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셀 (w. 에코, 단탈리온)] 230619
기록자와 목격자.
그들은 항상 모든 것을 함께하며 누군가에겐 한정된, 또다른 누군가에겐 영원할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어느 날.
목격자는 기록자의 개인적인 임무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기록자는 그런 목격자의 소원을 들은 듯 무사히 개인적인 임무를 완료하고 교단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교단으로 복귀하자마자 바로 교단 어딘가로 모습을 숨겼는데, 그 모습을 본 목격자는 그 기록자와 가까운 다른 청소부에게 기록자의 위치를 물어보곤 했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오, 로셀 형이랑 사귀는 친구잖아! 무슨 일인데?"
"혹시... 크로셀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계시는지, 싶어서요."
"음?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
"잠깐 임무를 완료했다는 걸 알리러 간다면서 자리를 비웠는데... 이후로 시간이 지났는데도 복귀를 하지 않아서..."
"아하- 그렇구나? 그렇다면 대충 로셀 형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네!"
"정말인가요? 그럼...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야~"
목격자는 청소부의 안내를 따라, 교단의 꽤나 구석진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교단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추종자라고 하더라도 쉽게 드나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런 공간까지 들어가는 청소부의 모습을 보면서 목격자는 약간의 의문을 가지면서도, 기록자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런 공간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청소부의 뒤를 밟으며 도착한 곳에는, 저 멀리 기록자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목격자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기록자에게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라도 그런 소리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근처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관찰했다.
한편으론 청소부에게 저 모습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했고.
"지금 크로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 아마도 기도하고 있는 걸거야."
"기도라고 하면... 역시 자신의 주인님에게 하는 것일까요."
"그런 셈이지! 오, 마침 또 새로운 기도를 하려는 것 같은데!"
"...!"
기록자의 뒤를 따라온 목격자와 청소부는, 조용히 기록자의 기도를 듣는다.
나의 죽음이시여,
그동안 죽음을 믿고 섬기며 약간의 사랑을 베풀었던 저는,
이제 새로운 목격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그동안 죽음에게 드렸던 사랑을 통해서,
저의 새로운 목격에게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저의 새로운 목격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
제가 주인님에게 영원히 섬길 것임을 약속했듯이,
부디 새로운 목격과도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죽음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언젠가는 생을 마감하게 될 필멸자의 삶이지만,
부디 죽음께서 그 필멸자의 삶을 더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죽음이시여,
저의 새로운 사랑에게는, 다양한 눈이자 인격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 사랑의 다양한 인격마저도... 전부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가 가진, 전쟁으로 인한 분노와 복수도...
그가 가진,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불안정도...
그가 가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행복했던 과거도...
그가 가진, 변화를 거부하는 차가움도...
전부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물론, 그 인격들이 저를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분노와 복수는, 저에게 물리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을 것이고...
불안정은, 저에게도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행복했던 과거는, 제 자신마저도 과거에 묶이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저를 새로운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전부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 분노와 복수를, 누군가를 위한 헌신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불안정을, 새롭게 생각을 정리하는 안정으로 바꿀 수 있다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과거를 발판으로 삼게 만들어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바꿀 수 있다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차갑게 대하지 않도록 바꿀 수 있다면...
저는, 이 필멸자로서의 모든 삶을 그들에게 바칠 수 있습니다.
부디 죽음께서 저의 이런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주시고,
제 마음이 꺾이려고 할 때마다 죽음께서 저를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제가 저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날에,
죽음께서 저를 인도하고 영원히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저의 사랑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것으로, 오늘의 기도를 마치겠습니다.
나의 죽음이시여,
부디... 저를 지켜주는 그림자가 되어 주시고,
제가 저의 사랑을 위한 그림자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기록자의 기도를 들은 목격자와 청소부.
목격자는 그런 기도를 듣곤 청소부에게 간단한 질문을 꺼냈다.
"기도의 내용은... 매일 달라지나요?"
"아마 그랬던 것 같아! 저번에 우연히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 내용은 그 때의 내용이랑 달랐거든."
"그렇군요... 매일마다 기도할 내용을 생각하고 오는 것인지, 아니면 이 곳에서 즉석으로 기도의 내용을 만드는 것일지...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그렇게 목격자와 청소부가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기록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거주지로 돌아가려고 하던 중 목격자와 청소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
순간 조금 당황한 기록자였지만, 싱긋 웃으면서 목격자와 청소부를 맞이한다.
"이 곳에서... 저의 기도를 듣고 계셨군요."
약간 쑥스러워하는 듯 얼굴을 긁적거렸지만, 그래도 기록자는 늘 진심이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저는 가끔씩 이 곳에서 저의 주인님을 위해 기도를 올리곤 합니다.
물론 주인님께서 교단에 계시는데 주인님 앞에서 기도를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항상 주인님이 교단의 고정된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주인님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기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저만의 장소에서 이렇게 기도를 올리곤 한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목격자와 청소부를 보며 다시 한 번 싱긋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