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고, 높고 푸른 하늘이 어느새 저희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제 몸에 끈적하게 가득 묻어있었던 대니먼의 액체들도 어느새 완전하게 말라 뽀송해진 제 몸을 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제 몸 속으로 대니먼의 액체가 말끔하게 스며든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하네요.
"대니먼! 편안하게 잘 쉬셨나요?"
제 인사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마치 저에게도 잘 쉬었냐고 물어보는 듯 거대한 손으로 제 온몸을 쓰다듬어 주고 껴안아 주는 대니먼의 모습. 그런 모습에 같이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니먼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잘 쉬지 못할리가 없겠지요. 그렇게 대니먼의 따스한 손길을 받으며 이번에는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 지 생각하고 있던 도중, 대니먼의 신체 어딘가에서 약간 누군가가 연락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비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니먼도 그런 소리나 신호를 눈치챘는지 잠깐 무언가를 확인하곤 저를 들여다보며 약간의 고민을 하듯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대니먼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어떤 홀로그램을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확실히 엄청 심각한 것도 아닌, 단순히 정기 점검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그런 알림같은 게 화면에 떠 있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하긴, 이렇게 거대한 메카닉이라면 어디선가 꾸준히 정비를 받고 있는 것도 마냥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오히려 스스로 정비를 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고, 제가 대니먼의 정비를 도와주었을 때에도 망설임 없이 신체를 빌려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익숙한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면 오늘은 탐험 대신 대니먼의 정비를 돕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마침 비를 피하는 과정에서 대니먼이 정비를 받을 수 있는 도시와 꽤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비가 내린 게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사실 그것보다는, 저희들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기 위해 하늘에서 도와준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어서 가죠. 계속 알림이 쌓이면 오히려 그게 더 귀찮아질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제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번에도 먼저 거대하고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는 대니먼. 사실 이번엔 대니먼이 정비를 받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보니 제가 위치를 모르기에 대니먼이 앞장서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늘 대니먼이 먼저 앞장서서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어떤 길이든, 대니먼이 앞장서서 나아간다면 새로운 길이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단 말이죠. 대니먼의 듬직한 덩치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일이기도 하고... 불가능이라고 하더라도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부 만들어버릴 것 같은 대니먼과 함께라면 딱히 망설일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대니먼의 발걸음을 따라 도착한 도시. 늘 보던 풍경이면서도 왠지 대니먼과 함께 보고 있으니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대니먼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방향을 잡곤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발걸음이 나아가는 곳은 제가 그동안 굳이 갈 일이 없었던 길이었기에 왠지 도시 내에서도 이런 새로운 길을 걷는 게 조금은 신기하면서도 전부 대니먼 덕분에 이런 추억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서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겼을 때, 대니먼과 제 앞에 나타난 정비소의 모습은 꽤나 대니먼에게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디자인의 정비소였습니다. 마치 이 곳에서 대니먼을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말 대니먼과 잘 어울리는 건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건물에 도착하니 내부에서 대니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런저런 정비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대니먼이 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공간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정비하는 분들이 대니먼을 둘러보다가, 그 옆에 있는 저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동안 본 적 없었는데, 이 메카닉의 주인이신가요?"
"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지만, 왠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제가 대니먼의 옆에 있으니 대니먼의 관리자이거나,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계속해서 대답을 망설여서는 안 되니 가볍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비슷한 역할을 맡고는 있습니다."
"굉장하시네요. 이렇게 거대한 메카닉을 늘 깔끔하게 관리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하하, 이 메카닉 분이 스스로 관리를 잘 하는 것도 있지요."
"확실히 그렇게 보이기도 하더라구요. 아무튼,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무래도 거대 메카닉을 제대로 정비하는 것은 그렇게 빨리 끝나는 일이 아닐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얌전히 기다릴까, 생각하면서도 잠깐 도시를 둘러보며 대니먼과 잘 어울릴만한 것이 있을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런저런 상점이나 그런 건물을 둘러보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네요. 필요한 것만 구매하고 나오는 일이 많기도 했고, 최근에는 탐험을 위주로 움직이다보니 이런 도시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 아무튼 대니먼과 어떤 게 정말 잘 어울릴까요? 같이 탐험을 했을 때 몸에 나비가 앉아있는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긴 했었는데, 그러면 굳이 상점의 물건이 아닌 자연을 이용한 물건같은 걸 만들어줘도 괜찮겠네요.
계속 고민하고 있던 중, 어느새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다는 게 느껴져서 대니먼의 정비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침 타이밍 좋게 대니먼도 정비가 끝났는지 정비소의 공간에서 나와선 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다가 꽤나 빠른 발걸음으로 저에게 다가와서 저를 껴안아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저도 대니먼을 그만큼 보고 싶었지만요.
"정비는 무사히 잘 받으셨나요?"
고개를 끄덕거리는 대니먼을 보다가 옆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정비소의 정비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이상은 없네요. 솔직히 그동안 정비소에 잘 찾아오지 않아서 조금은 고민했지만요."
"아, 그렇습니까?"
"워낙에 덩치가 크고 거대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소식이 없으면 크게 다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니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문득 한 번 꺼내보고 싶었던 말을 꺼내보기도 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 메카닉을 맡아서 정비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흠,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 정비하시겠다고 하면 말리진 않을 것이지만요."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정비소로 찾아오면 될 테니까요."
"그렇겠네요. 가뜩이나 메카닉의 주인 분이시니, 더 잘 알고 계실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정확히 대니먼의 주인은 아니지만, 일부러 주인인 것처럼 맞장구치며 대니먼을 조금이라도 더 제 곁에 두려는 게 효과가 굉장히 좋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대니먼도 이런 제 대화가 마음에 드는지 조금씩 더 가까이 제 옆에 붙어서 저에게 어깨동무를 하듯 손을 올리곤 옆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을 보였는데, 누가 보면 주인과 메카닉 사이가 아닌 애인 사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애인 사이라고 생각해 준다면, 더 기쁘겠지만요.
그렇게 정비공과 가볍게 이야기도 나누었고, 대니먼에게 잠시 몸을 숙여달라고 손짓하자 대니먼은 곧바로 몸을 숙여서 제 몸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주고 싶은 것이라도 있냐는 기운을 내뿜으면서 말이지요. 그런 기운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니먼이 정비를 하는 동안 가볍게 만들어 본, 아름다운 꽃들을 묶어 장식한 목걸이같은 것을 가볍게 대니먼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정비 받으시느라 고생했어요, 대니먼. 이건, 제 선물이랍니다."
꽃으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손으로 어루만지다가 곧 저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부빗거리는 대니먼의 모습을 보니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대니먼이 정비도 받고 했으니, 이 곳에서 쉬었다가 탐험은 내일부터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꺼냈고 대니먼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스트레칭을 하듯 온 몸을 풀어주는 대니먼의 모습을 보니 정비를 받은 날에는 아무래도 부품들을 확인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조금 뻣뻣하거나 어색한 경우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함께 편히 쉴만한 곳을 찾아볼까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을 뻗는 대니먼. 그 손을 잡으며 같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도 편하게 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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