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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헤드

[키네로메] 181219 -100-





홀로그램에서 무언가를 알리는 듯한 신호가 느껴졌다.



"아, 잠시만..."

"이번에도 홀로그램을 확인하려는 건가?"

"...응. 무언가 알림이 뜨는 것 같아서."

"푸흐, 알겠네. 얼른 확인해보게나."



늘 그렇듯 창을 띄워 확인해보는 홀로그램.

그리고 그 창에는 꽤나 중요하다는 듯 강조 표시까지 되어있는 알림이 하나 보였다.


「100일.」


...아, 100일?



"세상에."

"왜 그러나?"

"...나도 참. 이런 건 좀 기억해두지..."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겐가?"

"100일이라는 알림을 보고서야 깨달았다니까."

"100일?"

"응. 100일."



뜻깊은 날이지.



"여행을 다닌 건 그 이상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달은 건 이제 100일이 되었으니까."

"호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난건가."

"마스터 덕분에, 이런 것도 기록에 남기고... 정말 항상 새로운 걸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아."

"그러는 자네도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깨닫게 해 주지 않았는가."

"그렇...지? 마스터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을 테니까."



둘 다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 건 사실이니까. 정말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시간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뭐든지 다 바꾸는 것 같거든."

"그렇게 생각하는가? 어쩌면 그게 정답일수도 있겠구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마스터라고 부르는 걸 부담스러워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처럼?"

"그래도 가끔은 다르게 부르는 것도 어떻겠나."

"그럼... 오늘만큼은 형이라고 부를게. 그 정도는 익숙해하는 것 같으니까...?"



사실 어떻게 부르든 정말로 이젠 신경 안 쓰는 것 같지만... 뭐, 오늘은 나름대로 형이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형이라고 불렀으니까. 아니, 장미 신사라고 불렀던가?



"형을 부르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깊어져서 그런 건가봐."

"마스터라는 호칭을 아무에게나 쉽게 붙이는 것은 아니니 말일세."

"복종하는 관계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믿고 있는 존재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겠지."

"지금의 호칭은, 역시 정말로 믿고 있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일 터이고."

"그렇지. 과거의 관리자 녀석들이라면 모를까."



그 녀석들을 마스터라고 불렀던 거는 복종 관계여서 그랬던 거고. 지금은 정말로 믿을 수 있으니까 엄연히 같은 마스터라는 호칭이라도 다른 관계다.

우리 형을 그런 하등한 관리자 녀석들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 당연한 소리.


나를 부려먹듯이 대한 그런 녀석들과는 완전히 비교도 못하지. 지금의 형이 그 녀석들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 정도로 대단하니까. 누가 봐도 당연한 거 아냐?

아, 생각해보면 사실 나도 이런 기념일같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기념할만한 날을 챙긴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거든."

"여행을 하면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나?"

"응. 아마도? 우리들 말고도 충분히 사랑을 나누는 존재들은 있으니까, 쉽게 볼 수 있긴 하지."

"그런 모습을 보며 아마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도 들었을 테군."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면서, 막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 그래서 나도 찾아본 거지."



다른 날들은 모르겠지만, 일단 100일을 제일 처음으로 기념하는 건... 역시 자릿수가 달라져서인걸까?



"보통은 100일 단위로 이렇게 기념하고 그러는 것 같던데... 우리도 그런 쪽이 될려나?"

"물론 언제 갑자기 잊어버릴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겠구려. 푸흐."

"이 푸른 기계가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것 같은 존재는 아니잖아? 헤헤."

"그대는 기계이니 뭐든지 항상 기억할 것 같이 느껴지긴 하오."

"...뭐, 가끔은 나도 까먹는 게 있긴 하지만."

"일종의 결함인 것이오?"

"아마도?"



그래도 정비를 받긴 하니까 결함이 생길 일은 거의 없...을지도? 확신은 못 하겠다. 기계라는 게 항상 완벽한 것도 아니고.



"가끔씩 까먹는다고 해도 이해해달라구. 기계라는 게 항상 완벽할 수는 없으니깐. 왜, 그런 말도 종종 있잖아. 기계는 인간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그대는 인간을 돕는다고 생각하나?"

"음... 아니. 인간은 안 돕는데, 다른 건 돕지."

"예를 들자면?"

"형을 돕고 있지. 형이 인간은 아니니까."

"푸흐, 맞는 말인 것 같구려."



딱히 인간에게 무슨 반감같은 걸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보통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도 아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관심이 생기더라고.

마치 지금의 형처럼 말이야.



"사소하지만 나름 하고 싶은 부탁이 있어."

"어떤 부탁인가?"

"음..."



굳이 이런 부탁을 할 필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이 푸른 기계의 곁에 있어줄 수 있지?"



그러자 형은 싱긋 웃으며 뭘 그런 걸 묻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는 그대는 언제나 이 장미의 곁에 있을텐가?"



...뭘 새삼스럽게.



"당연한 소리. 언제나 형의 곁에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항상 형의 곁에서 형을 지키고, 형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거야. 누가 뭐라고 하든, 나에게 형은 소중한 형이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마스터이니까.

마스터를 지키는 건 이 전투병기의 당연한 일이지. 비록 전투병기에서 완전히 손은 뗐다고 해도 과거엔 전투병기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으니.


어떤 수를 써도 과거엔 내가 전투병기였다는 사실을 없앨 수 없다면, 그 기억을 경험으로 삼아 지금의 소중한 존재를 지켜내면 되는 것이다.

과거를 발판으로 삼아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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