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터] 과거의 사진집
딱히 제 모습을 남기는 것이 취미였던 건 아니지만,
제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주술이나 능력같은 게 있으니 호기심에 자주 사용하다가 이렇게 꽤 많이 남아있더라구요.
덕분에 기사님에게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과거의 저에게 참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 주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이번에는, 제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당시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보려고 해요.
이 모습들은- 제가 원래의 세계에서도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예요.
눈을 뜬 곳은 묘지같은 곳이었는데- 그렇다는 건 저는 이미 한 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새로운 삶을 받게 된 덕분에 지금의 기사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좋은 일이겠지요! 헤헤.
아무튼 눈을 떴을 때 딱히 장비라고 할 것도 없었던지라-
근처에 나뒹굴고 있었던 투구, 장갑, 검, 방패같은 것들을 주섬주섬 주워서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확인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답니다.
정말 필요한 장비들만 챙기긴 했지만, 지금이랑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처음부터 이랬기에 다른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몸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눈을 뜨자마자 움직였던 시기라서, 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던 시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던 것이 아무래도 역시 가지고 있던 장비가 별로 없어서였던 것도 나름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덕분에 지금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죠!
처음의 모습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나요?
혹시 투구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바로 드셨나요?
정답이랍니다!
사실 투구가 바뀐 것을 빼면 방금 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나름 스스로 노력해서 새로운 투구를 얻었다는 것을 기념하고 싶어서 제 모습을 남겨두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장비 하나가 바뀐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주변에 있는 장비를 주운 것과 제 실력으로 새로운 투구를 얻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큰 차이를 기념하는 느낌으로 남겨두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러면서도 투구만 바뀌었지 다른 부분은 한결같은 것이 역시 제 모습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역시 저는 아무것도 입지 않을 때가 가장 멋있지 않나요? 헤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던 자세들을 하나로 모아보았어요.
먼저 첫 번째의 경우에는, 일종의 의례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세계에서 누군가와 맞붙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분께서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저런 자세를 취하곤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지라, 제가 그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로는 저 자세를 똑같이 따라하며 다니기 시작했죠.
의외로 알아주는 분이 없진 않았던 자세라서, 배워두길 잘했다는 자세라는 생각이 든달까요~
두 번째의 경우에는, 누군가를 무사히 구조해 주었을 때 기쁜 마음에 하늘 위로 잔뜩 만세를 해버린 모습이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누군가를 구해주면 기분이 엄청 좋아지는지라- 저렇게 잔뜩 신나버릴 때가 많았지요.
지금도 기사님을 위험에서 구해드릴 때마다 내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저런 자세를 취하곤 한답니다.
뭐- 기사님 눈에는 나름 귀엽게 보일려나요? 히히.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경우에는, 다시금 의지를 다질 때 취하는 자세였어요.
아직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일이 많았던 시기였어서-
여전히 무너지면 안 된다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의지를 잔뜩 다지곤 했죠.
가끔씩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에도 저렇게 의지를 다지며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 의지와 끈기는 기사님이 있는 이 세계로 옮겨졌을 때에도 크나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도저히 무엇을 해야될 지 모르겠을 때-
저렇게 의지를 다지면서 조금씩 주변을 알아보고, 그렇게 저는 용기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덕분에 이 세계에서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네요~
그래도 가끔은- 피곤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땐,
이렇게 아예 대자로 뻗어버려서 하늘이나 멍하니 바라보는 일도 많았답니다.
은근히 이렇게 뻗어있으면 꽤나 편하고 좋더라구요?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니까 딱히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그래서 이렇게 대자로 뻗어버리는 것이 지금 이 세계에서도 나름 버릇이 된 것 같기도 해요.
딱히 챙겨입는 장비가 없다보니,
땅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라던지- 그런 걸 느끼는 것도 꽤나 재미있고 말이죠.
마치 자연과 하나되어가는 그런 기분이 꽤나 좋으니까, 나중에 기사님도 한번 똑같이 해보는 건 어때요? 헤헷!
아마 이 시기쯤부턴, 기사님도 조금은 익숙한 모습일 수도 있겠네요!
다른 건 몰라도- 투구만큼은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도 유지되었으니까요.
뭐랄까- 그동안 아무것도 입지 않고 다녔던지라, 가끔은 그런 호기심이 들기도 했지요.
"방어구를 조금이나마 착용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라는 호기심이랄까요?
그래서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름 마음에 들었던 장비들을 간단하게 입어보았던 시기랍니다.
그런 호기심을 해결하고 나온 결론은-
"나름 방어구도 잘 입으면 나쁘지 않다-" 라는 결론이었긴 한데요.
그래도 저는 역시 아무것도 입지 않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기도 했죠.
아마 저 시기 이후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서, 저는 장비를 다시 벗었던 걸로 기억하긴 합니다.
물론 투구는 한결같이 똑같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저를 헷갈려하거나 그러진 않아서 다행이었던 것도 기억나고요.
오히려 장비를 벗으니까 그게 더 제 모습같다며 익숙해하는 분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히히-
아무튼! 장비 입은 제 모습도 나쁘진 않죠?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는 다시 맨몸의 모습이자, 이 세계로 떨어졌을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답니다~
기사님에게도 익숙하고, 저에게도 제일 익숙하면서 가벼운 차림이라서 활동하기 좋았지요.
끝까지 투구는 벗지 않고 고집했던 이유는,
일단 투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이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동시에 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어요.
어차피 얼굴 보여줘서 뭐하겠어요~
얼굴을 보는 것보다 이렇게 투구를 보는 게 더 기억에 남기 쉬울텐데~
기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얼굴을 보는 것보다- 이렇게 투구를 보는 게 더 기억에 확실하게 남을 것 같지 않나요!?
여담이지만 이 시기는 나름대로 그 당시의 세계를 좀 많이 둘러본 상태였어서,
다시 처음 눈 떴던 곳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어도 딱히 막히던 일이 없었던 시기였어요.
나름대로 기억에 남아있는 경험들이 있으니까,
딱히 막히는 일 없이 다시 새로운 곳까지 나아가는 발걸음이 처음보다 더 가벼웠달까요?
그렇게 새로운 곳까지 발걸음을 나아가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세계로 떨어지긴 했는데...
이 곳도 나름대로 새로운 곳이라면 새로운 곳이니까 딱히 싫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 세계에서 기사님을 만나게 된 덕분에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으음- 제가 가지고 있는 제 모습은 이것 정도가 끝이네요!
얼마 되진 않지만, 기사님께서도 분명 즐거운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