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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the Lamb / 기다리는 자, 포네우스] 220922

 

 


 

 

어린 양에게 제압당하고 교단에 강제로 끌려온 이후, 기다리는 자는 그럭저럭 이 교단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른 어린 양의 추종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 양에게 당당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부탁하기도 했고, 어린 양이 그 부탁을 거절하면 자연스럽게 어린 양에 대한 신앙이 떨어지곤 했다. (사실 신앙은 평소에도 이미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부탁과 노동과 그 이외의 것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며 보내고 있던 도중, 어린 양은 기다리는 자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먼저 기다리는 자에게 다가갔다. 기다리는 자는 그렇게 어린 양이 먼저 다가오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서 이번에도 뭐 별 거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조금씩 어린 양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 느껴져서 오늘만큼은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러 왔느냐, 어린 양이여."

 

 

기다리는 자의 질문에 저 멀리에 존재하는 성전을 손으로 가리키는 모습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어린 양. 그 손짓에 여전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약간의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자, 어린 양은 이번에도 행동으로 가르쳐 주겠다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취했다. 그 모습에 일단 자신을 성전으로 데려가려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이후로 무엇을 할 지 알 수 없어서 꽤나 의심 가득한 모습으로 어린 양의 뒤를 따라간다.

역시 기다리는 자의 예상대로 어린 양은 아무 성전 안으로 들어갔고, 기다리는 자도 어쨌거나 어린 양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만큼 어린 양의 뒤를 따라 성전으로 들어선다. 정확히 어떤 성전이었는지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자신이 어떤 성전에 들어왔느냐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린 양도 대충 아무 곳이나 눈에 보이는대로 들어가는 모습이었으니까.)

 

기다리는 자는 앞서나가서 다른 이교도들을 처치하는 어린 양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어린 양을 지켜보았을 때, 그리고 자신과 맞서싸웠을 때를 생각하며 여전히 무기와 저주를 다루는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며 조용히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마다 어린 양은 기다리는 자를 톡톡 건드리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행동을 취했다. 기다리는 자가 생각을 너무 오랫동안 하는건지, 아니면 어린 양의 이교도 처리 속도가 너무 빠른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제대로 그 지역이 깔끔하게 청소되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마치 그래왔던 것처럼 어린 양이 먼저 이교도들을 처치하고 기다리는 자가 그 뒤를 따르는 식으로 움직여왔는데, 갑자기 어린 양이 어떤 길 앞에서 멈추더니 기다리는 자를 가리키곤 저 길로 먼저 가라는 듯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손짓에 잠깐 당황하며 말을 꺼내는 기다리는 자.

 

 

"...뭐, 뭐라고? 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어떻게 알고 나를 먼저 보내는 것이냐...!"

 

 

그런 기다리는 자의 모습에 어린 양은 싱긋 웃으며 여긴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 어떤 상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하였고 그 대답에 또 기다리는 자는 어린 양의 말에 대꾸하듯 질문을 꺼냈다.

 

 

"나는... 무언가를 구매할 재화도 없고, 애초에 구매할 이유가 없다만..."

 

 

기다리는 자의 질문에 그런 건 나중에 걱정하고 (본인이 알아서 다 해결할테니까) 먼저 앞장서라는 어린 양의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어떻게 해도 어린 양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을 거라는 걸 깨달은 기다리는 자는 마치 체념하듯 어린 양의 손짓에 따라 그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 길 앞에는... 확실히 이교도들 대신 어떤 존재가 상점처럼 이런저런 물건들을 올려두고 (원래라면 어린 양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먼저 말을 꺼낸 건 기다리는 자였다.

 

 

"...너는..."

 

 

어린 양 대신 새로운 손님이 온 것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사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어린 양을 통해서 소식을 들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자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포네우ㅅ..."

"기다리는 자이시여."

 

 

기다리는 자가 먼저 이름을 꺼내기도 전에 기다리는 자를 먼저 부르는, 포네우스. 포네우스와 기다리는 자 사이에서의 연결고리를 겉모습만 보면 예상할 수 없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사이였다.

 

 

"...뭐냐. 말해라."

 

 

조용히 기다리는 자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곤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기다리는 자에게 질문을 꺼내는 포네우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 아이들이... 신께 많은 도움이 되었나이까?"

 

 

나긋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 속에는 무언가 여러가지 생각들이 가득 담겨있었다는 것을 기다리는 자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포네우스의 목소리 속에 담겨있을 생각들을 파악하고 있던 중, 다시 포네우스는 기다리는 자에게 또다른 질문을 꺼냈다.

 

 

"혹...

제 아이들이, 당신의 발목을 붙잡지는 않더이까?"

 

 

정말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누구보다도 진심을 원하는 목소리에서 기다리는 자는 깊게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주인님, 저 쓰레기가 더 나서지 못하게 제가..."

"주인님, 저 짐승의 목을..."

 

 

그들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비록 어린 양에게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그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끝까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그렇게 목숨을 바친 결과가 이렇게 되었을 뿐. 그렇다. 그들에게 미안해야 되는 건 기다리는 자 자신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포네우스에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건넨다.

 

 

"그 녀석들... 아니..."

 

 

그동안의 입버릇이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것에 잠시 고개를 저으며 헛기침을 몇 번 하곤 다시 말을 꺼낸다. 아무래도 어린 양의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끝까지 믿고 최후를 맞이한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임과 바알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마 그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너와 모습을 마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겠지."

 

 

기다리는 자의 대답을 들은 포네우스는 다시 생각에 잠기듯 가만히 있다가 기다리는 자를 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그럼 되었습니다."

"..."

 

 

말없이 자신의 대답을 듣는 기다리는 자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곤 눈을 감으며 마저 이야기를 꺼내는 포네우스.

 

 

"그 아이들은 당신을 따른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는 그 말을 들으며 내심 그 말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구나, 라고 조용히 생각했다. 자신과 함께했던 애임과 바알뿐만 아니라 이 존재도 자신에게 그들을 따르게 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고. 운명을 마주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들은 묵묵히 받아들였다고.

그런 내용들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런 모습을 본 포네우스는 마치 기다리는 자를 격려하듯 말을 꺼냈다.

 

 

"태양과 달은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지어니."

 

 

포네우스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짓곤 웃음소리를 내는 기다리는 자.

 

 

"그 말은, 내가 너에게 해야 되는 말이 아닐지 싶은데."

 

 

잠깐의 침묵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기다리는 자. 마침 하늘에는 누군가가 생각나는 듯한 초승달이 떠 있다. 항상 달 지팡이를 들고 자신의 옆에 있어 주었던 그 존재를 생각하며.

 

 

"태양과 달은 항상 나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지. ...분명 너에게도 지켜보고 있을 거다."

 

 

그 말과 함께 근처에서 어린 양이 다가오곤 이제 돌아가야 될 시간이라는 듯 몸짓을 취했다. 기다리는 자도 그런 어린 양의 모습을 보았고, 포네우스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 꺼냈다는 듯 조용히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태양과 달의 축복이, 항상 곁에 있기를 바라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자도 어린 양과 함께 어린 양의 교단으로 복귀하였다. 어린 양도 사실은 그들이 나눈 이야기를 듣고 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능청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마 그런 모습을 보며 기다리는 자도 역시 어린 양이 늘 단순해보여도 이해심은 없는 게 아닌가보다, 라며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언제나 하늘에 뜨는 태양처럼, 그들은 어디에서나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