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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220926 -샤무라-

 

 

 


 

 

하나 하나 땋아온 고이 엮은 기억은

풀어지고 찾을 수가 없어

바다 하늘 맞닿은 푸른 선이 만나는

그 곳에선 다시 닿으려나

 


 

 

샤무라.

그대와 함께했던 기억들은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랬건만,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왔던 좋은 기억들을 잔뜩 풀어버린 건 결국 나의 욕망이자 욕심이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쌓여 있었던 좋은 기억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금씩 풀어지고 영원히 사라지게 되겠지.

 

만약 그대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풀어지고 흩어지는 기억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스스로 불러온 재앙과도 같구나. 만약 그 때의 내가 더 큰 욕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다른 옛 주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후회한들 이미 지나간 일이구나.

 

 


 

그대가 놓은 추억의 실타래들은

내 깊은 곳에서 짙은 매듭을 남겨놨네

 


 

 

아직도 그대가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고, 도와주고... 그랬던 것들이 잊혀지지 않는군. 그 때에도 그대는 이미 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있었건만, 그럼에도 나를 알려주고 도와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겠지. 만약 이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직한 존재였던 건 변함이 없겠구나.

물론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닌, 한때 그랬다는 이야기 정도가 되겠지만.

 

그렇게 나에게 남겨준 그대의 지식들은,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얽혀있는 거미줄처럼 남아 언제나 그대를 생각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지. 누군가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잔뜩 헝클어 엉망으로 만든다고 해도 그 거미줄만큼은 늘 그래왔던 그 모습을 유지하며 그대로 남아있을 터.

그만큼 그대가 남겨놓은 거미줄은, 그 무엇보다도 촘촘하고 단단했지. 그리고 그대의 모습처럼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도 했고. 언제 이런 걸 또 남겨둘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렇게 단단한 것도 결국은 나의 욕망에 잔뜩 헝클어지고 말았나니,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것은 스스로의 의지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구나. ...굳이 그랬어야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나.

 

 


 

이 생에선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마음만 키워놨네

 


 

 

사실 욕망에 잡혀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에서부터, 이미 그대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고, 생각보다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난 이후였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어쩌면 이런 기억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될까. ...물론 그대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고맙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생각을 바꿀 기회조차 없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오랫동안 내 옆에서 느꼈던 온기들은

바람에 날려 식어가네

 


 

 

그렇게 그대를 포함한 다른 존재들을 뒤로 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이후로 얻은 지식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나에겐 쓸만한 도움이 되지 않았지. 뭐, 아예 쓸모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대가 알려주었던 다른 지식들에 비하면 너무 단순하거나 시시한 정도였으니. 그대에게서 지식을 배우며 하나하나 감탄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는구나.

물론 지금은, 그렇게 얻었던 지식들조차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니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조금씩 멍청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물론 그대의 두개골을 부숴버린 건... 그것도 내가 저지른 일이었던가. 어쩌면 그런 점마저도 비슷하길 바라곤 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었던 걸까.

 

지식뿐만 아니라, 그대와 함께했던 시간과 기억들마저... 이제는 다 사라지겠지. 마치 밑바닥이 깨져버린 그릇처럼, 무언가를 계속해서 채워넣어도 다시 새어나가겠지.

밑바닥을 깨버린 존재는 나 자신이었고, 이제 그 밑바닥을 메꾸어 줄 존재는 아무도 없나니.

 

 


 

할 말이 많은데, 다시 보고 안고 싶은데

어째서 당신은 거품처럼 먼저 사라져갔나

 


 

 

만약 이렇게 모든 것은 순식간에 한 줌의 재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시간을 되돌렸을 때 조금은 욕망을 억누르며 살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 그렇지만 그런 생각의 결론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이 것들을 전부 뒤엎으려면 결국 탄생부터 다시 건드려야 되는 일일테니.

...아무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게 시간이 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그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다시 피어오르지 않고 영원히 사라질 거품같은 것일 줄 알았더라면...

 

그때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구나. 다시 만나서 그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깨닫지 못한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물론 그렇게 배운 지식들을 다시 나의 욕망으로 사용할 나 자신을 생각하면 결국 그것도 또다른 파멸로 이어질 일이라는 건 변함없겠지만, 그렇게라도 그대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더 많이 기억 속에 남길 수 있다면.

모든 기억들이 새어나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그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이든 좋았을 텐데.

 

 


 

다시 또 다시 너와 닿아갈 수 있다면

제발 다시 한 번만

내 곁에서 사랑해줘요

 


 

 

언젠가.

정말 언젠가,

그대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 때에는 다시 그대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대가 가는 길을 예전처럼 나도 함께 따라갈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더 이상 그 때의 내가 아니라며 나를 거부하고 다시 멀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되었거나 시도를 할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보고 싶은 그런 것이 아닐지 싶기도 하구나.

 

 


 

거짓말처럼

 


 

 

비록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비록 그것이 꿈이든, 현실이든.

 

...아무튼 그 곳에서는,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