빠른 적군들도 있으니... 이런 게 일종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이 성전에 대한 분위기는 이전에도 잔뜩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크툴님과 라켄님의 캠프에 번갈아서 방문하도록 합시다.
먼저 크툴님의 캠프에 왔을 때에는, 여전히 모두 한결같은 분위기 속에서 앵커딥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섬겼던 주인을 위해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분들도 계속해서 앵커딥에만 머무를 수는 없을텐데, 만약 다른 곳으로 가야 될 때에는 어떤 식으로 가게 될까요? 아마 일부는 이 캠프에 남아서 캠프를 지키고, 나머지 인원들이 단체로 합심을 하거나 아니면 서로 흩어져서 다른 성전에 잠깐 들어가서 자원을 챙겨오는 식일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번에도 서로 장소를 정해서 흩어져 앵커딥을 순찰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캠프에 갈 예정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군요."
"아직은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늘 조심하세요."
"하하, 오늘따라 사방에서 제 걱정을 많이 받는군요. 걱정 마십시오."
"그럼... 잘 다녀오시길."
"무사히 다시 만나죠."
오늘도 다시 도착하게 된 라켄님의 캠프. 처음 이 캠프에 왔을 때보단 조금 음산한 분위기라던지, 그런 게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니면 제가 어느새 이 캠프의 그런 분위기에 적응한 것일수도 있겠죠. 일단 라켄님이 저를 보면서 대놓고 악의를 보인 적은 없었으니... 그렇기에 이 캠프에 적응하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라켄님이 보이지 않는군요. 잠깐 다른 곳에 찾아간 것 같기도 해서... 잠깐 이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냄과 동시에 라켄님을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만약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라켄님이 보이지 않으면 크툴님의 캠프로 돌아가서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고 교주님의 교단으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어떤 쪽이든 시간을 보낼 수는 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라켄님을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막 실망한다거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흠, 다른 일이 있는 걸까요? 제가 생각했던 시간이 되어도 라켄님이 보이지 않아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이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보단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제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마다 캠프의 다른 분들께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말이죠.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어딘가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분명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진 이 시선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느끼는 이 시선에 왠지 미묘한 기분이 느껴져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느껴지는 이 분위기와 시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죠. 이런 곳에서 이런 시선을 느끼게 되다니, 라며.
잠깐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심히 저를 바라보는 존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계속 눈싸움을 하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 제가 먼저 다가가도록 하죠.
제가 다가갔음에도 여전히 저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무언가 낯설지 않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잠깐, 당신은..."
"... ... 기억하시는군요."
이 목소리... 분명히 기억납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인가? 싶을테니, 잠깐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시간이 되겠군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교단에 머무르고 있던 추종자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 교단에 온 것인진 모르겠지만...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듯 두리번거리면서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던 추종자였죠. 그리고 그 분께서는 달 목걸이를 받았기 때문에 밤에도 잠을 취하지 않고 일을 한다던지,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던지- 그런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달 목걸이와 관련없이 그저 오랜 떠돌이 생활 때문에 종종 잠이 오지 않은 적이 많았기에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죠.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런데 이 기도의 대상이 절대로 '교주님'이 아니었던 겁니다. 마치 다른 누군가를 이미 섬기고 있는 것처럼...
물론 이걸 단순히 특이하다고 넘기기엔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기엔 좀 이상하지 않나?' 라고 판단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이 교단에서 오히려 교주님이 아닌 제 주인님인 나린더를 섬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둘 다 교단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분께서 기도를 올리며 섬기는 대상은 이 교단에 머무르고 있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였냐면...
'칼라마르' 님이었죠. 바로 앵커딥을 이끌었던 그 주교 말입니다.
사실 한편으론 외형에서부터 앵커딥에서 활동했을 것이라는 느낌은 많이 들긴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런 생각들만을 가진 채 제 바쁜 성전 탐험의 삶을 지내느라 어느새 기억에서 잊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추종자들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다가 그 추종자는 어느새 모습이 사라진 채 교단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더군요.
나중에 교주님이나 주인님에게 물어보니 본인들도 잘 모르겠다며 그런 얘기를 나누긴 했습니다만... 교주님에겐 굳이 그렇게 추종자 하나를 다시 찾으러 갈 이유가 없을 정도로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추종자가 많았고, 주인님에겐 굳이 관심도 없는 추종자였으니... 저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그 분을 이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사실 약간은 예상했습니다만..."
"..."
"뭐, 더 파고들려고 하진 않겠습니다. 여러모로 교단에 왔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겠죠."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여전히 저를 바라보는 걸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러모로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진 않죠. 늘 말하는 것이지만 저는 이 곳에선 그저 한 명의 외부인일 뿐이니 그런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끼죠. 이렇게 제가 먼저 꺼내는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저를 위한 이 곳에서의 호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곳의 지도자나 다름없는 라켄 님을 이미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 그렇군요."
"그렇기에 당신에게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섬기는 주인이 다시 부활하길 바라는 편입니까?"
"..."
이 분께서는 잠깐 말이 없다가, 조금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낸 뒤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 저는, 주인님이 부활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 부활하길 원하지 않는 존재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치 않아서, 아니면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이 곳에 머무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캠프에서 머무르고 있던간에, 주인을 위한 맹세를 하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기도 했기에.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인에 대한 신념은 잃지 않고 있군요."
"... 주인님을 통해 받은 은혜를 계속해서 갚기 위하여."
"은혜라..."
이 분과 저에겐 여러모로 공통점이 없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일단 적어도 주인에게 무언가 은혜를 받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점이 되니까요.
"... 저에겐, 형제가 있습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었죠. 그런 상황 속에서, 주인님을 만났고... ...주인님께서는, 형제의 불치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좋은 일이네요. 계속해서 신념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아니, 오히려 당연히 그래야겠죠."
"... ... 이해해 주시는군요. 그렇기에, 저는... ...오직 주인님을 위해, 주인님만을 바라봅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형제분께서는 현재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
대답을 해 주시지 않는 건 또다른 어떤 일이 생긴 걸까요? 아니면 그저 아직까진 그것까지 말을 해 줄 수 없는 사이인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뒤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오늘 제대로 처음 만난 존재에게 온갖 이야기들을 다 꺼내줄 존재는 별로 존재하지 않겠죠.
"억지로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 건 아니니,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넘기셔도 됩니다."
"... ... 너그러운 분이시군요."
"그래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존재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 죽음을 따르는 존재들은, 다 냉정한 줄로만 알았는데."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하기에."
"... 그렇겠죠. 아무래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시간이 야속하게 빠르게 흐르는 듯 이런 사이를 방해하곤 합니다. 먼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 때 나머지 이야기들을 꺼내봅시다."
"... 무사히 돌아가시길."
"언제나 주인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당신에게도."
여러모로 신비하면서도, 주인에 대한 신념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이, 저에겐 늘 즐거운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