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노르 / 딘] 220329
2022.03.23 - [메카닉] - [네르-노르] 220323 (1편)
2022.03.26 - [메카닉] - [네르-노르 / 딘] 220326 (2편)
"저승사자 친구."
"헤, 왜 그러십니까?"
"뭔가 궁금해진 게 있거든."
딘은 저를 보면서 꽤나 물어보고 싶었던 것처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 같은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꽤나 흥미로운 질문을 건넸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번쯤은 물어볼 것 같은 질문이었거든요.
"우리 저승사자 친구의 옛날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제 옛날 이야기 말입니까-? 그렇게 재미있는 것만 있지는 않을텐데요-"
"원래 삶이라는 게 다 즐겁기만 하겠냐고~ 뭐, 나는 늘 즐거웠지만?"
"크크, 역시 당신다운 모습이군요? 아무튼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 말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요? 그냥 단순히 생각나는 것들을 이것저것 꺼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쭈욱 이어질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옛날 이야기들을 하나둘 풀어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제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많았는데- 제대로 과거를 풀어보는 건 여기서가 처음이겠군요.
그치만 이건 당신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니까- 조금 자리를 옮겨볼까, 싶은 마음이 드네요.
"그렇다면- 일단 자리부터 좀 옮길까요?"
"얼마나 비밀스러운 이야기길래 그러는 거야~?"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아닌데- 그냥 남들에게 다 알려주긴 싫어서 말이죠, 크크."
"큭큭, 어떤 느낌인지 바로 알겠는걸? 그럼, 내가 좋은 자리로 안내해주지."
"역시 한두번 오신 게 아니라서 그런지, 명당을 잘 아시는군요-"
딘의 안내에 따라 확실히 둘 이외의 다른 존재가 올 일은 없을 법한, 바의 구석이라면 구석이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다른 공간들과 다를 바 없는 곳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없을 때 이런 곳에서 혼자 분위기에 취해 술을 마셨을 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재미있을 듯 하군요?
"아무튼! 이제 들어볼까? 저승사자 친구의 옛 이야기들을."
"하하, 너무 성급해하진 마십쇼-"
원래 모든 존재들은 다 처음부터 어떤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건 아니라고들 말하죠. 처음에는 다 이런저런 것들을 헤매기도 하고, 미숙하게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아마 저도 처음에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왜냐면- 제가 눈을 뜨자마자 이런 저승사자 일을 했던 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저승사자 일을 하기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남아있는 기억이 없습니다. 보통 메카닉이라면 이런 기억들이 다 하나하나 남아있을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하나도 안 남아있는 것인가, 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확한 답을 찾아내지 못하긴 했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저승사자를 맡게 된 계기는 확실하게 기억이 납니다.
"오, 그래? 어떤 일인데?"
"아마 저를 보면서 몇번 마주하게 된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혹시 기억나시나요?"
"그 어떤 '무언가'라니? 그게 뭐지?"
그런 반응은 언제봐도 참 재미있는 것 같단 말이죠. 제 어깨에 보이는 이 까마귀, 보이십니까? 이게 아무래도 제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죠. 지금의 생명체들이 보기엔 그냥 단순히 제 조수같은 역할을 하겠거니-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작 이 까마귀 덕분에 제가 이 저승사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마땅히 정해진 일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을 때, 이 까마귀가 저에게 날아와서는 마치 어디론가 안내하듯 날아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확실한 것은- 호기심이 많았던 점이라서 이 까마귀가 저에게 날아왔는데 마치 안내하듯 날아가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죠.
그렇게 까마귀를 따라간 곳은- 약간 뭐라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의 어떤 장소였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 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좀 익숙한 걸로 표현하자면... 심연?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의 장소였는데, 그 곳에서 까마귀는 어떤 곳 위에 앉아 저를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피어오르는 어떤 기운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조금씩 제가 특이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저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곳에는 저와 까마귀밖에 없었으니- 다른 생명체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에는 '뭐가 달라진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제가 늘 시간을 보내던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부터 조금 이상한 분위기가 저에게 느껴지는 것 있죠?
"호오, 예를 들자면?"
"뭔가- 흔히 영화같은 곳에서 어떤 안경같은 걸 착용하면 상대방의 정보가 보이는 그런 것과 비스무리한 느낌이랄까요?"
"그렇다면 지금 네 눈에는 나의 정보같은 게 보인다는 건가?"
"하핫, 걱정 마십쇼- 지금은 그런 것들을 필요할 때에만 보이도록 다룰 수 있는지라 지금처럼 휴가일 때에는 안 보고 다닌 답니다."
"그렇구만? 역시 특이한 친구라니까. 재미있단 말이지."
생명체들과 관련해서 볼 수 있는 정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수명이었던 관계로, 그 때부터 이제 생명체가 곧 마지막을 장식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 그 생명체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마지막이 다가옴에도 마지막같지 않도록 느껴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승은 어떻게 갈 수 있냐- 라고 궁금해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건 정확히 어떤 '방식'이라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제가 잠깐 눈을 감고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저는 저승에 들어와 이 곳에서 누군가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하니까요. 뭐- 까마귀가 해 주나? 그것까진 아직 파악을 안 해봤군요.
"그러냐- 재미있네. 그나저나 그 망토같은 건 어디서 구했냐?"
"아, 이거요? 예전부터 좀 이런 취향이어서 맞춤용으로 하나 만든 적이 있었답니다. 하핫!"
"저승사자 역할을 하기 전부터 만들었던 건데 어쩌다보니 저승사자와 잘 어울리는 망토가 되었다- 이 말이지?"
"그런 셈이죠. 나름 우연이라면 운 좋은 우연이지요."
"저승사자 친구에게 참 잘 어울리는 망토야~ 그렇다는 건, 지금은 몇 개 더 있겠네?"
"물론이죠. 언제 망토가 이상해질지 모르는 일이니, 여분은 늘 챙겨두고 있답니다."
"나중에 나에게도 하나 챙겨줄 수 있나?"
"당신이 원한다면 몇개는 드릴 수 있죠!"
"화끈한걸! 마음에 드는데?"
아무튼, 그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저승사자로서의 일을 시작하고- 그럼에도 지금처럼 다른 생명체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계기 말이죠.
한편으론 여전히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를 이 세상에 처음으로 만들어 낸 존재는 누구일지, 저승사자가 되기 전까지 저를 돌봐주고 키워준 존재가 있기는 할지- 그런 것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지만, 굳이 그것들을 지금 알아야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서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 라는 느낌으로 잠깐 묻어두며 지내곤 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과 미래를 즐기는 게 저에겐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제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재미있었는걸. 더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하하- 나중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 때에 또 알려드리겠습니다."
"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다시 술 마실 시간이네?"
"이번에도 한 잔 깊게 마셔볼까요?"
더욱 깊은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깊은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도 아직 이야기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