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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애임 & 바알] 220924 -앵커딥-

 

 


 

2022.09.18 - [기타] - [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애임 & 바알] 220918 -다크우드-

2022.09.20 - [기타] - [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애임 & 바알] 220920 -아누라-

 


 

 

풀숲같은 성전과 노을이 지는 듯한 분위기의 성전을 지나, 이번에는 마치 물 속에 있는 듯 고요하면서도 무언가 울림이 들리는 듯한 성전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도 기다리는 자는 익숙한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추종자들도 조심스럽게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그의 뒤를 따른다. 기다리는 자는 늘 그래왔듯 앞장서다가 뒤를 돌아보며 그의 추종자들을 바라보곤 질문을 건넨다.

 

 

"이 곳의 분위기는 어떻게 느껴지는가, 추종자들이여."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이 드나이다."

"아름다움이라, 확실히 그런 분위기도 녹아들어 있지."

 

 

그렇게 말하던 기다리는 자는 조용히 "과거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 덧붙이곤 다시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마치 이 곳에서만큼은, 다른 성전에서의 분위기보다 조금 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었지만.

 

 

"이 곳은 칼라마르의 영역이었지. 칼라마르의 손 안에서 칼라마르와 칼라마르의 추종자들은 안전과 건강을 기원했었다."

"안전은 당연하겠지만, 건강도...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물론 칼라마르가 담당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럴법도 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기다리는 자는 가지고 있던 동백꽃을 조심스럽게 흩뿌리듯 던지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흩뿌린 동백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흩뿌려진 동백꽃들은 어느새 앵커딥의 바닥에 녹아들듯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이 지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칼라마르의 손이 뻗는 순간 그 곳은 역병으로 가득할지어니, 오직 역병에 대한 걱정없이 안전할 수 있는 곳은 그 곳 뿐이니라."

"...역병."

"굶주림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역병도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지요."

"누군가가 연구를 하지 않는 이상,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해결책을 가진 요소이기도 하고 말이다."

 

 

앵커딥의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듯 풍경을 감상하는 기다리는 자.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에도 어디론가 다가가더니 풀 사이에 숨겨져 있는, 구석진 곳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수정을 집어들곤 그의 추종자들에게 보여주며 말을 꺼낸다. 기다리는 자가 집어드는 과정에서 살짝 부서진 수정도 있었지만, 그렇게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칼라마르의 안에서 걱정없이 지내던 그들의 마음처럼, 역병 속에서도 끝까지 이겨내려고 노력하던 자들의 마음처럼... 이 곳에서는 이런 수정이 빛나고 있지."

"이 지역의 빛을 전부 흡수하고 있어서인지, 더 푸르게 빛나는 것 같나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원이 이런 곳에 있다니..."

"그래. 내가 앞서 말했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들에 녹아있는 것이다."

 

 

'아름다움' 이라는 말을 강조하다가 수정을 옷 속에 넣으며 조용히 덧붙였다.

 

 

"무질서한 아름다움이지."

"무질서한..."

"아름다움..."

"결국 언젠가는 부숴질,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부숴진, 그런 '낙원' 속에서의 아름다움이었으니."

 

 

기다리는 자의 추종자들은 칼라마르와 칼라마르를 따르던 추종자들을 생각해본다. 확실히 그들에게 이 성전은 낙원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칼라마르의 영역 안에서 적어도 병에 대한 걱정은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아프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에게는 이 곳이 낙원이었을 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기다리는 자의 아래에서 모두를 지켜보며 그를 지켰던 것처럼.

생각해보면, 지금의 그들도 그들의 낙원이 부서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어쩌면 이 앵커딥에 대해서도 내심 동질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적어도 지도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그 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추종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동안에도, 아직 기다리는 자는 할 말이 많은 듯 큭큭 웃으며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왠지 기다리는 자의 자신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칼라마르는 나를 두려워하곤 했었지. 그렇게 나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어떤 점에서 주인님을 두려워하였나이까?"

"죽음에 대한 생각 그 자체랄까.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죽음과 관련된 존재였으니."

"겁이 많았다는 건 예전부터 주인님을 통해서 듣긴 했었지만, 그 정도였습니까..."

"그래서 한편으론 이 사원을 무너뜨리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뭐, 어쨌거나 결과적으론 나 대신 어린 양이 해결해주긴 했지만."

"이렇게 역병 속에서도 안전하다고 여겨진 사원도, 결국은 종말을 맞이할 것임을 어린 양을 통해 증명하였나니."

"역병에서는 안전했지만, 다른 침입에서는 안전하지 못했던 것이지."

"하나를 생각하다가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렇게 이 앵커딥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기다리는 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꽤나 오랜 시간을 앵커딥에서 보냈다. 사실 그들도 이 곳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그러려니하며 다시 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기다리는 자는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추종자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수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걸 모아서, 주인님에게 좋은 걸 만들어서 선물해드리고 싶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형제여."

"그러면 우리 같이 모아볼까? 나는 저 쪽으로 갈게."

"혹시 모르니 조심하거라. 보아하니 조금 위험한 것들이 없진 않더구나."

"걱정 말라고. 그런 부분에서 늘 유심히 잘 경계하고 있으니까."

 

 

그들이 기다리는 자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전투를 벌였던 것처럼,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맡으며 앵커딥의 수정을 모으고 있다. 단순히 수정 하나가 있을 때에도 아름답게 빛났지만, 여러 개의 수정이 모여 있으니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본 그의 추종자들은 꽤나 놀라면서도 각자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모였다.

그들이 모은 수정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에, 아마 이대로 들고 간다면 기다리는 자에게 들킬 것이 뻔했다. 하지만 단순히 수정을 모았을 뿐이고, 수정을 모으는 것 정도는 기다리는 자도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걸로 기다리는 자에게 '몰래' 선물을 주려는 목적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몰래' 선물을 주려는 목적은 없었던 모양인지 기다리는 자가 그들에게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의 추종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기다리는 자는 잔뜩 쌓여있는 수정을 보며 살짝 놀라곤 그의 추종자들에게 물었다.

 

 

"이 수정들은... 언제 이렇게 모아온 것이냐?"

"저희들도 이 수정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어쩌다보니 이만큼 모아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뭐, 이 곳의 흔적을 모아서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기다리는 자는 추종자들의 말에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거리곤, 모아둔 수정의 일부를 가지곤 그의 추종자들에게 명령을 하듯 말을 꺼낸다.

 

 

"이 정도는 내가 들테니, 나머지 수정들은 너희들이 들거라."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명령대로."

 

 

그의 추종자들은 이 수정을 어떻게 다듬을지 고민하다가 최대한 자신들끼리 만들어보면서 혹시라도 안 되면 어린 양에게 조용히 부탁해보자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어린 양에 대해서 조금은 못미더운 느낌이 있긴 해도 자신들의 부탁은 웬만하면 다 잘 들어주기도 했고, 비밀을 유지하는 것도 잘 지켜줬기에 나름대로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교단의 교주를 오히려 자신들이 부려먹는 것 같은 주객전도같은 상황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 빛나는 수정처럼, 그의 추종자는 기다리는 자가 늘 빛나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바라기 이전부터 기다리는 자 스스로도 계속해서 빛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