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221006 -샤무라-
2022.09.26 - [CotL] - [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220926 -샤무라-
죽음은 더 이상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지 않은 대가는 그 무엇보다도 큰 흉터로 남았다.
사실 그렇게 큰 흉터로 남으리라곤, 죽음마저도 예상하지 못한 것일지도.
님 그리운 세상 그 어딘가에 남은 연 한 조각 있으려나
꽃가지 꺾어다 고이 모아둔 향기도 지워져가네
후회와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릿해져 가는구나.
모든 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깨달아야 되는 것인가.
하지만 이 흐릿해지는 기억 어딘가에, 영원히 남아있을 기억의 조각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일까.
샤무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대는, 내가 이렇게 계속해서 그대를 생각하기를 원하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한 곳을 향하는데
어찌 잡을 수 있나
같은 하늘,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한 곳을 향해 바라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구나.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았기에 따라잡을 수 없는 무언가도 존재한다는 걸 깨달아버리고 만 나는, 그렇게 바라보고 있던 길을 벗어나 나 혼자만의 길을 만들어가려고 했다.
처음에는 성공적인 줄 알았으나, 마지막은... 나 혼자만이 그런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나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사실은 모두가 다 제각각의 길을 걷고 있던 것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너무 늦은 일이었다. 모두가 다 하나둘 쓰러질 때에서야 깨닫게 된 일이었으니.
...이것도 결국은 이미 지나버린 일, 다시 바로잡을 수 없게 된 헝클어진 길만이 눈 앞에 보일 지어니.
흐르는 냇물 그 위로 조각배를 띄워보네요
이 마음 고이 접어 배에 담아 그대 곁으로
끝없는 물결 그 위로 그대를 흘려보네요
영원 그대에게 닿도록
끊임없이 흐르는 이 물결처럼, 기억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렇다는 건 늘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마치 돌멩이를 던진 물결처럼 저 멀리 퍼지기 마련이다.
...더 흐릿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이 미련과 후회를 조용히 떠나보낼 생각이다. 정확히는, 떠나보낸다는 표현보단 무의식에 다시 떠오를 수 있도록 조용히 묻어둔다고 하는 것에 더 가깝기도 하겠지.
평소에는 굳이 억지로 꺼내보려고 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무언가를 그리워할 때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럽게 떠오를 수 있게 말이다.
그대도, 이런 걸 원하지 않겠는가.
영원한 과거 속에 묶여있는 것보단, 앞으로 다가올 현재와 미래를 더 신경쓰라고 말했을 테지.
...그대가 살아있었다면 말이다.
님 그리는 세상 이 어딘가에 남은 연 한 조각 있으려나
꽃가지 엮어다 함께 하자던 약조도 시들어가네
그대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도 지금은 다 의미없는 일이자, 스스로 불러온 파멸일 뿐이겠지.
그대를 죽여버린 것도 어린 양이 아닌, 결국은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문득 만약 그 때의 내가 그대의 지식을 듣고 더 큰 야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대의 곁에서 그대의 지식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깨닫고 이 지식을 더 좋은 곳에 사용하는 지도자로 발전했더라면... 지금의 세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적어도 내가 이 교단에서 추종자로 살아가는 삶은 아니었을 점이라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결국 이것도 나에게 남은 후회이자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야망에 대한 처절한 대가에 가까우니 할 말은 없지만.
그댄 기약도 없이 돌아올 생각 없이
날 잊으렵니까
나는 그대에 대해 약하고 현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었다. 그리고 나를 담기엔 너무나도 작았다고 이야기했었지.
만약 그대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를 영원히 잊으며 살아갔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스스로를 후회했을까.
어떤 생각을 했더라도 그 생각에 대해 내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결국 전부 내가 만들어버린 일이었으니, 그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만약 누군가를 탓한다면, 나의 마음 속에서 커지고 있던 야망을 탓해야겠지.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계속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끊임없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건 똑같은 일인데.
흐르는 시간 그 위로 조각배를 띄워보네요
이 마음 고이 접어 배에 담아 그대 곁으로
끝없는 세월 그 위로 그대를 흘려보네요
다신 돌아보지 않도록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치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던 죽음처럼.
아무리 이 곳에서 그대를 떠올리며 후회한다고 해도, 결국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고 둔감하게 만든다. 지금은 이렇게 그대를 떠올리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잠깐 들러서 잠시 그대를 떠올리기만 할 뿐, 다른 생각을 하진 않게 되겠지.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기껏 그렇게 도와주었건만 마지막은 자신을 잊어가는 모습을 저 세계에서 보고 있으면 나를 원망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시간이자 현실이라는 걸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나.
...아마 그대도, 그 세계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만약 언젠가 완전히 그대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내려진 시련이라고 생각해주길.
흐르는 냇물 그 위로 이 마음 띄워보네요
기나긴 기다림도 내겐 그저 고마웠다고
끝없는 세월 그 위로 나도 흘려보네요
언젠간 다시 만난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단순히 이 마음만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닌 내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시간이 온다면, 그 때에는 다시 그대를 만날 수 있겠지.
그렇게 나를 만난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서야 자신을 만나러 왔냐고 원망할까, 아니면 이제서라도 자신을 만나러 와 주었으니 기쁘다고 생각할까.
...그대가 나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와는 별개로, 내가 그대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말을 해 주고 싶구나.
그렇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도와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마웠다고.
그런 후회 속에서 살아왔음에도 마지막까지 나를 기다려준 것에 대해서 고마웠다고.
먼 미래에 다시 생각했을 때에는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가 꺼낼 수 있는 말은... 이런 말들 뿐이군.
기다리지 않는 시간과, 물결처럼 흩어져가는 기억 속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방랑자가 되어가는구나.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