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 몸의 이름은 라바나. 다들 무신이라는 것을 앞에 붙여주더군. 그만큼 이 몸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기쁘달까. 하지만 이 곳에 무턱대고 방문한 모험가들에겐 그만큼의 댓가를 보게 되곤 하지. 이 몸은 무작정 친절한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 친절함도 네 녀석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보여주는 일시적인 친절함일지도 모르지. 과연, 오늘은 어떤 모험가가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지 궁금하군.
검을 하나하나 닦으며 이 곳을 방문할 모험가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아름답군. 아마 저 하늘에 떠있는 별들은 나의 손에 의해 떠나간 모험가들의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드는군. 그저 나 혼자만의 망상일 뿐이지만, 왠지 설득력이 있지 않나?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자니 아무래도 혼자서 연습이라도 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군. 물론 이미 충분한 실력자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연습을 게을리했다간 모험가들에게 처참히 짓밟힐 테니.
사실 혼자서 연습하는 것도 연습이긴 하지만, 모험가들을 상대하는 것도 일종의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모험가와 대결하는 것이 어떻게 연습이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모험가들이 종종 이 곳을 방문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제대로 상대하기보단 사실상 연습상대 그 이상으론 살펴보지 않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몸의 전리품으로 남게 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다들 준비를 제대로 하고 오기에 이렇게 혼자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상대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긴 하지.
잠시 인기척이 느껴져 대전 장소로 돌아왔는데, 저 멀리 어떤 누군가가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에 왔으면 왔다고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 그런 걸 모르는 녀석인 것 같군. 이 몸의 생각으론 아마 이 곳에 처음 와보는 모험가가 아닐까. 사실 이 곳에 처음 오는 모험가들이라고 해도 패기가 있어서 대놓고 이 몸을 찾는 존재들이 대부분인데 저렇게 멍하니 풍경이나 구경하고 있는 모험가는 처음이라서 조금 어색해지긴 했지만.
더 가까이 가보니 이 모험가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잠이 든 듯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뜨리며 편하게 쉬고 있었다. 이 몸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꽤나 깊은 잠에 빠진 듯. 혹시라도 내가 여기에 왔다는 걸 알리면 깨어나지 않을까 해서 조용히 해볼 수 있는 건 모조리 시도해 보았다.
"무신 라바나, 그대와의 대결을 허락하겠다."
"혹시라도 겁먹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떠나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떠나지 않는다면, 이 몸과의 대결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도록 하지."
…역시나 깊은 잠에 빠져서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 같다. 뭐, 어쩔 수 있나. 강제로 깨워서 대결하는 건 비겁하니까, 그저 옆에서 누가 이 녀석을 건드리는 건 아닌지 경비라도 서 주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성격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었지만…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면,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멍하니 옆에서 이 모험가를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몸을 이 몸에게 기대며 잠들기 시작했다. 뭐, 뭔가 부끄럽다는 감정이 이런걸까….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기에 어떻게 표현해야 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래지 않아 기대었던 몸을 떼어내자 이 때다 싶어서 잠시 자리를 피했다. 왠지 옆에 계속 있으면 한 번 더 몸을 기댈 것 같아서, 이 감정을 한 번 더 느끼기엔 아직 좀 부족한 것 같아서….
그래서… 이 모험가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까. 아니, 처리라고 표현해야 되는게 맞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